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매운동도, COVID-19도 막을 수 없었다. 2021년 렉서스 ES의 국내 판매량은 누적 5만 대 판매를 돌파했다. 2만 대를 돌파한 것이 2017년임을 감안하면 3만 대를 더 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훨씬 단축됐다.
물론 ES의 승승장구는 글로벌한 현상이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렉서스는 7세대의 페이스리프트를 맞이해 4륜 구동 버전, F-스포츠 등을 라인업에 최초로 투입하며 운신의 폭을 확장하고 있다. 이 중 F-스포츠는 오는 11월 국내 고객들에게도 인도될 예정이다. 비가 내리던 지난 9월 말, 미리 만나본 ES300h의 F-스포츠를 한 발 먼저 만나보았다.
F-스포츠 라인업의 확대
그 의미는
렉서스의 고성능 배지인 F는 5.0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비교적 작은 차체에 집어넣고 물리적인 퍼포먼스와 감성적인 면을 두루 만족시키는, 어찌 보면 최근의 고성능 트렌드와는 결이 다르다. 게다가 그룹 차원에서도 스포츠 지향 네이밍의 교통정리가 완벽하지 않다. 글로벌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브랜딩을 펼친 메르세데스 AMG나 BMW M에 비해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 수입차 시장의 양적 성장 속에서 소비자들의 취향은 분명히 나뉘고 있다. 그 중 독일 브랜드와 일본 브랜드 고객들의 취향차가 두드러진다. 이런 조건에서 F-스포츠에 고성능의 자취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간 국내 판매 중인 렉서스 차량에 F-스포츠 트림이 있는 차종은 UX250h, NX 300(가솔린 터보), RX 450h였다. 이에 더해, 최고 인기 차종인 ES에 F-스포츠가 추가된다.
F-스포츠는 AMG 라인이나 M 패키지처럼 고성능 F의 ‘맛’을 내는 외관, 내장 패키지 트림이다. ES F-스포츠는전면 중앙 라디에이터 그릴 및 좌우 범퍼 사이드 스플리터에 특유의 메쉬 타입 그릴이 적용됐다. 사이드 스플리터와 중앙 그릴 사이 공간의 입체감이 다른 트림에 비해 도드라진다. 여기에 19인치 블랙 휠 그리고 프런트 펜더 위쪽에 ‘F’배지가 부착돼 있다. 컬러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F 배지는 눈에 쉽게 띄지 않아, 좋게 말하면 조금 ‘겸손한’ 편이다.
후미등 위쪽과 트렁크 리드 하단 사이, 그리고 범퍼 하단에 길게 블랙 가니쉬가 적용됐다. 전면, 휠, 후미까지 블랙이 포인트가 되는 드레스업 사양이다.
TNGA의 잠재력 혹은 확장된 경험,
ES300h F-스포츠
운동성을 중시해 단단하기(stiffness)를 강조한 TNGA 플랫폼은, LS의 고객들에게는 별로 좋은 평을 못 받았다. 그러나 ES와 그 외의 차종에서의 평가는 나쁘지 않다. 물론 ES의 고객층이 가장 넓고 그만큼 고객들이 차의 특성에 바라는 브랜드 순도가 LS만큼 높지 않은 영향으로 보인다. 2018년 가을에 7세대ES를 국내에 처음 선보이며 진행한 시승회에서도 기자들에게 중점적으로 권한 것이 주행 및 조향 감각의 탄탄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ES의 전장은 4,975mm, 휠베이스가 2,870mm로 전기형과는 동일, 전 트림 통일이다. 여기에 무게가 적지 않은 244.8V의 리튬 이온 배터리가 적용돼 있다. 흔히 말하는 라이드 & 핸들링에 유리할 게 없는 조건이다. 그러나 전기형에서 증명됐듯, 7세대 ES 섀시의 기반인 TNGA라는 플랫폼 공법의 한계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있다.
F-스포츠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스포츠와 스포츠 플러스(+) 모드 및 파워트레인 서스펜션 커스텀 모드에서 노면 상황에 대해 감쇠력을 선제적으로 조절하는 AVS(Adaptive Variable Suspension)까지 적용됐다. 이 시스템은 2000년대 후반, LX에 적용된 이래 십여 년 간 세단, SUV 각 장르에 맞게 조정되어, LX, GS 등의 상위 트림에 적용돼 왔다.
그러나 ES는 기본적으로 승차감을 중시하는 차다.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모드 활용 시 컴포트나 노멀, 에코 대비 댐퍼의 반응이 조금 단단해지는 것은 느낄 수 있지만 다른 브랜드처럼 극적인 변화라고 보긴 어렵다. AVS 역시 쫀쫀하고 강력한 코너링 성능을 목표로 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승객이 느끼는 안정감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ES F-스포츠에서 방점은 어디까지나 ES에 찍힌다는 걸 확인하게 됐다.
다만 서스펜션 이전에 차량의 거동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타이어의 경우 단면폭이 235mm(편평비 40%)로, 19인치의 직경에 비해 다소 좁았다. 이는 ES의 분명한 정체성 즉 일상적 주행에서의 안정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선에서, 하이브리드로서의 효율성 제고와 구동 소음 및 불쾌감의 적제라는 가치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다. 그런 의도가 분명하기도 하고, 비가 내리는 날씨기도 해서 와인딩 코스를 타는 건 무리였다. 그러고 보니 2018년 시승회 때도 많은 양의 비가 쏟아졌던 기억이 났다.
도전은 생각 없었는데,
아깝게 놓친 ‘연비왕’
이날 시승 행사 전, 렉서스 측은 ‘연비왕’을 뽑는다는 메시지를 기자들에게 전했다. 하지만 렉서스의 우수한 실연비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보유하면서 어느 정도 ‘극’ 수준의 연비도 경험해봤기에 굳이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아까웠다. F-스포츠로 최고의 연비를 기록한 이가 19.9km/L였다는데, 본 기자가 기록한 연비가 19.7km/L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연비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주행했다. 와인딩을 제대로 즐길 수야 없었지만 순간순간 스포츠 모드를 활용했고, 거의 대부분 구간에서는 에코가 아니나 컴포트 모드를 중심으로 운전했다. 참고로 이 차의 공인 복합 연비는 16.8km/L다.
렉서스의 직병렬 하이브리드는 엄연히 2.5리터의 D-4S 엔진이 중심이 된다. 합산 출력 218ps는 178ps의 엔진 최고 출력과 구동 모터의 29.1kW(40ps)를 조합한 출력이다. 특히 100km/h 이상의 영역에 들어가면 엔진이 중심이 된다. 모터는 가속 시 협응의 역할이 더 크다. 물론 2.5리터 가솔린 엔진은 효율이 최적화된 영역에서 가동되기 때문에 엔진을 중심으로 한다고 해도 연비가 크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1,680kg의 공차 중량도 차체 크기 대비 가벼운데, 이 점도 연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파워트레인 특성은 전기형과 달라진 점은 없다. 추월 가속에서 약간의 느긋함이 느껴지긴 하지만 스포츠 모드로 놓으면 제법 치고 나가는 맛도 있다. 물론 그럴 때조차 엔진 구동음은 고르고 부드럽다. 참으로 온순한 차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계기반은 F-스포츠 특유의 이동식 클러스터가 적용돼 있다. 디지털 화면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는 현재 대부분 제조사의 트렌드와는 다른 렉서스만의 감성과 역동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