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특별한 것을 감추고 있는 것 같은데, 특출남을 품고 내어놓지 않으려는 브랜드라면, 방법은 없다. 작정하고 몰아보는 것이다. 긴 밤과 낮을 베어내어 어론 님 오신 날에 펼친 듯 오래 운전해 보면, 비로소 꿈처럼 이야기가 나온다. 파사트 8세대의 페이스리프트, 파사트 GT도 마찬가지다. 900km 조금 넘게 타 보면, 뭐가 들려도 들리고, 보여도 보인다.
디자인의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브랜드에
폭스바겐 브랜드 차종들의 디자인은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동 그룹 산하 다른 브랜드와 달리, 스타 디자이너의 이름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낮다. 어떤 매력적인 선과 면도 폭스바겐 브랜드의 이름을 넘어설 수 없다. 물론 과거 골프를 디자인한 조르제토 주지아로도 있지만, 지금과 같은 그의 존재감은 한참 뒤에 만들어진 것이다.
파사트 GT의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다. 페이스리프트인만큼 8세대 디자인의 기본 틀을 유지했다. 전장이10㎜ 길어져 4,775㎜가 됐지만 시각적으로 큰 변화는 찾기 어렵다. 측면에서 보면 휠 디자인도 그대로다.
시트 가죽은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처음 적용된 나파 가죽이다. 나파 가죽 특유의 천 같은 질감을 과장되게 살리기보다는 그레인 타입 가죽이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는 느낌이다. 실내 디자인 역시 깔끔하고 모던한 가운데 파사트만의 보수성이 있다. 대시보드와 송풍구 디자인 등은 오로지 직선이다. 제타, 투아렉 등의 센터페시아처럼 운전자 쪽으로 살짝 기울어지지도 않았다. 브러시드 알루미늄 타입의 트림에선 일종의 결기까지 느껴진다. 도어 미러에 비치는 도어 상하 캐릭터라인의 날까지 그러하다.
LED 등화류의 미세 터치,
깔끔함을 더하다
이미지 변화는 오로지 기능을 통해 확인된다. I.Q 매트릭스 헤드라이트라는 네이밍의 LED 능동형 등화류는 그래픽 타입의 턴 시그널, 야간 주행 중 능동적인 LED 등화류의 움직임을 통해, 철저히 기능적으로 운전자에게 어필한다. LED 헤드램프와 상향등 유닛은, 빛 자체도 밝지만 전방 상황 즉 선행 차량 및 대향 차로 차량 등에 대한 정확한 반응이 돋보인다. 상향등 조건에서, 먼 표지판을 먼저 비춰주는 긴 조사거리와 LED 특유의 확산성은 야간 고속도로 운전 시 느껴질 수 있는 약간의 으스스함을 덜어준다.
햇볕 속에서 역광으로 보는 I.Q 라이트 시스템은 거의 변화가 없는 파사트 GT의 디자인에 깔끔한 터치를 더한다. 녹을 듯한 아침 햇살을 등진 파사트 GT의 전면의 LED 주간주행등은 깔끔하고도 단정한 인상을 더한다.
기본기를 따지는 것은 실례겠지만
파사트 GT에는 에코, 노멀, 스포츠, 인디비주얼의 4가지 주행 모드가 있다. 인디비주얼은 각 모드의 특성을 조합해 운전자 자신에게 맞추는 것이니 보편적으로는 3가지 모드가 기본이다. 꽤 장거리 주행을 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일정 중 80% 이상은 에코 모드로 달렸다. 덕분에 서울로 복귀할 때까지 연료 잔량은 1/4을 유지했다. 10리터 정도를 복귀 중에 주유했는데 이것도 자동세차기를 조금 활용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전체 일정을 마쳤을 때의 연비는 19km/L에 육박했다. 사실 노멀 모드로도 17~18km/L는 충분히 나오는 수준이다. 다만 댐퍼의 감쇠력과 스티어링휠의 무게는 두 모드 사이에도 차이가 느껴졌다. 에코모드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안락하게 왔는데, 스포츠 모드로 두면 차는 훨씬 딱딱하고 빡빡해진다. 모드 간 구분이 확실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고속선회에서는 전륜 구동임에도 흐트러짐을 크게 느낄 수 없다. 자세 회복이라는 말을 따로 쓸 필요도 없이 딱 적절한 움직임만을 보여주는 것이 파사트 GT의 스포츠 모드 감쇠력 세팅이다. 전륜 구동 차량에서 이런 능력은 바로 안전과 결부되는 점이다.
