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놓고 다양한 조건의 드라이빙을 즐기기에 제주만큼 적합한 곳도 드물 것이다. 도(道) 중심을 관통하는 고속도로, 잘 닦인 해안도로부터 한라산 중턱의 도로, 여기저기 오름과 그 사이 와인딩 로드가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온갖차는 1박 2일간 제주도의 이곳저곳을 시트로엥의 2019년형 C4 칵투스로 달려보았다.
언덕길을 날아오르는 선인장
화산섬인 제주도는 중심부의 한라산을 향해 해발고도가 상승하는 지형이다. 따라서 제주도의 끝에서 끝으로 이동할 때는 완만한 오르막길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관광 성수기는 아닌데다 평일이어서 도로는 한산했고, 차량들은 제법 속력을 냈다. 가속 페달을 깊이 밟자 어려움 없이 다른 차량들과 페이스를 맞출 수 있었다. 이 때 하향 변속은 이루어지지만 기존 차종과 같은 변속 충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시트로엥의 C4 칵투스에 적용된 새로운 파워트레인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질감이다. 시승으로 만나 본 2019 시트로엥 칵투스는 새로운 파워트레인을 적용해 타깃의 범위 확장을 꾀한 기종이다. 2017년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후 국내에는 두 번째 선보이는 차종으로, 최고 출력 118hp(120ps, 3,750rpm)와 최대 토크 30.6kg∙m(1,750rpm)를 발휘하는 1.5리터(1,499cc) 블루 HDi 엔진이 적용되었다. 기존에 적용됐던 1.6리터 블루 HDi의 98hp(99ps) 버전보다 향상된 동력 성능을 선보인다. 1.6리터 블루 HDi 라인업에도 같은 동력 성능을 발휘하는 버전이 있지만, 새로운 1.5리터 블루 HDi의 배기량이 그보다 적고 엔진 자체의 무게가 가벼워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적다.
변속 충격이 없는 것은 싱글 클러치 기반의 자동화 변속기였던 ETG6 대신 토크컨버터 기반의 EAT6가 적용된 까닭이다. 사실 ETG6의 직관적인 변속감과 높은 연비를 매력으로 꼽는 유저들도 적지 않았다. 이는 마니아들로부터 인정받은 장점이었다. 실제 판매량도 연간 500대 수준을 기록할 정도였다. 동일한 변속기를 가진 기존 PSA 그룹의 차를 타본 이들의 재구매를 비롯해 차량의 특성을 이해하는 이들이 관심이 적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제조사 입장에서는 보다 넓은 소비자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럽에서도 소비자들의 파워트레인 선호 트렌드가 조금씩 바뀌어 가는 추세다.
변속기의 특성은 기어 단수와 회전계 게이지를 참고해 알 수 있으나, 새로운 C4 칵투스에는 회전계 표시가 없다. 또한 잘 제어된 NVH 덕분에 오히려 구동음을 듣기가 어려워 엔진회전수를 추정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단점 아닌 단점이었다. 기존 C4 칵투스에서는 정속 주행의 경우 약 1,500rpm 부근에서 변속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약간 높은 엔진회전수에서 변속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속 시 하향변속이 이루어진 후에는. 최대 토크 구간을 충분히 활용한 메커니즘이 돋보였다. 자동변속기임에도 하향 변속 반응이 무척 빠르다. 이전에 적용되었던 쉬프트 패들은 빠져 있으나 굳이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다. ETG6처럼 직관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머뭇거림 없이 치고 나가는 감각이 돋보였다. 유닛의 간소화를 통해 경량화를 구현하고 변속 로직을 개선한 EAT6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정속 주행 시 70~80km/h에서 5단이라면 가속 시에는 4단 정도로 유지된다. 가속뿐만 아니라 등판 주행 시에도 최대 토크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평지 정속 주행시보다 한 단 낮은 기어 단수를 활용한다.
한라산 1,100미터 고지에서 춤추다
2018년 12월에 개관한 푸조–시트로엥 박물관 뒤편으로는 제주의 와인딩 명소인 1,100미터 고지 드라이브 코스가 있다. 와인딩과 급경사가 이어지는 구간인데다, 안개가 잦고 봄철까지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곳이다. 시승으로 찾은 날에도 마침 진눈깨비가 내려 노면이 젖어 있었다. 타이어의 단면폭이 205㎜, 편평비가 50%이며 휠 직경은 17인치이다. 우수한 연비 구현에는 유리하지만 악천후 시 와인딩을 즐기기에는 다소 부족할 수 있는 휠∙타이어 제원이라는 점을 고려해 서행을 기본으로 했다.
