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카 브랜드들의 특성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페라리에 관한 식견은 주변인이 소유주의 그것을 넘기 어렵다. 그 어느 브랜드보다 스포츠카 브랜드로서 쌓아 온 역사가 길고 현재의 많은 테크놀로지는 그 시간의 산물인만큼, 하나하나 그 진가를 경험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주변인으로서 페라리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그 소유주들의 방식을 짧은 시간이나마 따라야 한다. ‘로드 앤 트랙’, 공도와 서킷 주행을 아우르는 페라리의 시승 행사는 그런 취지에 부합한다. 기자들도, 미디어 홍보 담당자들도 오로지 달리고 또 달리는 본질에만 집중하는 이런 행사는 흔치 않을 정도로 힘들다. 그러나 쉽게 찾아오지 않는 귀한 시간이다.
F8 스파이더, 로망의 정석
공도 : 서울 청담동 ⏤ 강원도 홍천문화예술회관
행사에 활용된 차량은 하드 탑 컨버터블인 F8 스파이더(Spider)와 쿠페인 트리뷰토(Tributo) 그리고 4개 시트가 있는 GT인 GTC4 루쏘 T(Lusso T)였다. 애초, GTC4 루쏘를 6.2리터(6,262cc)의 V12로 준비해 진정한 GT가 두 대의 스포츠카를 인도하는 콘셉트로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사정상 모두 V8 트윈 터보 차량으로 준비됐다. 물론 어느 쪽이라고 특별히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아름다운 차는 타 보지 않은 차니까.
서울 청담동의 페라리 전시장에서 출발 할 때는 F8 스파이더를 탔다. 4년 연속 ‘세계 올해의 엔진(International Engine of the Year)’을 수상한 3.9리터(3,902cc) V8 트윈터보 엔진과 7단 DCT를 결합한 파워트레인을 갖고 있다. 쿠페인 트리뷰토와 동일하다. 시동을 걸고 ‘AUTO’ 센터 콘솔의 버튼을 누르면 중립상태고 오른쪽 업 시프트 패들을 한 번 당기면 1단이다. 최대 토크가 78.5kg・m에 달하는 만큼 잘못 밟았다가 토크 스티어가 발생하지나 않을까 가속페달을 살살 건드렸는데 차가 나가지 않았다. 1인치쯤 페달을 밀어넣자 묵직한 소리와 함께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랜스미션의 응답성은 상상초월이지만 시작부터 페달을 끝까지 밟는 만행만 하지 않으면 운전자의 소심함과 무지도 관대하게 받아주는 아량이 있다.
페라리 역시 여느 고급 브랜드들처럼 거의 모든 부분이 주문자의 옵션인데, 스파이더엔 딱딱한 레이싱 타입의 수동 시트가 적용됐다. 오히려 조정엔 편했고 스포츠카로서의 페라리가 전하는 주행 감각을 느끼기에는 적합했다. 차 바닥이 투명하고 엉덩이에 눈이 달린 기분에 가까웠지만 불편함은 아니었다.
참가자들 간 차량 교체 장소인 홍천문화예술회관까지의 시간이 다소 빠듯해서, 고속도로부터는 본의 아니게 차의 힘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 전까지 간선도로에서 달리는 이 차량을 본 이들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얌전히 달리는 페라리를 본 것이니 복권을 사도 좋다고 할 정도였다.
스포츠카지만 실내가 생각보다 정숙했다. 칼같은 다운시프트 후 들리는 우렁찬 배기음은 멀리서 들리는 듯했고, 7단에서의 구동음은 고르고 부드러웠다. 최고 출력은 720ps다. 비슷한 배기량의과 출력의 V8 트윈터보 엔진들 중에서는 최고 출력 회전수가 8,000rpm대로 올라가는 드물다. 90º의 뱅크각을 지닌 이 엔진은 우수한 좌우 밸런스와 관성 모멘트의 최소화로 고회전 엔진을 지향하는 페라리의 이상을 터보 시대에 모자람 없이 구현하고 있다. 용기를 내서 있는 힘껏 밟는다면 날카로운 고음의 배기음을 들을 수 있겠지만 여느 평일과는 달리 서울–양양 간 고속도로에 차가 너무 많았다.
인제스피디움 트랙 주행 : 4랩, 오후 13시 30분경 맑음, 노면 온도 다소 낮음
솔직하게 고백컨대 겁이 났다. 출력은 더 낮지만 오히려 토크가 91kg∙m로 더 무지막지해던 AMG GT 4도어를, 인제 스피디움만큼 급격한 경사 헤어핀이 있는 용인 AMG 스피드웨이에서도 자신있게 탔는데, 페라리는 만의 하나가 무서웠다. 휠 한 개가 쏘나타 중간 트림 한 대 가격이었다. 연석을 터치하라는 선도 차량 인스트럭터의 무전이 들렸지만 그마저도 두려웠다.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F8 스파이더의 괴물 같은 엔진은 짧은 직선 주로에서도 220km/h에 육박하는 고속을 낼 수 있었다. 바로 그 다음 롤러코스터 구간에서는 급격히 좁아지는 시야 너머로 올해 초 어렵게 분양받은 아파트의 1/3쯤이 녹아내리는 환영을 보기도 했다. 마지막 코너에서의 속력은 90~100km/h 언저리였고 217km/h에 도달할 때까지 시간은 대략 7초, 변속단은 5단에서 6단으로 유지됐다.
사실 서킷 주행과 공도 주행 방법의 확연한 공통점은 스티어링 정렬 상태에서 가속과 제동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그런 걸 잊어버릴 때 사고가 발생한다. 그러나 최신형의 기술이 집약된 F8 스파이더의 후륜 조향과 사이드 슬립 컨트롤 시스템은 운전자의 자잘한 실수를 보정해준다. 그러면서도 파워트레인이 제 성능을 충분히 내도록 유지한다. 쉽게 말해 운전자의 ‘자뻑’을 세련되게 부추긴다. 최소로 3억 9,700만 원을 쓴 값어치이자 페라리의 브랜드 가치가 이런 것 아닐까. 이 차를 타고 소유하는 순간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경험 말이다.
F8 트리뷰토, 현실로 나온
스포츠 쿠페의 사전적 정의
공도, 홍천문화예술회관⏤인제스피디움
F8 스파이더보다 건조 중량 기준으로 65kg 정도 가볍다. 오일류를 포함한 공차 중량은 1,435kg다. 스파이더의 공차 중량은, 추정컨대 100kg 정도를 더하면 될 듯하다. 참고로 두 차량 모두 연료 탱크의 용량은 78리터이다.
이 차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옵션이 적용되어 있었다. 텔레스코픽∙틸트 방식의 스티어링 휠도 전동식이었고, 스티어링 휠 하단 중앙부에는 이탈리아 국기가 새겨져 있었다. 시트는 두말할 필요 없는 페라리의 가죽 시트였고, 안전벨트의 컬러는 차체와 같은 옐로였다. 휠은 무게가 가벼운 카본 파이버 강화 플라스틱 소재였다. 기본 가격이 3억 5,200만 원이니 단순 휠 가격만 더해도 스파이더의 기본 가격을 훌쩍 넘어갈 모양새다.
다만 스파이더와 달리, 차 안에서 주행 중 구동음은 조금 더 잘 들렸다. 역시 7단에서의 부드러운 구동음이 더 잘 들렸다. 대신 다운시프트 시의 배기음은 더 멀리 들렸고 차량 안은 더 조용했다. 스포츠카의 진실은 달리는 모습에 있지 실내 소음에 있지 않다는 페라리의 귀족적 관점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