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리터 디젤 버전의 DS7 크로스백의 경우, 국내 출 시 후 여러 가지 기회로 시승과 촬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 DS7 크로스백에 1.2리터 가솔린 퓨어텍 엔진이 장착된다고 했을 때, 기대치는 낮았습니다. 아무리 1.2리터 퓨어텍은 인터내셔널 엔진 오브 더 이어(International Engine of the Year)를 3년 연속 수상한 엔진이라지만 C를 넘어 D세그먼트에 가까운 SUV를, 그것도 8단 자동변속기와 결합해서 제대로 된 주행 감각을 낼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차라리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가져와 프리미엄 시장에서 승부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쉬움을 충분히 덮을 만큼의 차입니다.
통풍 시트 있음! 매력적
디자인과 안락함은 기본 |
시승한 차는 DS7 크로스백의 두 트림 중 상위인 그랜드 시크(Grand Chic)였습니다. 우선 사양 면에서 이 차는 여느 5,000만 원대급 차종들과 비교해도 밀릴 것이 없습니다. 정교한 제어와 작동으로 시인성이 좋은 ZKW의 매트릭스 타입 LED 유닛은 LED 등화류 중에서도 상당한 고가입니다. 휠도 19인치가 적용돼 있습니다.
인테리어 면에서는 인체공학적인 면에서의 안락감이 우수한 폼과 부드러운 질감의 가죽 소재와 특수 소재인 알칸타라를 잘 조화시켰습니다. 엉덩이 부분 자체에는 통기성이 높은 소재를 사용했고 여기에 통풍시트까지 추가됐습니다. 포칼 오디오 시스템도 들어갔죠. 2.0리터 디젤에 적용되던 나이트 비전시스템만 없을 뿐 주요 능동 및 수동 안전 시스템도 빠짐없이 적용됐습니다. 특히 구 PSA 그룹 계열의 ADAS는 차선 검출과 조향 제어, 제동 능력이라면 기본기가 탄탄합니다. 상품성 자체가 괜찮은 차입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이 좋은 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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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차고지인 강남 파이낸스센터에서 나와 시내 도로로 합류할 때만 해도 ‘역시나 1.2’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오자마자 시작되는 오르막길에서 차로를 변경해야 하는데 액셀러레이터를 꽤 깊이 눌렀음에도 움직임이 굼떴습니다. 꽤 세게 틀었던 에어컨을 꺼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최대 토크는 23.5kg∙m(1,750rpm)입니다. 공차 중량은 1,600kg이 되지 않아 토크 당 중량 비율이 나쁜 것은 아닌데, 단면폭 235㎜, 편평비 50%, 내경 19인치의 휠 & 타이어가 부담인가 했습니다. PSA 그룹 계열의 차를 타면서 연비를 신경써본 적은 없는데 처음으로 11.8km/L의 공인연비가 나올까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20km/h 미만으로, 주행 시 엔진회전수가 아주 낮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둔함이었습니다. 엔진회전수가 최대 토크구간에 가까워지면 아쉽지 않은 움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빠른 변속기 반응도 위로만 빠른 게 아니라 아래로도 빨랐습니다. 토크가 크지는 않지만 심플하고 가벼운 유닛을 자랑하는 EAT8의 정확한 반응 덕분에 운전 시에 답답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저단에서도 3기통 엔진 특유의 불쾌한 진동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수동 모드로 저단에 고정시켜놓고 오르막길에서 일부러 급가속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별로 3기통 특유의 진동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40kg∙m대의 토크를 가진 2.0리터 디젤 엔진도 잠잠하게 만들었던 것이 이 차의 NVH(노이즈, 진동, 거슬림 제어) 성능이었습니다.
결과값이라고 할 수 있는 연비도 1.2리터 가솔린 엔진의 준중형급 SUV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간선도로 주행에서는 순간연비가 수시로 18~20km/L를 찍었습니다. 시내주행과 합산하면 평균적으로 15km/L 이상의 연비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새삼 느낀 EAT8의 똘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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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잠시 변속기를 언급했습니다만, 이 엔진으로 이 정도의 차체를 끌면서 우수한 연비를 발휘하는 것은단연 8단 자동변속기의 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내 도로에서는 거의 6단 정도만 볼 수 있어서 혹시 시트로엥의 C4 칵투스에 적용됐던 EAT6였나 하는 착각도 들 정도였습니다. 앞서 살펴봤지만 시내 구간에서 최대 토크 구간에 빨리 도달한 다음 상향 변속해 관성 주행을 하게 하려는 의도가 보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DS7 크로스백 가솔린의 7, 8단은 무척 정직합니다. 75~80km/h 정도에서 7단, 100km/h 정도에 가까워지고 항속 주행이면 8단입니다.
