물욕이란 부질없는 소금물이라지만 때로 그걸 부추기는 자동차들을 만날 때가 있다. 단순히 동력 성능이 우수하다거나 고급 사양을 갖춘 차를 넘어 삶의 지평을 넓히고 미래를 가늠케 하는 차들이라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 비교하면 할수록 서로의 장점이 모두 크게 보였던 볼보 XC90의 하이브리드 버전인 T8과 테슬라의 모델 X는, 두 차량 중 한 대가 아니라 두 대 모두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고심 끝에 ‘vs’ 대신 ‘&’를 택했다.
‘끼쟁이’ 슈퍼스타와 은둔형 우등생
두 자동차의 비교를 위해 시승차로 협조받은 차량은 각각 XC90 T8의 엑셀런스와 모델 X의 퍼포먼스 트림이다. 먼저 XC90 T8 엑셀런스는 휠베이스가 2,984㎜에 달하지만 4인승으로 트렁크 공간과 승차공간이 유리막으로 분리돼 있다. 2열 가운데는 냉장고와 오레포스(Orrefors) 사의 와인잔도 비치돼 있다. ‘의전용’ 플래그십 SUV라 할 만하다. 모델 X는 1회 완충시 주행 거리 421km인 퍼포먼스 트림으로 0→100km/h 가속시간 2.9초로 더 유명하다. 판매 대수는 롱레인지 모델이 많지만 퍼포먼스 트림은 브랜드를 이끄는 리더다.
XC90 T8 엑셀런스는 내장과 외장이 모두 화이트 컬러이고, 휠까지 밝은 실버였지만 화려하다기보다는 단정하다. 2열의 냉장고와 와인잔도 파티걸을 옆에 태운 플레이보이보다는 고단한 일정을 마감하고 휴가를 받은 성실한 사업가의 휴식공간 같은 느낌이다.
그에 비해 모델 X는 듣던 대로 ‘끼쟁이’다. 키를 소지하고 가까이 가면 저절로 열리는 1열 도어부터가 그랬다. 실제 시도해보진 않았지만 ‘X마스 모드’란 걸 활성화시키면 뒤쪽의 팔콘 윙이 마치 날갯짓하듯 움직이고 갖은 등화류가 점멸을 반복하는 등의 ‘쇼’를 펼친다고 알려져 있다. 다 좋은데 이 팔콘 윙, 비가 오는 날에 개방하면 물이 실내로 흘리는 ‘허당’끼도 있다.
확실한 달리기형 SUV는 모델 X,
모드마다 다양한 페르소나의 XC90 T8
모델 X 퍼포먼스 트림의 가속력은 공차 중량이 2,605k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서운 수준의 파워다. 60km/h든 100km/든 제한 속력 수치에 단숨에 도달하는 속도감과 약간의 어지러움은 굳이 계산이 필요 없는 힘을 과시했다. 다만 시야가 좌우 그리고 위까지 넓은 덕분에 가속 시에도 공포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운전석 바로 위까지 이어지는 윈드실드와 투명한 루프가 주는 개방감으로 인해 흡사 전투기의 조종석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한 감성을 구현하려 했다면 차라리 스티어링 휠의 크기가 좀 작았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든다.
이런 퍼포먼스를 가능케 하는 것은 물론 전∙후륜에 위치한 강력한 모터 2기 덕분이다. 최고 출력은 전륜 모터가 205kw(278ps), 후륜 모터가 375kw(509ps)이고, 최대 토크는 전륜 모터가 42.8kg‧m, 후륜 모터가 73.4kg‧m에 달한다. 회생 제동을 충분히 이용하면 강력한 가속 후에도 브레이크를 밟는 것과 같은 제동력을 느낄 수 있다. 회생 제동 상태는 클러스터 오른쪽에 주황색의 그래프로 표시되는데, 이 때 제동등이 점등되어 뒤따른는 차량에게 감속 중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배터리가 완충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회생 제동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볼보 XC90 T8의 제원상 0→100km/h 가속 시간은 5.8초로 모델 X의 롱 레인지보다도 1.2초 정도 느리다. 하지만 최고 출력 318ps(6,000rpm), 최대 토크 40.8kg∙m(2,200~4,500rpm)의 트윈차저(터보+슈퍼차저)와 리튬이온 배터리 기반 모터의 조합을 통해 다채로운 매력을 발휘한다. 24.5kg∙m에 달하는 구동 모터의 토크가 0~3,000rpm까지 부가적으로 구현되어 저속에서나 고속 모두에서 치고 나가는 맛을 즐길 수 있다. 제원상 모터 최고 출력은 88ps로 엔진의 출력이 한계에 다다른 시점인 7,000rpm대에서 발휘된다. 시스템 합산 최고 출력은 405ps인데, 가솔린 과급 엔진 차량에도 미립자 필터를 의무화해 출력이 감소하므로 390ps 수준이다.
다만 PHEV 파워트레인은 단순히 가속력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외부 충전량과 주행 모드에 따라 배터리와 엔진의 개입 비율은 달라진다. 그래서 XC90 T8은 단계마다 다른 성격의 자동차가 되며 이것이 가속력을 넘어서는 또 다른 재미라 할 수 있다. 유럽형의 PHEV의 충전이 가능한 충전기 제공 사업자가 다소 제한적이긴 하지만 완충하면 배터리의 개입 범위가 늘어난다. 이는 하이브리드나 에코 모드 주행 시 계기반 오른쪽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배터리의 충전 범위와 엔진의 가동 범위를 알리는 디지털 게이지가 두 파워트레인의 상호 작용을 보여준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용량은 11.6kWh이다. 시승차의 경우 배터리 충전량이 1/4 이하였지만 엔진 구동을 통한 배터리 충전 속도도 빨라, 어느 새 주행 중에 절반 수준까지 올라왔다. 국내에는 PHEV의 합산 연비를 표시하지 않아 복합 10km/L(도심 9.4, 고속돌 10.8)이라는 수치에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주행 시에는 엔진과의 에너지 핑퐁을 통해 16km/L대의 연비를 구현했고 스포츠 모드에 들어가 10km 이상을 주행해도 11km/h 아래로 쉬 떨어지지 않았다. 두 개의 심장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XC90 T8은 연비 중심의 SUV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완벽한 고성능 SUV가 될 수도 있다.
용호상박! 오토파일럿과 파일럿 어시스트
테슬라의 오토파일럿과 볼보의 파일럿 어시스트는 ADAS(능동형 운전자 보조 시스템)의 브랜딩에 있어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볼보는 안전이라는 철학 속에 편의를 녹여 냈고, 테슬라는 자율주행이라는 지향점으로 가는 기본 단계를 잘 다졌다. 아직 베타 단계인 모델 X의 내비게이션 온 파일럿 시스템을 제외하면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심지어 기능이 활성화되었을 때 방향 지시등으로 추월이 가능한 것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