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있는 사람들이 독일 3사 대신 마세라티를 타는 이유

오랜만에 시승 기회가 찾아왔다. 차종은 기블리 SQ4 그란스포트 리벨레 에디션과 르반떼 S 그란스포트 펠레테스타 에디션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두 차종의 이름을 읊는 데만 한참이 걸렸지만, 고민은 잠깐이었다. 선택한 차종은 바로 기블리 SQ4 그란스포트 리벨레 에디션(이하 기블리 SQ4 리벨레 에디션)이다. 르반떼를 GTS와 트로페오로 경험해본 탓도 있지만, 기블리를 둘러싼 호평과 혹평 중 기자는 어느 쪽에 서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수년째 질리지 않는 디자인, 마세라티의 혈통이 맞다

사실 기블리의 디자인이 새로운 감흥을 주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기블리가 출시된 것은 2013 4월이므로 무려 7년 넘게 봐왔기 때문이다. 보통의 세단이었다면 풀체인지를 앞두고 있겠지만, 마세라티 차종의 1세대 당 생명은 거의 10년에 가까우므로 아직은 현역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기블리는 마세라티 브랜드의 엔트리 기종이자 캐시카우였던 만큼 덕분에 도로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탁송된 기블리 SQ4 리벨레 에디션을 접한 첫 느낌은 두 가지 의미로 놀라웠다. 먼저 하나는 왠지 모르게 시선을 빼앗기는 디자인에 있다. 기블리의 헤드램프는 독사처럼 날카로웠고, 프론트 범퍼와 듀얼 트윈 머플러는 스포츠 세단으로도 손색 없었다. 측면의 캐릭터 라인은 리어 펜더를 한껏 부풀려 근육질적인 인상을 완성했다. K7이라 놀림 받기도 했던 리어램프는 온전히 기블리만의 아이덴티티를 가진 디자인으로 완성됐다.

여기에 마세라티 특유의 포인트도 놓치지 않았다. 살짝 꺾인 세로 형태의 그릴과 그 중앙을 꿰뚫은 삼지창, 마세라티 특유의 보닛 라인과 프론트 펜더의 에어 벤트 3, 그리고 후면의 ‘Maserati’ 필기체와 C필러 엠블럼까지. 이 모든 것은 마세라티 혈통의 증명서나 다름없다. 외관만큼은 경쟁 프리미엄 스포츠 세단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라 생각된다.

두 번째는 바로 이러한 외모를 무려 7년 넘게 봐옴에도 전혀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완성도가 높다는 의미다. 현 세대 기블리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13, 기블리의 디자인과 매우 유사한 쿠방 콘셉트카가 등장한 것은 2011년이다. 즉 기블리 디자인의 틀은 사실상 10년 가까이 된 셈인데, 아직까지도 외관에 대한 유저 평가는 매우 호의적이다. 오래된 차량의 티도 나지 않는다. 선대 마세라티 시리즈가 그랬듯 기블리 역시 시간이 흘러도 인정 받을 디자인임은 분명하다.

카본과 명품 가죽
그럼에도 아쉬움 한 조각

멋들어진 외관 디자인을 살펴본 후 실내로 들어섰다. 기블리에게 가장 많은 혹평이 쏟아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도어 핸들을 잡아 당기면 프레임리스 도어가 몸을 낮춰 탑승자를 맞이한다. 실용성을 떠나 감성적이고 스포티함이 가득한 매력적인 기능이다. 여기에 마세라티는 이중 접합 차음 글라스를 적용해 정숙성도 구현했다. 스포츠 세단과 프리미엄 세단으로서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한 부분이다. 뭐가 됐든 오너에게는 두 가지 만족감을 동시에 줄 수 있다.

잠깐 도어에서 빼앗긴 시선을 되찾고 실내 곳곳을 탐색했다. 한참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둘러보고 맡아본 끝에 결론에 도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테리어의 전체적인 구성은 분명 아쉬운 게 맞다. 클러스터야 어쭙잖은 풀 디지털 방식보다 원초적인 바늘형 아날로그를 선호하기에 삼지창이 박힌 계기반은 만족스럽다. 그러나 센터페시아 모니터를 둘러싼 주변부가 너무 정직하게 배치되어있고, 와이드한 맛이 없다. 동승석의 대시보드와 크래시패드 부근도 뭔가 심심하다.

