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 벤츠의 엠블럼 파워는 페이스리프트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상품성의 GLC & GLC 쿠페에 대기 수요자가 몰려 있다는 이야기에 더욱 실감이 난다. 물론 삼각별 엠블럼에 축적된 가치는 한 세기에 달한하고, 그런 삼각별이 달린 SUV란 사실에 만족한다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물음표를 완전히 떨칠 수는 없었다. 온갖차는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채로 GLC & GLC 쿠페 300 4매틱의 미디어 시승에 참가했다.
자리잡아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새로운 SUV 패밀리룩
메르세데스 벤츠 GLC와 GLC 쿠페는 페이스리프트의 정의를 벗어나지 않는다. 외관 디자인은 수술이 아닌 시술 정도다. 손을 가장 많이 댄 곳은 눈매와 콧잔등이다.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변화한 헤드램프의 윤곽은 LED DRL(주간주행등)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이를 포함한 LED 헤드램프 유닛은 더욱 밝아졌고 소모 전력은 적어졌다.
라디에이터 그릴 윤곽은 GLC 쿠페의 경우 기존 GLC의 역사다리꼴 윤곽을 그대로 이어받았으나, GLC의 경우 사다리꼴로 변화를 시도했다. 또한 GLC의 경우 라디에이터 그릴 중앙 엠블럼 좌우로 더블 루브르(2열의 가로 미늘 패턴)를 넣었고, GLC 쿠페는 인티그레이티드 스타를 포함한 싱글 루브르를 채택했다. 이후 국내에 들어올 고성능 차종인 AMG 43, 63에는 11개 세로 창이 있는 파나메리카나 그릴이 적용된다.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GLC & GLC 쿠페의 전면 디자인은 2세대 GLA부터 새로운 라인업인 GLB, 그리고 GLE 등 메르세데스 벤츠 SUV 라인업의 새로운 패밀리룩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메르세데스 벤츠 라인업의 디자인이 이른바 ‘샤크 노즈’ 타입으로 변해가면서 자연스럽게 라인업별 차별화도 구현되고 있다. 물론 그런 가운데서도 각 차종만의 체급이나 개성이 살아나 있다.
아쉬운 구성,
드라이빙 어시스턴스 패키지
GLC & GLC 쿠페 300 4매틱은 기본과 프리미엄 두 가지 트림으로 출시됐다. 각각 400만 원 차이로, GLC 300 4매틱의 기본 트림이 7,220만 원부터 시작한다. 통상 많은 제조사에서 미디어 시승 차량은 최상위 트림으로 준비되는데, 이번에는 기본 트림으로 제공됐다. 좋은 사양에 취하지 않고 차를 바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솔직하고 좋은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기자는 기록하는 자이지 칙사가 아니다.
이 두 트림의 가장 큰 차이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ADAS(능동형 운전자 보조 시스템)인 드라이빙 어시스턴스 패키지의 구성이다. 프리미엄 트림에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라 할 수 있는 액티브 디스턴스 어시스트 디스트로닉이 적용된다. 특히 앞 차의 상황에 따라 정차한 후, 재출발 시 별도 조작이 필요 없는 스탑 앤 고의 대기 시간이 30초로 연장돼 편리함을 더한다.
그러나 기본 트림에는 단순 크루즈 컨트롤만 적용돼 있다. 스탑 앤 고 대기시간이 연장된 최신형이 아니라도 좋으니 능동형 거리 조절 기능만이라도 넣을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이는 장거리 주행이나 정체구간 주행 시 운전자의 피로도를 크게 줄여주고, 나아가 사고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안전까지 선택사양이어야 할지는 의문이다.
물론 이 부분에서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이하 ‘MBK’)만 비판받는 건 억울할 수 있다. 사양도 중요하지만 한국 소비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가격 기준선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본사가 그 기준을 근거로 주요 기능들을 빼겠다고 한다면 MBK로서는 방책이 많지 않다. 그래서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는 대신 추후 들어올 상위 엔진 라인업을 다양화할 계획이다.
프리미엄 트림이라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측면 충돌 시 사이드볼스터 조작을 통해 운전자를 보호하는 프리세이프 임펄스도 홈페이지 옵션 상에서는 빠져 있다. 그나마 교차로 충돌 방지, 충돌 시 청각적 트라우마를 최소화하기 위한 반대 위상 음파 발생 기능 등을 포함한 액티브 브레이크 어시스트가 기본 트림에도 적용됐다는 점은 다행이다.
더 이상 ‘불감증’이 아니다!
터치, 음성인식 기반의 MBUX
메르세데스 벤츠 역시 글로벌 차원에서 ICT를 이용한 첨단 인터페이스, UX 기술에 매진하고 있다. 단지 그걸 한국 소비자가 체험할 기회가 적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 GLC & GLC 쿠페에는 드디어 10.25인치 터치 패널이 적용됐다. 운전자의 손길에 적절히 반응한다.
