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자연보다 도시에 길들여져 있고 야성이라곤 거세된 사람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렇기에 적지 않은 금액의 오프로더를 사는 이들을 응원할 순 있어도 이해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야든 ‘순한 맛’으로 접하고 나면 약간의 흥미가 생길 수 있습니다. 포드의 브롱코가 오프로드를 도시인들에게 선물하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험난한 오프로드를 쉬운 예제로 바꿔 풀이의 즐거움을 전해주는 차란 의미죠. 경기도 안성, 한 채석장에 마련된 험로에서 포드 브롱코를 만난 시간, ‘브롱코 플레이그라운드(Bronco Playground)’를 간략히 기록해보았습니다.
미국미국’한 작명 센스
브롱코 아우터뱅크스 ‘이럽션 그린(Eruption Green)’ |
세계 주요 자동차 매체 관계자들이 미국 브랜드의 장점 중 하나로 모델명, 트림, 기능에 대한 네이밍을 꼽습니다. 독일 브랜드들은 주요 기능을 최대한 객관화, 일반화시키기 위해 실험실에서 숫자와 알파벳을 못살게 굽니다. 반면 미국 브랜드들은 그 기능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특징을 비유하는 명쾌한 한 단어를, 그들의 일상이나 자연 등에서 쉽게 집어올립니다.
브롱코는 트림명에 특징적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미국의 명소 지명을 녹였습니다. 아우터뱅크스(Outerbanks)는 노스캐롤라이나의 해안가 지명입니다. 말 그대로 자연적인 해안 제방(bank) 형태의 지형인데,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비행을 성공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최근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유명하w죠. 그 외에 빅 벤드(Big Bend)는 텍사스의 국립공원, 블랙 다이아몬드(Black Diamond)는 콜로라도, 배드랜즈(Badlands)는 사우스다코타의 국립공원이죠. 여담으로 블랙 다이아몬드는 쉐보레 피업트럭 아발란쉬의 트림명이기도 했습니다.
그 중 한국에 들어온 것은 아우터뱅크스로, 최상위 트림입니다. 포드∙링컨의 엔진 중에서 배기량과 동력성능 사이에서 가장 좋은 밸런스를 보여주는 최고 출력 318ps(314hp), 최대 토크 55kg∙m를 발휘하는 2.7리터(2,694cc) 트윈터보 V6 가솔린 엔진이 장착됐습니다. 미국 기준이지만 높은 옥테인가의 휘발유를 넣으면 최고 출력이 334ps(330hp)까지 구현됩니다. 변속기는 오프로더 중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10단 자동입니다. 참고로 2.3리터 에코부스트의 경우에는 크롤러 기어가 있는 6+1단 방식의 게트락 수동변속기가 적용됩니다.
컬러명도 재미있습니다. 청록색과 그레이를 섞어 놓은 에어리어 51은 미국의 군사시설 명칭이죠. 브롱코플레이그라운드 행사에서 제가 탄 차는 이럽션 그린, 말 그대로 폭발하는 듯한 초록색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고채도 메탈릭의 그린 컬러는 잘못하면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차 자체가 평범하지 않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생각보다 흔하지 않은
합리적 가격의 V6급 가솔린 오프로더 |
국내 시판되는 정통 오프로더 중 가솔린 엔진 장착 차종이라면 랜드로버 디펜더의 P300(2.0리터 직렬 4기통), P400(3.0리터 직렬 6기통), 지프 랭글러(2.0리터 직렬 4기통) 정도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디펜더는 동력 성능이 출중하나 각각 1억, 1억 4,000만 원 이상입니다. 지프 랭글러는 6,900만 원대인 브롱코와 가격은 비슷하지만 동력 성능은 275ps(272hp)로 조금 낮은 편이죠.
사실 오프로더에게 절대 출력이 중요한가 할 수도 있지만 주무대인 미국 대륙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한국에서야 그런 장소가 흔지 않지만 미국에선 넓은 평원을 고속으로 달릴 일이 실제로 있으니까요. 실제 2021년 3월, 을왕리 인근에서 진행된 레인저 픽업트럭 행사에서 80km/h 정도의 고속 주행 경험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제한된 코스 내에서 잠깐이었는데, 미국에선 실제 그런 길을 몇 시간이고 달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브롱코의 놀이터는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채석장 부지로 사유지였습니다. 화강암을 캐내며 산을 깎아내고 만든 평지는, 미극 대자연에서 만날 법한 험로 코스를 압축한 것이었습니다. 범피 코스, 도강 영역, 웨이브 코스 등으로 구성된 A 코스, 그 주변 산길을 오르내리는 ‘산악전’ 구간은 B 코스였습니다. 이 중 저는 B 코스를 먼저 접했고,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중점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B 코스는 시작부터 거의 45º에 가까운 경사로를 한달음에 달려올라가는 길입니다. 비단 브롱코뿐만 아니라 오프로더로 경사로를 탈 때는 가속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때 4L 모드는 갑작스런 변속으로 인한 토크 변화를 막고 최대 토크를 지속적으로 차축에 전달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사실 이 채석장 인근 도로의 가장 높은 곳은 120미터 정도의 절벽입니다.
나중에 드론으로 보니 그 절벽과 도로는 불과 몇 미터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주행 당시 창으로 보이는 풍경을 통해 대략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새삼 나중에 보니 숨이 막혔는데, 그만큼 타는 당시에는 불안함보다 역동성이 주는 즐거움이 컸습니다.
물론 오프로더의 덕목은 험로를 평지처럼 느끼게만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충분히 경각심을 가져야 할 도로에서 잘못된 판단을 끌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죠.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경사나 충격에 압도되지 않고 전체적인 상황을 안정적으로 보며 운전할 수 있는 여유, 즉 힘을 기반으로 한 도전적 주행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좋은 오프로더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