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자동차는 지난 2016년 말 기준으로 글로벌 자동차 판매 대수가 누적 1억 대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러한 업적을 견인한 차종은 바로 1,000만 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 중인 어코드와 시빅이라 할 수 있다. 시빅의 이와 같은 성장에는 경제성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난 2016년 출시된 10세대 시빅은 성능대비 저렴한 자동차로만 평가받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2017년 6월에 한국을 찾아온 시빅을 만나본 이야기를 풀어본다.
보여주는 재미 추가한 시빅
시빅의 새로운 실루엣은 2015년 뉴욕오토쇼에서 공개한 콘셉트카를 통해 잘 알려진 바 있다. 세단과 해치백 모두 쿠페와 같은 유선형의 라인이 화제를 모았고, 양산차 역시 콘셉트카와 큰 차이 없는 라인을 보여 화제가 되었다. 이와 같은 시빅의 디자인에는 호평이 따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2016년 판매량 36만 대를 기록했다. 이는 다른 세대 시빅에 비해 다소 판매량이 감소했던 9세대 시빅의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있는 성과였다. 새로운 시빅은 같은 해 유럽에서도 4만 5,000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사실 시빅은 운전자가 ‘나는 시빅을 탄다’고 내세울 만큼 강렬한 디자인을 보여 온 차량은 아니다. 유행에 뒤처지지도 않지만 지나치게 이를 따라나가지도 않는, 적절함의 미학, 그야말로 시민의 가치를 담은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10세대 시빅이 갖는 측면 라인은 4도어 쿠페의 라인을 닮아 있다. 전고도 1,415㎜로 기존 시빅 대비 20㎜가 낮은데다 A필러와 B필러 라인의 각도가 눈에 띄게 누워 있다. 게다가 필러의 폭과 두께 자체도 감소했다. 이러한 필러 구현은 전후방 시야를 넓게 하는 장점도 있다. 또한 전체적으로 벨트 라인이 높아지면서, 측면 윈도우의 윤곽 트림도 일본도의 끝부분을 연상시킬 정도로 날카로워졌다.
전면 이미지 중 가운데 크롬으로 처리된 라디에이터 그릴 부분의 파츠는 혼다의 패밀리 룩이다. 그러나 좌우로 뻗은 헤드라이트의 윤곽선은 시빅의 것이 가장 날카롭다. 가운데 부분의 크롬 파츠는 헤드라이트 위쪽으로 날카롭게 뻗어나가 예리한 인상을 구현하고 있다. 어코드의 경우 이러한 분위기로의 이행이 세대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행한 측면이 있다면, 시빅의 변화는 파격이라 할 수 있다. 혼다는 10세대에 이르러서야 운전자로 하여금 자신의 시빅을 행인들에게 ‘보여주는’ 재미를 느끼게 만든 셈이다.
레그룸으로 승부수 띄운 실내공간
사실 이러한 디자인 변화는 에어로다이내믹의 강화에 목적이 있다. 세계 각국이 돌입할 연비 규제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데 따른 효율화 전략의 일환이다. 개별 공기저항계수 수치를 밝히진 않았지만, 혼다 측은 새로운 시빅 세단의 공기저항계수가 이전 대비 12% 줄어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전 기종이 1.8리터(1,798cc)였다는 점에서 직접 비교는 다소 어렵지만, 2.0리터(1,996cc)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으로 구현한 14.3km/L(도심 12.8km/L, 고속 16.9km/L)의 연비는 분명 주목할 만한 수준이다. 실제 시승 시 연비는 12.2~12.4km/L 정도였다. 혼잡한 도심 구간 주행 구간과 간선 도로가 반복되면서 평균속도가 60km/h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원상의 연비는 부족함 없이 구현된 셈이다.