음성 인식도 가능하다. ‘안녕 벤츠’라는 인삿말로 MBUX를 깨울 수 있다. 다만 인식할 수 있는 한국어의 범위가 제한적이다. 한국 시장에서 옵션으로 중무장한 차량들과 승부하려면, 몇 개 수입차 제조사들이 IT 기업이든 통신사든 국내 기업과 컨소시엄을 형성해서 클라우드 기반의 음성인식 서비스 체계를 개발하고 적용할 필요가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글로벌 ICT 전략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라도 필수적이다. 물론 이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정보통신 분야의 제도적 차원 정비도 필요하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잘 팔리겠지만, 삼각별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몇 가지 한계에도 메르세데스 벤츠의 기본기는 빛난다. 무엇보다 견고한 실내 소음 제어다. 특히 직접 시승한 쿠페의 경우 후미 와류가 적어 뒷좌석 풍절음이 극히 적다. 기본 트림이라 고급 브랜드 제품은 아니지만 오디오 역시 밸런스가 좋고, 신호의 레이턴시(지연)도 느낄 수 없다.
인테리어에서 아쉬운 점은 운전석의 구조다. 특히 레그룸 공간이 지나치게 깊어서 신장이 170cm 이하로 작은 사람들이 안전 운전을 위한 최적의 자세를 구현하는 데는 제약이 있다. 왼발을 풋레스트 위에 완전히 얹고, 무릎을 120º 정도로 두면 스티어링휠이 바로 가슴 앞까지 온다. 안전운전을 위해서는 스티어링 휠을 3시와 9시 방향으로 잡았을 때, 팔 각도도 120º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데, 팔 모양을 이렇게 만들면 이번에는 풋 레스트에서 발이 뜬다. 이런 조건이면 전방 충돌 사고 시 종아리 부상 정도가 심해질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자세가 계속 불안해져 요통 등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 이를 보완하는 애프터마켓 제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파워트레인과 섀시,
삼각별의 저력
GLC & GLC 쿠페 300 4매틱에는 최고 출력 258ps(5,800~6,100rpm)의 2.0리터(1,991cc) 가솔린 터보 엔진과, 메르세데스 벤츠가 자랑하는 9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된다. 최대 토크는 37.7kg∙m(1,800~4,000rpm)이다. 동력 성능 면에서 특별할 것은 없어 보이지만, 경쟁 기종인 BMW X4의 국내 출시 사양에는 없는 파워트레인이기도 하다. 0→100km/h 가속 시간은 GLC 쿠페가 6.3초, GLC가 6.2초다. 연비는 각각 9.7km/L, 9.8km/L 수준이다. 둘 다 공차 중량은 1,800kg 초반인데 GLC 쿠페가 10~15kg 정도 더 무겁다. 가속 성능과 연비는 이로 인한 차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메르세데스 벤츠의 파워트레인은 단편적인 퍼포먼스보다 하드웨어라는 큰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한다. 섀시와 파워트레인이 이루는 밸런스 그리고 내구성이야말로 앞서 말한 삼각별 엠블럼의 브랜드 파워를 만들어 온 가장 큰 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그 중심에 9단 자동변속기가 있다. 스포츠와 스포츠 플러스에서는 여유로운 변속 타이밍을 통해 최대 토크를 충분히 활용한다.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으면 우람한 배기음은 기대할 수 없지만 신속한 스로틀 반응과 함께 긴박해지는 엔진 구동음도 나름대로 자극적이다. 이에 비해 에코나 컴포트 모드에서는 철저히 밸런스와 부드러움을 추구한다. 기어비 자체도 촘촘하고 엔진에 부하가 걸릴 만하면 상향 변속이 재빠르게 이루어져 시종일관 정숙한 상태를 유지한다.
정속 주행 영역에 들어간 후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변속기가 중립을 유지하며 타력 주행이 가능한 글라이딩 모드가 활성화되고, 속도계 아래에는 파란 글라이더 아이콘이 점등된다. 연료 절감 효과도 있지만 관성 주행이 주는 여유로움도 나름의 재미라 할 수 있다.
서스펜션 시스템의 단단하기는 주행 모드에 따라 차이가 있다. 에코, 컴포트와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각 모드에서 댐퍼의 감쇠력 조절 세팅 차이는 비교적 크게 다가오는데, 스포츠 이상에서는 노면을 짓누른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보여주기 위한 단단함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도 마찰력을 놓치지 않는데 목적이 있는 견고함이 매력이다. 에코나 컴포트 모드도 타 제조사 SUV에 비하면 조금 단단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그래서 메르세데스 벤츠를 처음 접하는 이들은 ‘벤츠가 왜 이래’ 하며 당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적응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