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로드 아이콘이자 원조 맛집, 랜드로버 디펜더 110

지난 2016년 랜드로버는 더 이상 디펜더를 생산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디펜더의 은퇴식을 거창하게 치렀다. 하지만 이 후 2019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통해 신형 디펜더를 공개해 이목을 끌었다. 전 세계적 매체로부터 받은 상만도 30여 개에 달한다. 이 차는 지난 9월에, 해당 차종 역사 최초로 한국 시장에도 출시됐다. 현재로서는 국내 각 단체가 꼽는 올해의 SUV로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과연 디펜더가 그러한 매력을 가진 차인지 직접 살펴봤다.

매우 부드러워졌다는 디펜더 정말일까?

랜드로버 디펜더의 역사는 1948년 출시한 랜드로버 시리즈로부터 시작됐다. 랜드로버 시리즈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G바겐, 지프의 랭글러처럼 처음에는 군용차로 개발됐지만 민간인들에게도 판매된 SUV. 초창기의 랜드로버는 프레임에 철판을 붙이고 엔진을 장착한 날 것 그대로의 자동차로, 자동차라기 보다 쇠로 만든 상자에 가까웠다.

이 각진 모습에 디자인적인 의미를 불어넣은 랜드로버가 나온 건 이후 1984년의 일이었다. 사실 랜드로버 디펜더라는 이름은 1989년 디스커버리가 출시되면서 네이밍을 정리하면서 붙은 이름이다. 초기에는 랜드로버 90, 랜드로버 110로 불렀는데, 휠베이스가 각각 2도어 90인치, 4도어가 110인치였기 때문이다. 네이밍만 다를 뿐 1983년에 출시한 디펜더나 2016년 단종된 디펜더나 거의 똑같이 생겼다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2020년에 공개한 올 뉴 디펜더는 많은 면에서 달라졌다. 모노코크 바디를 채택했으며 남성적인 직선 일변도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하며 부드러운 면을 갖게됐다. 그래서 디펜더 팬들은 신형 디펜더를 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출시된 랜드로버 올 뉴 디펜더는 역대급 퍼포먼스를 뽐냈다. 먼저 팬들의 우려와 달리 새로운 알루미늄 D7x 플랫폼은 경량 알루미늄 모노코크 구조에 기존 프레임 바디 방식의 차체 설계보다 3배 더 견고하게 제작됐다. 골수 팬들로부터 합격을 받은 부분이기도 하다.

디자인도 실물을 직접 보니 마냥 부드러워 졌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프레임에 철판을 붙인 듯한 외관과 볼트와 너트를 실내까지 그대로 노출시켜 원초적인 멋을 강조한 데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신형 디펜더도 다른 SUV들과 비교하면 매우 단단해 보인다. 그리고 디펜더의 헤리티지를 살리기 위해 직선을 많이 사용했으며 전면부의 둥근 헤드램프와 후면의 사각형의 리어램프 그리고 루프에 있는 알파인 글라스 등을 곳곳에 디펜더의 아이덴티티가 남아있다.

실내도 마찬가지다. 이전과 달리 가죽과 알루미늄으로 구성되어 있어 안락해 보이지만 일부러 도어 트림이나 센터콘솔에 볼트를 드러나도록 해서 디펜더만의 감성을 구현했다. 또한 정통 오프로드 혈통을 이어 받은 SUV답게 모든 곳을 잡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이 점은 정말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구형 디펜더를 실물로 본 적이 없다는 전제 하에 비교적 신형 디펜더를 본다면 디자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적을 것이다. 다만 실제 크기에 있어 이미지와 실물의 괴리감이 크다는 것이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다. 사진 속 디펜더는 지프 랭글러 정도 크기로 보이지만 눈앞에 마주한 디펜더의 체감 크기는 랜드로버의 플래그십인 레인지로버보다 컸다.

그러나 디펜더의 매력은 거대하고 단단해보이는 외관이 아니다. 그 속에 있는 오프로더로서의 개성을 살린 디테일 요소들이다. 먼저 디펜더의 인상을 더욱 강하게 보여주는 A 프레임 프로텍션 바는 단순히 디자인 요소가 아니라 실제로 전면부를 손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기능도 한다. 광택 사이드 튜브는 오프로드 주행 중 도어 측면을, 프론트 및 리어의 머드 플랩은 전·후방으로부터의 이물질과 오염물로부터 도장을 보호해준다.

또한 트렁크 바닥은 고무 매트로, 적재물의 미끄럼 방지는 물론 방수 기능으로 트렁크 바닥의 오염도 방지한다. 여기에 짐을 싣고 내릴 때 리어 범퍼의 긁힘과 손상을 방지해주는 리어 스커프 플레이트도 적용되어 있어 촬영 당시 안심하고 마음 편하게 장비를 실을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디펜더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는 스페어 휠 커버와 좌즉 프론트 펜더에 스노클을 장착할 수 있는 구멍이 오프로더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익스테리어 측면에 장착되어 있는 캐리어는 약 24리터 용량으로 수납성은 우수하나 사이드미러를 약간 가려 차선 변경 시 방해가 된다. 그리고 최근에 출시된 SUV임에도 트렌드처럼 번지고 있는 하단까지 덮어 주는 타입의 도어가 아니라서 험로 주행 후 하차 시 바지에 지저분한 것들이 다 묻는다.

매운맛 오프로더, 그 가치는 명불허전!

외관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더라도, 올 뉴 디펜더의 오프로드 능력이 양산차 최고 수준이란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로 포장률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 있다 하더라도 안전상의 이유로 대부분은 진입 금지 구역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오프로드의 만 볼 수 있는 경기도 여주 부근의 장소로 향했다.

오프로드에 진입하기 전 에어 서스펜션을 이용해 지상고를 높였다. 디펜더의 에어 서스펜션은 최저 40에서 최대 75까지 확장 지상고를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최대로 확장한 디펜더의 지상고는 291㎜로 현재 양산 중인 자동차들 중 가장 높다. 이 때 접근각과 이탈각은 각각 38º, 40º 로 양산형 SUV에서 보기 힘든 능력을 보여준다. 또한 등판각은 100% , 45º까지 올라 갈 수 있다. 실제로 45도의 경사로는 거의 절벽 수준이다. 경쟁 상대인 지프 랭글러의 최대 등판각은 38º에 그치는데 디펜더의 등판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날 갔었던 장소는 그저 비포장도로였을 뿐 디펜더의 접근각 및 이탈각을 시험해볼 경사 지형은 아니었다. 도강능력도 양산SUV 중 최고로 무려 900, 거의 1미터에 육박하는 깊이를 도강할 수 있다. 이는 일반 성인의 골반이나 허리 정도 높이다. 참고로 지프 랭글러의 도강능력은 760㎜다. 당연히 휠 아티큘레이션(험로 주행 시 서스펜션의 유연함)과 도 매우 좋아 바퀴가 공중에 떠 있어도 안정적이다. 그래서 어떠한 길도 돌파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준다.

그리고 디펜더에는 랜드로버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클리어사이트 그라운드 뷰가 내장되어 있어 오프로드 주행 시 보닛을 통과해서 볼 수 있다. 이 기능은 마일드한 오프로드를 주행 할 때도 매우 도움이 되며 제대로된 오프로드 주행시에는 전방에 있는 장애물을 쉽게 파악하고 안전하게 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