10세대 시빅은 외관에서뿐만 아니라 실내 공간도 전후로 여유로워진 측면이 있다. 9세대 휠베이스 증가폭은 30㎜(2,670㎜→2,700㎜) 정도임에도, 레그룸의 증가폭은 1열 0.3인치(약 7.6㎜), 2열 1.2인치(약 30.48㎜)에 달한다. 특히 1열의 경우 레그룸이 매우 깊어 운전자와 1열 동승객이 바른 자세만 유지한다면 뒷좌석 레그룸의 체감 공간은 더 여유로워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1열 동승석 글로브 박스의 개방 및 활용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다. 그러나 시빅은 센터 콘솔의 수납성을 확장하여 글로브박스에 대한 의존도를 자연스럽게 줄였다. 슬라이딩 방식의 암레스트를 이용하면 텀블러나 대형 음료캔 2개를 포함해 다양한 물품들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기어 레버 앞쪽 공간을 상하단으로 분리한 선반형 수납공간 역시 심플하고 활용성이 돋보인다. 이는 혼다의 소형 SUV인 HR-V에도 적용된 분할법이다. 하단 쪽의 USB 단자로부터 올라온 케이블을 정리할 수 있도록 마련한 홈에서는 모든 편의장비의 전장화 대신 일정 부분 운전자의 수고 아닌 수고를 요하는 시빅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다. 다만 국산 동급 차량의 경우 무선 충전 시스템 등을 적용하는 등 편의 사양을 높이는 추세라는 점이 시빅에 있어 도전이 될 상황이다.
가뿐하게 내달리고 탄탄하게 버틴다
시빅은 10세대에 이르러 엔진의 라인업이 1.5리터(1,498cc) 싱글 터보차저를 장착한 엔진과 2.0리터(1,996cc) 자연흡기로 재정비되었다. 타입-R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174hp(6,000rpm, CVT 기준)의 최고 출력과 22.4kg∙m((1,700~5,500rp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는 1.5리터 터보 기종이라도 들여와달라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시장 기준으로 크게 가격차가 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아쉬움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158hp(6,500rpm)의 최고 출력과 19.1kg∙m(4,200rp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는 2.0리터 엔진도 기대 이상의 경쾌한 질주감을 선보인다. 물론 정지 상태에서 액셀러레이터를 깊게 밟았을 때, CVT 자체의 ‘러버밴드(가속 지체)’ 현상은 있지만, 이를 넘어서면 가속은 부드럽게 진행된다. 또한 고속에 도달하는 시간도 빠르다. 혼다 측은 시빅의 0→100km/h 가속시간을 정확히 명기하지는 않았으나, 실제 주행 중에는 7.8~8초 사이로 측정되었다. 이는 기존 시빅의 1.8리터 엔진보다 2초 정도 빠른 속도다. 스포츠 모드의 경우 엔진회전수가 최대 토크 영역에 보다 일찍 도달하기는 하지만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다만 주행 중 추월 시 스포츠 모드를 활용하면 일반 주행 모드와 또 다른 산뜻한 질주감을 선사한다.
시빅의 가속력은 1,300kg의 가벼운 체중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이전 세대에 비해 약 30kg이 줄어든 수치다. 여기에 제원 상 전후 중량 배분은 60.5:39.5 정도의 비율을 보이고 있는데, 이를 기반으로 가속과 제동 시 절제된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매력이다. 또한 추월 상황처럼 가속 중의 차선 변경에도 관성의 영향을 덜 받고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선회 시에는 외륜 쪽이 탄탄하게 버틴다. 서스펜션의 세팅은 전륜 맥퍼슨 스트럿, 후륜 멀티링크이다. 후륜 서스펜션의 형상은 트레일링 암 방식에 기반하되, 멀티링크의 유연성을 살리는 구조를 갖고 있다. 물론 세부적인 서스펜션 지오메트리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이 방식의 서스펜션은 경량화와 동시에 고속 주행 및 선회 시 노면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지난 6월 중순 국내에 출시된 시빅은 단일 트림이며, 가격은 3,060만 원이다. 가격에 대해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유저들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하지만 기존 1.8리터 엔진이었던 시빅 역시 2,700~2,800만 원대였다는 점, 그리고 연간 판매 목표가 최대 1,000대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 가격은 일종의 한계선이다. 물론 소비자가 국내 유통사의 사정을 봐 줘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지난 9세대 동안 입증된 내구성과 안정성 등, 시빅의 가치는 혼다의 한 기종에 갇히지 않으며 그 자체로 브랜드와도 같은 입지를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 10세대의 시빅을 선택한다면 이런 점이 주는 신뢰감에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을 두기 때문일 것이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