하지만 이외의 단점은 딱히 없다. 오히려 이 차의 등장 시기를 생각해보면 수긍할만한 부분이고, 직접 운전석에 앉아 소재를 쓰다듬어보면 불만은 이내 짙은 가죽 냄새에 묻히게 된다. 공조장치 부근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재는 최고급 천연 가죽 혹은 리얼 카본으로 도배되어 있다. 아주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감성과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스포티함이 공존한다는 의미다. 이는 외관에서 언급했던 프레임리스 도어와 이중 접합 차음 글라스의 조화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각종 편의 및 안전 사양도 최신차량 못지 않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부터 차로 이탈 방지 경고, 오토 하이빔 등의 안전 사양은 물론 통풍 시트, 훌륭한 하만 카돈 사운드 시스템, 리어 윈도우 선쉐이드, 주변을 빠짐없이 비춰주는 서라운드 카메라도 있다. 여기에 리벨레 에디션에는 기어 레버 하단에 ‘Ribelle, ONE OF 30’이라는 뱃지, 블랙&레드 투톤 인테리어를 통해 오너의 만족감도 극대화해준다. 억대라는 가격 이상의 가치는 아니지만, 억이라는 차량에서 빠지면 섭한 기능들은 대부분 들어가있는 셈이다.

우아하지만 강력한 마세라티의 V6 트윈 터보

외관 디자인과 인테리어 감상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과거 르망에서의 영광을 회상하듯 스타트 버튼은 스티어링 휠 왼편에 배치됐다. 버튼을 누르면 생각보다 큰 사운드가 귓가를 강타한다. 배기음이 배기 라인을 가득 메우다 못해 터져 나오는 느낌이다. 스포츠 모드를 눌러 배기 플랩을 열어줘야 비로소 정상적으로 순환되는 듯하다. 그 정도로 소리가 크다.

사운드는 썩 맘에 든다. 크기는 적정하고, 사운드 자체는 6기통 중에서도 탑이다. 포르쉐 911 이후로 이처럼 스포티하고 감성적인 6기통은 처음 만나본다. 특히 회전수가 3,000rpm을 넘어가면서부터 들리는 오로롱소리는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V6 터보 엔진도 마세라티의 손을 거치면 꽤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실내에서는 워낙 정숙함이 뛰어난 탓에 외부에서 만큼은 부각되지는 않는다.

성능은 어느 영역에서나 활력이 넘친다. 기블리 SQ4 리벨레 에디션의 V6 3.0리터(2,979cc) 트윈 터보 엔진은 최고 출력 430ps(5,750rpm), 최대 토크 59.2kg·m(2,500rpm)를 발휘하는데, 출력과 토크 모두 동급 엔진을 압도한다. 특히 3.0리터 가솔린 엔진으로 3.0리터 디젤 엔진 수준인 59kg·m의 최대 토크를 뽑아낸다는 것이 주목할만하다. 트윈 터보 특성상 주행 중 터보랙이 크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다만 GT카를 지향하는 마세라티의 특성과 차체 크기, 차량 무게 때문에 경쟁 차종 대비 순간적인 펀치력은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다. 실제로 기블리 SQ4 리벨레 에디션의 전장은 4,970, 전폭은 1,945㎜에 달할 정도로 크고, 공차 중량도 2,070kg에 달한다. 이는 BMW 5시리즈, E클래스보다도 크고, CLS 혹은 A7과 대동소이한 정도다.

특히 정지상태에서는 차체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스포츠 모드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회전수를 살짝만 띄워놓는다면 얘기가 180도 달라진다. 출발과 동시에 몸을 강하게 잡아 끄는 듯한 가속력은 물론 공식 제로백인 4.7초에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다.

게다가 한번 가속을 시작하면 묵직하면서도 무지막지한 돌파를 이어나간다. 속도계는 거침없이 제한속도를 넘어 Y영역으로 접어든다. 특히 가속력도 가속력이지만, 앞서 말했던 엔진의 회전음 때문에 속도감과 박진감이 배가된다. 이는 마세라티 차량들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