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스를 설립한 콜린 채프만은 가벼운 것은 항상 옳다라는 말을 했다. 그의 이런 신념은 물리학 법칙에 충실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로터스도 시대의 흐름과 수요의 변화는 이기지 못했는지 에스프리나 유로파 같은 고급스러운 플래그십 GT카도 제작했다. 이번에 시승한 에보라도 비슷한 포지션의 자동차다.
로터스의 플래그십 하지만 다른 제조사에서는 엔트리급
로터스는 경량 스포츠카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있어 불편한 자동차로 알려져 있다. 기자도 1년 전 로터스의 엔트리 모델 엘리스를 시승하면서 로터스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달리기 위한 기능만 있을 뿐 어떠한 편의 장비도 없었다. 심지어 시트는 앞·뒤로만 움직일 뿐 높낮이와 등받이 각도조절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논파워 스티어링과 무거운 클러치는 어깨와 왼쪽 허벅지에 근육경련이 생길 정도였다.
그래서 로터스 에보라를 시승하는데 있어서도 살짝 두려움이 있었다. 특히 시승 차량은 퍼포먼스를 강조한 에보라 GT 410 스포트였기 때문에 더욱 긴장됐다. 실물로 마주한 에보라의 첫 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오랜지 색상의 외관은 로터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눈에 들어왔으며, 날렵하게 치켜세운 헤드라이트와 낮은 넓은 차체는 ‘나 잘 달리니까 건들지마’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측면부도 마찬가지다. 프론트에서 이어져 공기흐름을 도와 주는 라인과 뒤에 있는 엔진의 열기를 식혀줄 에어 덕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후면은 카본으로 되어 있는 엔진 후드겸 트렁크 리드와 마찬가지로 카본으로 되어 있는 루프가 경량화에 미친 로터스 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하부 공기흐름을 원활하게 해주는 디퓨저도 카본 소재이며, 디퓨저 가운데에는 싱글 머플러가 적용돼 바로 서킷에 들어가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실내는 예상 밖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엘리스나 엑시지와 달리 GT카라는 것을 어필했다. 도어 스커프의 폭이 좁고 시트 포지션이 높아 승차 및 하차가 편했다. 단, 높은 시트 포지션과 낮은 천장 때문에 키가 큰 사람이 탑승하면 머리가 천장에 닿는다. 당연히 시트의 높낮이 조절은 불가능하지만 다행히 앞뒤 및 등받이 각도 조절이 가능하며 열선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또한 알칸타라 재질의 버킷 시트는 불편하지 않고 안락하다. 물론 코너를 돌 때는 몸을 꽉 잡아주어 코너를 돌아야 시트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대시보드, 천장 등을 알칸타라와 가죽 그리고 알루미늄으로 마감해 상당히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또한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이 적용되어 비교적, 엘리스나 엑시지 보다 운전하기 편하다. 속도 감응형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 보다는 살짝 무겁지만 스티어링을 통해 노면 피드백이 정확하게 전달되며, 텔레파시로 움직이는 것처럼 운전자가 원하는 그대로 움직여준다.
물론 여전히 불친절함은 남아 있다. 먼저 스테레오 시스템이 없다. 사실 로터스 에보라 GT 410 스포트에는 옵션으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탑재할 수 있지만 이번에 시승한 차량에는 빠져 있었다. 그리고 클러치, 브레이크, 가속 페달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발이 큰 사람이 운전하기에는 은근히 불편하다. 물론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이 가까워 스킬만 따라 준다면 힐 앤 토우 기술을 쉽게 구사 할 수 있다.
클러치의 경우 앨리스 보다는 가볍지만 그래도 일반 수동변속기 자동차의 것보다는 무겁다. 또한 초반에 출발하려면 엔진 회전수를 제법 높여야 하고 클러치 미트 시점이 짧아 은근히 까다롭다. 하지만 모든 수동변속기 차량들이 그렇듯 익숙해지면 몸이 저절로 움직여 나중에는 뭐가 어려운지 모르게 된다.
혈통을 속일 수 없는 주행 성능
로터스 에보라 GT410 스포트에는 토요타 캠리 및 렉서스 ES에 사용되는 3.5리터 V6엔진이 탑재되어 있다. 여기에 슈퍼차저를 얹어 최고출력 416ps(410hp)를 발휘한다. 변속기는 6단 수동변속기가 적용되어 있는데 옵션으로 아이신 6단 자동변속기도 선택 가능하다. 단, 수동변속기에만 토센 타입 LSD가 적용된다.
이처럼 1,300kg 정도의 무게에 416ps라는 출력을 발휘하니 선회 시 가속페달을 약간이라도 힘을 주면 뒤가 움찔거려 카운터 스티어를 바로 주어야 한다. 물론 적절한 타이밍에 트랙션 컨트롤이 개입해 사고를 방지해주지만 스포츠 모드나 한계 이상의 상황에서는 운전자의 스킬이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가속도 운전자의 스킬에 따라 달라진다.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공식 가속 시간은 4.2초지만 수동변속기의 스킬에 따라 더 앞당길 수도 있고 느려질 수도 있다.
로터스 에보라는 대배기량 엔진과 다양한 편의 장비 그리고 무거운 무게 때문에 출시 초기 로터스 팬들로부터 많은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에보라는 로터스 모델 중에서 가장 무겁지만 다른 동급 스포츠카와 비교하면 현저히 가벼운 스포츠카다. 그래서 실제로 운전해보면 에보라도 역시 로터스의 피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터스는 에보라의 경량화를 위해 알루미늄 섀시와 알루미늄 더블 위시본, 카본루프, 자체제작 초경량 단조 알루미늄 휠 등을 장착했다. 타이어는 높은 퍼포먼스를 감당할 수 있도록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컵2가 끼워져 있으며 프론트가 235/35 19인치, 리어가 285/30 20인치로 전형적인 미드십 스포츠카의 구성이다. 여기에 전고가 1,200㎜에 전폭이 1,900㎜여서 선회 능력이 부족 할 수가 없다.
멈추기 싫은 펀 드라이빙 머신
정말 놀라웠던 점은 서스펜션이다. 특별한 것이 그저 더블 위시본 타입에 감쇠력 조절이 가능한 댐퍼가 적용되어 있을 뿐인데 선회 시 롤링이 없으며 방지턱이나 요철을 지나갈 때는 정말 편안한 승차감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