800미터 이상의 고도에서는 빗방울이 좁쌀 같은 눈으로 바뀌었다. 2월 중순의 한라한 중턱, 진눈깨비까지 내리는 날씨의 노면 온도는 7℃ 밑으로 떨어져 있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어드밴스드 그립 컨트롤의 스노우 모드를 활성화시켰다. 이 시스템은 마찰력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강한 토크가 걸려 휠 스핀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이 모드를 선택하면 가속 페달 반응이 다소 둔해지고, 기어 단수는 일반적인 노면 조건보다 상향 변속되어 주행한다. 참고로 어드밴스드 그립 컨트롤 시스템은 3,252만 원의 샤인 트림에 적용된다.
이 자동차의 기민한 선회에 도움을 주는 것은 차체의 가벼움과 우수한 제동 성능이었다. 내리막선회구간에 머리를 들이밀기 전에 강하게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지만 자세의 흐트러짐은 최소화하면서 속력만 줄어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선회 시에는 부드럽고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C4 칵투스의 전기형에서 드럼 방식이었던 후륜 브레이크는 디스크로 바뀌었는데 이는 방열에 보다 유리한 구조로, 지속적인 내리막길이나 이어지는 선회 구간에서 보다 효과적인 방열 성능을 구현한다.
선회 구간에서 좌우 기울어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륜은 마찰력을 잘 유지했고 조향도 안정적이었다. 시트로엥 C4 칵투스는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 프로그레시브 하이드롤릭 쿠션을 적용했다. 이는 댐퍼 상하에 유압식 쿠션을 두어 차체의 운동이나 노면의 충격에 따라 감쇠력을 제어하는 방식이다. 특히 전륜의 경우 과속 방지턱 등 전방의 장애물을 조우하는 순간에는 충격을 최소화하고 이를 넘을 때나 빠져나갈 때의 절제된 상하 운동이 돋보인다.
원래 시트로엥은 서스펜션 분야의 각종 특허를 갖고 있는 섀시 명가이다. 특히 C4 칵투스의 선배인 C4 해치백의 경우는 댐퍼의 행정거리만이 아니라 용적 전체를 통해 차량의 자세와 운전자가 느끼는 충격을 제어한다는 개념을 선보여 화제가 되었다. 단단하기보다 유연하게 움직이면서도 노면에 대한 마찰력을 잃지 않게 하는 세팅의 기본기가 첨단화된 차량이 지금의 C4 칵투스라 할 수 있다.
어드밴스드 컴포트 시트,
편해서 더 재미있다
1박 2일간의 시승은 특별한 목적지 없이 제주의 동서남북을 휘저으며 진행됐다. 북서쪽의 제주 공항 인근에서 푸조 시트로엥 박물관을 거쳐 성산읍으로, 성산읍에서 한라산 중턱의 아흔아홉골, 1,100미터 고지 등 다양한 노면 환경의 도로를 주행했다. 차량 안에서만 8시간 가까이 있었는데, 큰 피로감은 느낄 수 없었다. 두툼한 에코폼으로 이루어진 어드밴스드 컴포트 시트는 척추와 하반신의 하중을 고르게 받쳐주었다. 최근 각광받는 기능성 베개나 매트리스 등의 침구류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는 프로그레시브 하이드롤릭 쿠션 기능이 채 걸러내지 못한 충격이나 진동을 최종적으로 걸러내는 역할도 한다. 직물 시트를 선호하지 않는 국내 유저들을 위해 선택사양으로 가죽 시트를 적용할 수도 있으나, 직물 시트의 통기성이나 촉감도 과거 보풀이 일어나는 섬유재 시트와는 다르다.
C4 칵투스는 휠베이스 대비 운전석 위치가 중앙에 가깝게 위치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대시보드와 스티어링 컬럼이 내측으로 깊이 들어와 있다. 따라서 B 필러가 운전자 바로 옆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처음엔 어색할 수도 있지만 이 차가 갖고 있는 특유의 조향 성능을 맛보면 흠으로 여겨질 부분은 아니다.
시트로엥의 C4 칵투스는 그간 다소 마니아들의 자동차라는 인식이 강했다. 새로운 칵투스는 파워트레인을 바꾸었지만 그러한 인식을 단숨에 벗기는 쉽지 않다. 다종다양한 편의사양을 원한다면 눈에 차지 않을수도 있다. 그러나 동급의 일부 국산차에서 느낄 수 없는 우수한 조향 안정성, 약점으로 지적되어 오던 동력성능의 개선 및 주행 역동성의 향상, 안락감의 증대는 분명 기존의 협소했던 타깃 고객군을 넓힐 수 있는 매력 포인트로 보인다.
글·사진
한명륜 기자
사진제공
푸조 시트로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