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로 망가진 도로에서 안정감을 선물한 이 차는?

일상. 국어사전의 정의는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다. 그것이 평온함을 전제하진 않는다는 걸, 우리 모두는 2020년에 절감하고 있다. COVID-19는 이미 디폴트가 됐는데, 8월 초중순, 거의 보름 가까이 한반도를 위아래로 훑었던 폭우도 그랬다. 랜드로버의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이 때 만났다. 컴팩트 오프로더의 정석인 이 차로, 별도의 오프로드를 갈 필요가 없었다. 2박 3일 간의 시승 중, 해가 갠 건 한나절에 불과했고, 도로 곳곳은 예측조차 되지 않는 포트홀로 얽어 있었기 때문이다.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재규어랜드로버의 차와는 큰 인연이 없었다. 그러나 운전석에 앉는 순간의 안락함 덕분에 낯섦은 없었다. 시트 폼의 압력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부드러움을 살렸고 무엇보다 럼버 서포트의 위치가 몸에 잘 맞았다. 경미한 디스크 증세를 앓고 있어 시트 구조에 다소 예민한 편인데, 같은 증세를 가진 운전자들이라면 마음에 들 만하다. 브레이크와 엑셀러레이터 페달 역시 몸이 틀어지지 않을 위치에 정렬돼 있다.

가죽 재질은 부드럽고도 견고하다. 경쟁적으로 나파 가죽을 넣는 트렌드에 동참하기보다 외력이나 자극에도 잘 견디는 튼튼함이 먼저라는 가치를 잘 보여주는 풀그레인 타입이다. 다만 시승차와 같이 밝은 색상의 경우 관리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센터페시아의 조작 계통도 편리해다. 하단 두 개의 다이얼은 버튼을 바꿈에 따라 공조와 차량 제어로 변환해가며 쓰는 방식인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버튼과 레버 간의 논리적 관계는 직관적이기보다는 인지에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고도의 논리화에 가까웠다. 평평하고 깔끔한 전체적 구조는 인덕션 타입 가전제품처럼 깔끔한 단면을 이룬다. 터치프로 2라는 명칭의 터치스크린은 10.25인치다. 수치보다는 넓게 느껴진다. 해상도가 높고 터치 반응성도 기민했다. 인텔리전트 AWD,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의 작동 상황 그래픽도 이해가 쉬우면서 보는 재미도 있다.

운전 중에 자주 볼 일은 아니지만 12.3인치 계기반 역시 시인성이 높다. 스티어링휠 리모컨으로 디스플레이 레이아웃과 주요 정보를 조절할 수 있다. 리모컨에 표시되는 기호들은 기능에 따라 변한다. 이 외에 스티어링휠 좌우 레버에 메탈 재질을 적용한 것도 자잘한 고급화 포인트다.

오디오 시스템은 재규어 랜드로버와 인연이 깊은 메르디안 사의 스피커 시스템이 적용돼 있다. 컴팩트한 오프로더지만 차음 효과가 좋아 고르고 부드러운 사운드를 들려준다. 어차피 컴팩트한 프로더를 지향하는 차에서 각 주파수대별로 정밀하게 분리된 소리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폭우가 차를 두들기는 상황에서도 비교적 높은 주파수대의 악기와 보컬 소리가 또렷했다.

이런 특징들로 볼 때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단지 오프로더 명가의 막내라고만 불리기엔 부당한 듯하다. 오프로더에 스포티한 GT의 가치가 반영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터다. 

시간당 80㎜ 이상의 폭우에 지반이 약해지자 아스팔트들은 맥을 추지 못했다. 대형차가 자주 지나다니는 구간에는 설치류 동물들이 파놓은 구멍 같은 포트홀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생겼다. 실제 목장에서는 이 굴 때문에 가축들이 발목을 다치는 경우가 많은데, 자동차들도 포트홀로 인해 다치기 십상이다. 야간이고, 폭우로 인해 구멍에 물이 차 있으면 식별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과연 오프로더였다. 물론 속력을 줄이고 통과하긴 했지만 바퀴 아래의 상황은 운전석으로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일반적인 전륜 구동의 컴포트 모드만으로도 충분했다. 도심지 도로조차도 동전 한 개가 잠길 만큼 비가 거셌으나 최대 60㎝ 깊이까지 도강도 가능한 차량이므로 걱정 없이 달렸다. 어떤 상황에서든 바퀴가 지면을 찾아내서라도 붙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지만 동시에 승차 공간은 잔잔한 물 위에 뜬 배와 같았다.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가진 오프로더로의 면모를 도심에서 경험할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