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상용차 시장은 일부 제조사가 거의 독·과점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디고 항상 거기서 거기라는 지적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 현대자동차에서 출시한 파비스가 있지만 이름만 다를 뿐 예전과 별 차이가 없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승용차가 그랬듯 이 시장에도 수입 제조사 차량들을 통한 다양화와 경쟁이 필요하다. 그런 와중에 이탈리아 상용차 브랜드 이베코에서 뉴 데일리를 국내에 선보였고 5월 20일, 뉴 데일리의 시승 행사를 진행했다.
실물이 더 큰 이베코 뉴 데일리
제원이나 소개 자료로 본 이베코 뉴 데일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경상용차였으나, 행사장에서 본 뉴 데일리의 크기가 생각했던 것 보다 커서 살짝 당황스러웠다. 사진 속 뉴 데일리는 곡선 위주의 디자인 때문에 르노 마스터나 현대차의 쏠라티 정도의 크기로 보였지만 실물로 마주한 뉴 데일리는 전장이 7,130㎜이며 휠베이스가 4,100㎜로(H3기준)에 달했는데, 쏠라티가 아니라 마을버스로 운행하는 현대자동차의 카운티 수준이다. 엄밀히 따지면 카운티의 전장이 7,085㎜에 휠베이스가 4,085㎜이니 뉴 데일리가 더 크다.
참고로 싱글 캡(좌석 1열)과 더블 캡(좌석 2열)은 전장이 5,340㎜로 밴 타입 보다 작지만 휠베이스가 5,100㎜나 되며 적재함의 길이가 6,100㎜(싱글 캡기준)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또한 최대 3.5톤까지 적재할 수 있어 이론상으로 소형차도 뒤에 실을 수 있다. 밴 타입은 최대 18m³, 약 18,000리터까지 적재가 가능하다.
이 밖에도 이전 모델 보다 약 15% 더 밝아진 풀 LED 헤드램프는 일반적인 경상용차 답지 않은 세련된 인상을 주며 냉각성능까지 확보한 넓은 프론트 그릴은 핫 스탬핑 공정으로 제작돼 견고하다. 그리고 경상용차에서 보기 힘든 알루미늄 휠은 차량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물론 무게까지 가벼워 연비에도 큰 도움을 준다. 또한 내구성도 좋아 아무리 무거운 짐을 적재해도 휠이 부러지거나 하지 않는다.
이게 정말 경상용차의 실내가 맞나?
뉴 데일리의 실내는 지금까지 봐왔던 국산 경상용차량들과 많이 다르다. 통상 경상용차라고 하면 모든 것들이 큼직하고 단순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뉴 데일리는 일반 승용 차량에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먼저 독특한 D컷 스티어링 휠이 눈에 들어온다. 최근에 출시되는 경상용차들의 스티어링 휠이 작아지고 있는 추세지만 D컷은 정말 보기 힘들다. 그리고 승용차의 스티어링 휠 보다 직경이 더 작으며 스포츠카처럼 그립감도 두툼하다.
이처럼 D컷을 적용해 보다 차별화된 세련된 이미지를 잡았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경상용차들은 승용차와 달리 스티어링 휠을 생각한 것보다 더 돌려야 충분한 조향각을 얻을 수 있다. 뉴 데일리의 D컷 스티어링 휠은 일반적인 상용차 운전의 방식으로 접근하면 이 점이 약간 불편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스티어링 휠의 직경이 작고 스티어링 휠의 무게를 최대 70%까지 줄여주는 시티 모드가 있어 D컷의 단점을 상쇄한다. 또한 국산 경상용차에서 느낄 수 없었던 두툼한 그립감은 칭찬할만하다.
무엇보다 뉴 데일리에는 8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되어 있기 때문에 1~6단까지 적혀 있는 기어 레버 대신 P, R, N, D와 +/-가 표시돼 있는 레버가 있다. 그래서 가속 페달과 제동 페달 2개 밖에 없다. 이 밖에도 고해상도 컬러 디스플레이 클러스터가 탑재되어 있어 차량 정보를 운전자가 직관적으로 파악이 용이하다. 또한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 이탈 경고 시스템 그리고 50km/h 이하의 속도에서 전방 충돌위험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제동시켜주는 첨단 비상제동 시스템 등이 포함된 첨단 운전자 지원시스템(ADAS)이 탑재되어 있어 장거리 운행에도 편하게 운전할 수 있다.