7단 DSG(DCT)의 반응 속도는 굳이 따질 필요가 없었다. 다만 에코 모드에서는 변속 시 토크가 너무 과하게 쏟아지는 것을 막도록 설계돼 있어 가속력은 제한적이다. 수동변속기 운전에 익숙한 정휘성 기자의 경우는 매뉴얼 모드를 활용해 최대 토크 구간을 십분 활용하며 달렸다. 차가 남도에 머무를 때는 주로 그가 운전했으므로, 이 방식으로 계속 움직였으며, 엔진회전수 게이지 아래 표시되는 변속 안내보다 조금 더 늦게 변속하며 40.8kg∙m에 달하는 최대 토크 구간을 활용했다. 그럼에도 연비는 16km/L대를 유지했다. 프레스티지 전륜 구동의 경우 공인 복합연비는 14.9km/L(도심 13.4, 고속 17.4)이다.
정지 상태에서 100km/L에 도달하는 시간은 제원상 7.9초이나 주행 당시 노면 온도가 낮고 마찰력이 부족해 이를 충분히 실험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60~70km/h 정도의 속력에서 추월 가속에 필요한 최소 120km/h 정도의 속력까지 치고 올라가는 능력은 노멀 모드에서조차 출중했다. 가속 시 가뿐함은 페이스리프트 전과 그대로다. 2.0리터 디젤 엔진이고 휠베이스가 2,786㎜라는 점을 감안하면 1,603kg의 공차 중량은 가뿐하다. 최고 출력 영역을 활용할 수 있는 고속 가속 시 후미가 들뜨지도 않았다. 압도적이라 할 순 없지만 기본기는 양보하지 않는다.
조력자의 역할에 충실한
트래블 어시스트
파사트 GT에도 카메라, 레이더 센서, 초음파 센서를 모두 활용해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레인 어시스트 등을 통합 제어하는 ADAS가 적용된다. 폭스바겐은 이를 트래블 어시스트로 칭하고 I.Q 드라이브 브랜딩의 핵심으로 마케팅하고 있다.
트래블 어시스트는 최대 210km/h의 속력까지 전개 가능하다. 설정과 거리 조절 등은 스티어링휠 오른쪽 스포크의 버튼 조작으로 간편하다. 앞 차량의 속력에 따라 감속 후 재가속 시에는 직접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조작할 때와 다른 부드러운 변속 반응이 특징이다. DSG의 직결감을 좋아하는 이들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따위 웬말인가’ 하겠지만, 장거리 주행에 있어서는 분명한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저속 정체구간에서도 작동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이지만 이번 장거리 주행에서는 정체 구간이 거의 없었다. 이는 보쉬 사의 기술로, 아우디의 경우에 트래픽 잼 어시스트라는 보쉬의 제품명을 그대로 해 먼저 적용됐고, 폭스바겐의 경우에는 이 파사트 GT가 최초라는 것이 폭스바겐 측의 설명이다.
개입 범위는 정확하고 절제돼 있다. 교량 구간 내리막에서 관성에 의한 속도 증가도 적고 좌우 차선 인식에 의한 조향 보조도 급작스럽지 않다. 제법 곡률이 큰 도로나 고속 주행으로 인해 원심력이 크게 발생할 때도 조향 어시스트 모터가 버텨냈다.
다만 해가 직각으로 떠 있는 정오 무렵 콘크리트 포장 구간의 차선 인식률은 살짝 부족했다. 이 차만의 단점이라기보다는 전체적인 ADAS 시스템들이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또한 트림 차이인지는 모르겠으나, 제한 속력 표시나 권장 속도 설정 기능도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파사트 GT 프레스티지의 가격은 4,990만 원이다. 이 가격대는 소비자로서 생각의 흐름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넘치는 여울목이다. 몇 년을 탈수록 신뢰감이 느껴지는 차를 선택할 것인지, 어차피 자주 바꿀 차이니 편의 사양과 차 자체의 등급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마음이 어지러울 수 있다. 과거처럼 수입차의 손만 들어줄 만큼 국산차의 만듦새가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모든 부분의 적절함만을 취해 고급 세단으로서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브랜드는 많지 않다. 900km는 자동차에 있어 견고함이란 가치는 어떤 사양에 비춰도 가치가 바래지 않음을 체감하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