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용의 가치를 품은 대형 SUV, 혼다 파일럿 체험기

지난 2018, 주요 자동차 제조사의 대형 SUV들이 풀체인지 혹은 페이스리프트 시기가 겹치며 글로벌 SUV 시장에는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는 국내 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합리적인 가격을 앞세운 국내 완성차 제조사들이 이 영역에 뛰어들면서, 국산차와 경쟁할 필요가 없던 해외 제조사의 차종들은 더 큰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런 가운데 혼다는 2018 12, 파일럿의 페이스리프트 차종을 국내에 출시했다. 온갖차는 해당 차종을 시승 행사와 별도 시승차를 통해 경험해보았다.

수치 이상의 매력,
비율에서 찾다

유럽의 주요 럭셔리 브랜드를 제외하고, 5,000~6,000만 원대를 형성하던 국내 대형 SUV 시장에서는 2018년에 이어 신차 러시가 이어질 모양새다. 포드의 익스플로러가 견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가운데 하반기 6세대 신차종의 투입이 예정되어 있다. 또한 2018년 하반기에는 닛산의 패스파인더가 출시됐고, 11월에는 국산차 중 현대자동차의 팰리세이드가 시장에 난입해 압도적인 판매량을 기록 중이다.

그렇다면 파일럿의 주요 경쟁상대들은 어느 정도의 체구를 갖고 있을까? 다음의 표를 통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구분
전장(㎜)
휠베이스(㎜)
전폭(㎜)
전고(㎜)
공차중량(kg)
포드
익스플로러
5,040
2,860
1,995
1,775
2,240
닛산
패스파인더
5,045
2,900
1,965
1,795
2,105
현대
팰리세이드
4,980
2,900
1,975
1,750
1,960
혼다
파일럿
5,005
2,820
1,995
1,795
1,965

이를 오늘의 주인공인 파일럿을 중심으로 정리해보자면, 전장은 중간 수준, 휠베이스는 경쟁 기종 중 가장 짧다. 하지만 전폭이 가장 넓고, 전고 역시 가장 높아 레그룸과 헤드룸이 최대 수준으로 확보되어 있다다.

혼다의 주요 차종들은 넓은 시야가 장점이고, 파일럿도 예외가 아니다. 경쟁 기종 대비 A 필러 각도가 낮고 보닛 앞쪽이 낮게 떨어지는 스타일이라, 전방 시야 자체가 무척 넓은 편이다. 특히 초고강성 강판의 적용, 강판 강성의 유효적절한 활용을 통한 섀시 구조역학 최적화 등을 통해, 필러 두께의 증가를 제한한 것도 시야 확보에 도움이 된다.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변화한 파일럿의 차체 크기도 주목할만하다. 파일럿은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전장 10, 후륜 오버행(후륜의 중심에서 리어 범퍼 끝단까지의 길이) 80㎜ 길어지고, 전륜 오버행은 25㎜가량 감소했다. 다시 말해 측면에서 파일럿을 볼 때 전면부가 짧아지는 대신, 캐빈 부분의 크기는 길어졌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전방 시인성은 높이고 적재 공간은 강화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이런 수치보다 확실하게 와 닿는 것은 파일럿이 제안하는 운전자의 포지션이다. 일반적으로 권하는 안정적인 운전 자세를 취해, 다리 안쪽 각도를 약 120° 정도로 굽혔을 때, 발뒤꿈치는 풋레스트와 바닥의 경계면에 편안하게 놓인다. 상대적으로 트럭이나 미니밴의 운전 자세와 가까운 경쟁 기종과는 다소 차이를 보이는 감각이었다. 시트포지션의 높이도 익스플로러나 팰리세이드보다는 조금 낮은 느낌인데,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정통 SUV보다는 승용에 가까운 감각이라 할 수 있다.

3.5 VTEC+버튼식 9단 자동변속기

파일럿을 비롯한 주요 대형 SUV들은 덩치가 있는 만큼 배기량을 키우든 과급 장치를 적용하든 기본적으로 최고 출력과 최대 토크가 확보되는 엔진이 필요하다. 포드 익스플로러의 V6 3.5리터 엔진은 294hp의 최고 출력과 35.3kg·m의 최대 토크를, 팰리세이드의 V6 3.8리터 엔진은 295hp의 최고 출력과 36.2kg·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한다. 패스파인더는 V6 3.5리터 엔진으로 최고 출력 263hp, 최대 토크 33.2kg·m를 발휘한다.

파일럿은 V6 3.5리터 VTEC 엔진을 장착했다. VTEC 엔진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 영역에서는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엔진이다. 최고 출력이 284hp, 최대 토크가 36.2kg·m로 경쟁 기종과 비슷하지만 수치를 넘어서는 가치를 갖고 있다. 흡기 밸브의 개폐 타이밍 최적화를 이룬 SOHC 엔진으로, 자연흡기 엔진이면서도 강한 최대 토크를 발휘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 엔진은 이미 오딧세이, 그리고 9세대 혼다 어코드 등에 적용되며 인정받은 명 엔진이다.

물론 다른 차종에 적용되었을 때처럼 엔진 회전수를 6,000rpm 이상 올리며 사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5,000 rpm이전에는 V-TEC 엔진 특유의 부드러운 회전질감이 돋보였다. 가속을 위해 고회전 영역으로 돌입하면 2톤의 차체가 쏠림이나 꿀렁거림 없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속도를 높여나간다는 느낌이 강한데, 이는 구동 계통의 정교한 세팅 덕분이라 할 수 있다.

파일럿은 다단화 변속기를 채택하고 있다. 저단에서는 기어비의 폭을 넓게 쓰지만 중반 이후에는 기어비의 폭이 촘촘해지고 항속 주행시에는 연료소비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변속되는 첨단 변속 시스템이다. 9단 자동변속기라고 하면 공차 중량 증가를 걱정하지만 혼다는 변속기의 부피와 중량을 줄이는 노하우를 개발해 10단 변속기에까지 적용한 바 있다.  V6 3.5리터 엔진, 4륜 구동 시스템, 2톤이라는 차량 특성에도 불구하고, 액셀러레이터만 잘 조절한다면 공인 도심 연비인 7.4km/L를 넘어 8km/L대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변속기의 진가는 고속 주행에서 드러난다. 80km/h에서 파일럿의 회전계는 1,300rpm 수준에 불과했고, 100km/h까지 속력을 올려도 1,800rpm을 가리켰다. 고속도로 최고속도인 110km/h까지 가속하면 변속기는 한 단을 더 내리며 회전수를 약 1,600rpm까지 떨어트렸다. 고속 크루징에 최적화된 세팅인 것이다. 실제 측정 당시 연비는 110~130km/h를 오가는 주행에서도 10km/L내외, 100~110km/h의 속력에서는 13.5km/L가 기록됐다. 여기에는 정속주행이나 완만한 가속 시 3개의 실린더만 작동하는 VCM(가변 실린더 제어 시스템)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파일럿의 유영,
굿 대디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