동급 경상용차 중 최고의 성능과 최고의 효율성
뉴 데일리는 트림에 상관없이 모두 3.0리터 직렬 4기통 엔진이 탑재된다. 최고출력은 180ps, 최대토크는 34.7kg·m을 발휘한다. 이날 시승 코스는 이베코 인천 전시장에서 출발해 경인 아라뱃길 여객터미널을 찍고 다시 돌아오는 루트였다. 먼저 싱글 캡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물론 경상용차에 정숙성을 바라는 것은 이상하지만 역시나 덜덜거리는 디젤 엔진의 소음과 진동이 실내로 유입됐다.
또한 이런 경상용차들은 수동변속기가 보편적인데 뉴 데일리는 ZF 8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되어 기어 레버와 2개뿐인 페달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시승 대열 출발 신호에 천천히 뉴 데일리를 움직여 봤다. 역시 아무리 겉과 속을 고급스럽게 꾸며도 상용차는 상용차였다. 하지만 에어 쿠션 시트는 고급차 못지 않은 승차감을 제공한다. 이는 운전자의 몸무게에 맞춰 쿠션의 강도를 조절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고 작은 요철을 지나가도 덜컹거리는 소리만 날 뿐 운전자에게 전달되는 충격은 미미했다. 뉴 데일리의 실내 구성 요소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가 나오자 서서히 속도를 올렸다. 초반 가속력은 7톤에 가까운 무게가 무색할 정도로 경쾌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 도로교통법상 2.5톤 이상 화물차의 최고속도가 90km/h로 제한되어 있어 뉴 데일리의 힘을 제대로 만끽할 수 없었다. 90km/h를 넘기면 동력이 차단되며 아무리 가속 페달을 밟아도 더 이상 속도가 올라가지 않는다. 심지어 내리막길에서도 엔진브레이크가 걸린 것처럼 속도를 유지한다.
이번에 새로 추가된 8단 자동변속기는 완벽에 가깝다고 평가받는 ZF사의 변속기를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상용차들은 앨리슨사의 변속기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베코는 독특하게 ZF 변속기를 사용한다. 참고로 뉴 데일리의 변속기는 BMW X5(E70)와 레인지로버 등에 사용된 것과 동일하다. 그래서 믿을 수 있고 무난한 기어 변속감을 보여준다. 경상용차에 적용됐기 때문에 승용차량에 사용된 것보다 약간 셋팅을 달리 해서 변속되는 속도가 살짝 느긋하다. 이런 경상용차를 가지고 레이스를 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초반 1~3단으로 변속시에 토크컨버터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약간의 변속 충격이 있다. 이런 점들을 제외하면 자동변속기의 불편함은 없다. 오히려 동력을 확실히 전달해줘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으며 8단이나 되기 때문에 수동보다 연료 효율성도 더 좋았다.
이 후 목적지 경인 아라뱃길 여객터미널에 도착해 밴 타입으로 옮겨 탔다. 싱글캡과 차이점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동일했다. 단, 적재함이 있는 트럭과 달리 뒤에 적재공간이 막혀 있는 밴 타입이다 보니 공기 저항을 조금 더 받았고 차량이 조금 더 무거웠다. 이러한 차이점을 제외하면 지금 타고 있는 차량이 싱글 캡인지 밴 타입 인지 전혀 모를 정도다.
뉴 데일리는 확실히 매력적이고 국내 시장의 판도를 바꿀 정도의 잠재력을 지닌 차량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가갹은 밴 타입이 6,300만 원, 섀시 캡 타입이 5,500만 원부터 시작하는데, 이는 현대자동차의 마이티와 카운티와 비슷한 수준이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가격 책정이다. 또한 차량의 퍼포먼스와 각종 편의 사양들도 카운티나 마이티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안정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다른 것들이 좋아도 이런 경상용차들은 주행 거리도 많아 쉽게 정비 할 수 있어야 하고 약간의 고장으로도 회사 매출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A/S도 빨리 진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차를 구입할 때 대부분 A/S를 더 신경 쓰며 이러한 부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산 제조사를 많이 선택한다. 따라서 이베코가 다른 수입 경상용차 제조사들 보다 A/S 부분에 신경 쓴다면 곧 도로 위에서 기대했던 것 보다 더 많이 보이게 될 지도 모른다.
글
정휘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