ADAS를 사용하면 미세한 타이밍 차이이긴 하지만 상향 변속이 조금 빨리 이루어집니다. 물론 선행 차량의 속력이 느려지고 일정 이상 가까워지는 경우 혹은 토크가 더 필요한 오르막길을 만나는 경우에는 재빠른 하향 변속이 이뤄집니다. 크루즈컨트롤 작동 중 하향 변속 시 자동변속기에서 생기는 특유의 충격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챔버 내 압력 조절 등 기본기에 충실한 면입니다. 사실 구 PSA 그룹 차종들은, 가격 대비 파워트레인의 똘똘함이 돋보이는 차들입니다. 울컥거린다고 원성을 많이 들었던 ETG6(자동화 싱글클러치 6단)도 개성이 강했을 뿐이지 구동력 전달 효율의 극대화와 경량화라는 목적엔 정확히 부합했던 차였죠.
브랜딩만 과감하면 아우디 정도는 노려볼 만 한데!
힘과 유연성 갖춘 주행 감각 |
변속기와 비슷한 내용인데, 주행 감각 특히 기본기적인 면과 그에 기반한 신뢰감과 안락감은 단연 동급에서 눈에 띄는 수준입니다. 스포츠 모드로 와인딩 로드 주행을 해 보면 그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차체가 높은 SUV지만 긴장감과 정확성을 갖춘 조향 감각은 발군입니다. 스티어링휠이 묵직하게 느껴지는데, 평상시보다 강한 토크 전개가 조향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협조제어 계통이 잘 다듬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주행한 장소는 광주시 퇴촌면 인근의 88번 지방도 인근이었습니다. 자동차 브랜드들의 시승 행사 장소로 자주 활용되는 양평 블룸비스타 호텔 인근의 도로이고 제법 재미있는 와인딩 구간입니다.
주행 감각은 단단함이라기보다 강한 근력에 기반한 유연성이었습니다. 천천히, 고중량으로 깊이 앉았다 일어나는 스쿼트 달인 같은 느낌이죠. 시트로엥 시절부터 서스펜션은 DS를 상징하는 엔지니어링이었습니다. 선회 구간에서 외륜이 눌릴 때 무작정 뻣뻣하게 버티는 게 아니라 내륜이 마찰력을 유지하는 한계치까지 아주 천천히, 그리고 속력에 맞게 기울어지는 느낌입니다. 푸조, 시트로엥 계열 차량들의 선회 성능을 이야기할 때 ‘끈적하다’고 표현하는 게 이 때문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도로 위 자잘한 요철들은 또 부드럽게 지나갑니다. 맨홀 뚜껑이 있는 자리도 자잘한 틈새가 많은 블록 주차장에서도 차량의 속력을 극단적으로 줄이기 위한 화강암 블록 횡단보도 위에서도 불쾌한 충격은 느낄 수 없습니다. 시트로엥 시절 DS가 지향했던 감각을 현대화시킨 것인데 부드러움만 따지자면 시트로엥의 C5 에어크로스가 더 무른 편입니다.
4륜 구동이 아닌 전륜 구동임에도 선회 시 후미가 불필요하게 끌리거나 헛도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전자 장치나 4륜 구동이 작동해 만들어지는 선회 감각과는 다른, 기계적이 조화가 느껴지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차의 가격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5,590만 원. 아우디 Q5와 Q3, 볼보 XC40과 XC60 중간에 위치한 가격입니다. 오히려 주행 감각은 그 두 브랜드의 4륜 구동 시스템과 비교해 뒤질 것이 없거나 앞서는 면도 있습니다.
국내에서의 브랜드 파워만 충분하다면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너무나 아쉽습니다. 펀 드라이빙과 편안함이라는 두 가치를 모두 만족시키는 매우 드문 SUV이면서 디자인과 편의사양까지 뛰어난 차, 국산 중형 SUV도 한다 하는 옵션을 다 넣으면 4,000만 원대 중반은 훌쩍 넘습니다. 수입차 유망 고객에게 어필하기에는 너무 격 떨어지는 포인트일지는 모르겠지만 1.2리터의 배기량도 세금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하면 매력 포인트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구 FCA가 PSA에게 인수됐는데, 국내에선 FCA코리아가 전신이던 스텔란티스코리아가 DS의 가치를 너무 낮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물론 국내 시장에서 인지도 있는 차종은 지프 라인업에 몰려 있는 게 사실이지만, 지프도 차종 나름입니다. 누구든 DS7 크로스백을 사도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솔직히 디젤이라면 조심스럽겠지만 이 1.2 가솔린이라면 추천할 생각입니다. 어느 정도의 기대를 갖고 타든 딱 1.2배는 하는 차입니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