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형 혼다 어코드 하이브리드가 일본과 북미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금 당장 계약하더라도 차량 인도까지는 상당한 대기 기간이 필요할 정도다. 어코드에 대한 견고한 지지도와 혼다에 대한 신뢰, 그리고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저변 확대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맞아떨어진 영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입소문을 타고 다시 계약 희망자를 부르는, 제조사로서는 선순환이라 할 만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과연 혼다의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그러한 관심에 합리적으로 보답하는 자동차일까? 시승을 통해 이 자동차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현재의 어코드는 9세대 후기형이다. 2.0리터(1,993cc) 직렬 4기통 자연흡기 엔진인 i-VTEC과 리튬 이온 배터리로 구동하는 듀얼 전기 모터로 구성한 하이브리드 시스템 i-MMD(Intelligent Multi-Mode Drive)에 CVT를 결합해 파워트레인을 구성했다. 이 파워트레인의 형태는 어코드 9세대 전기형의 하이브리드에도 채용되었는데, 2016년 5월 일본에서 선보인 후기형 하이브리드는 동력 성능이 소폭 향상되었다.
먼저 엔진의 최고 출력이 이전의 143hp에서 145hp(6,200rpm)로 상승했고, 최대 토크 역시 16.8kg∙m(3,500~6,000rpm)에서 17.8kg∙m(4,000rpm)로 소폭 상승했다. 하지만 시스템의 합산 출력이 215hp로(스포츠 모드 시), 196hp를 기록했던 이전 기종에 비해 눈에 띌 만큼 증가했다.
그 비결은 강화된 구동 모터의 동력 성능이라 할 수 있다. 최고 출력은 이전 기종 대비 181hp(5,000~6,000rpm)로 166hp에 비해 거의 10% 가까이 증가했다. 최대 토크 역시 32.1kg∙m(0~2,000rpm)로 1kg∙m 정도의 증가 폭을 보였다. 혼다는 이를 통해 구동 모터가 개입하는 영역을 확대했으며, 이것이 실제 시내주행 연비가 고속도로보다 더 높은 19.5km/L를 구현할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실제로 기어레버 옆의 EV 모드를 작동시키면 엔진과 모터 사이의 클러치가 둘 사이를 완전히 갈라놓는다. 그리고 이 상태로 최고 속력 70km/h까지 가속할 수 있다. 이 때 CVT를 적용한 하이브리드 차량에서 흔히 나타나는 러버밴드 현상(출력의 구현이 정체되었다가 일시적으로 쏟아지듯 나타나는 것)도 느낄 수 없었다. 만약 배터리 잔량이 빨리 떨어지는 것이 걱정된다면 변속기 레버를 제일 아랫단의 B 모드에 두면 된다. 이 때 엑셀러레이터 페달에서 발을 떼면 마치 엔진 브레이크와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회생 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충전량을 늘리는 모드다.
일정 속력을 넘어가거나 배터리의 잔량이 줄어들면 엔진이 구동된다. 시스템 합산 출력을 맛볼 수 있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다. 혼다 엔진의 부드러운 구동음이 들리기는 하지만, 음악이라도 켜 두었다면 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EV에서 하이브리드 모드로의 전환은 부드럽다. 이 때 클러스터에서는 EV 모드임을 알리는 녹색 표시가 사라지며, 기어레버 우측의 EV 버튼을 눌러보면 계기반에 EV모드로 전환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뜬다. 그러나 이러한 모드 전환은 i-MMD의 통제에 의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진행된다. 실제 이를 통하면 도심에서의 연비는 22~23km/L를 수시로 기록한다. 꽤 오랜 시간 쉬지 않고 시내 도로를 주행했음에도 불구하고 EV와 하이브리드 모드를 활용했을 때는 유량 게이지의 변동이 없었다.
리튬 이온 배터리의 용량이 한계에 달했거나, 스포츠 모드로 전환했을 때 단독으로 구동하게 되는 2.0리터 직렬 4기통 자연흡기 엔진 역시 그 자체로서의 매력이 있다. 하이브리드 전용이라는 수식어는 붙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구동 모터와의 결합으로 인해 늘어날 수 있는 무게를 최소화하기 위해 소재상 경량화를 시도했다는 의미다.
스포츠 모드에서 가속 페달을 밟으면 요란하지는 않지만, 엔진이 제법 바쁘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계기반에 별도로 엔진회전수가 표시되지는 않지만 최고 출력 영역으로 빠르게 다가서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소음이 적은데다 A필러가 시야에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넓어 속력이 급격하게 올라간다는 불안감은 없는데, 계기반을 보면 어느 새 100km/h를 넘어가 있었다. 혼다가 이 자동차를 ‘스포츠 하이브리드’라 포지셔닝한 점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자동차의 가속 성능을 보기 위해 자주 스포츠 모드를 사용했음에도 연비는 고속 주행 시의 연비인 18.9km/L에 거의 근접했다.
주행에서의 특성과 제원을 비교해 봤을 때,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2.0리터 가솔린 엔진은 몇 가지 재미있는 점이 눈에 띈다. 가솔린 엔진이지만 보어와 스트로크가 각각 81㎜, 96.7㎜인 롱 스트로크 방식을 택하고 있다. 따라서 압축비도 13:1로 가솔린 엔진 중에서는 큰 편이다. 참고로 어코드의 2.4리터 가솔린 엔진과 3.5리터 기종의 경우 11.1:1의 압축비를 택하고 있다. 자연흡기 방식이라 하더라도, 압축비가 큰 점을 감안한다면 최대 토크가 강한 편은 아니다. 이는 굳이 스포츠 모드가 아니라면, 초반 가속 시에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구동 모터의 능력을 믿는다는 의미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굳이 최대 토크를 강화해 무리를 주거나, 이산화탄소 및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증가시킬 필요가 없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실제 이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km 당 83g으로 비슷한 배기량의 경쟁 기종보다 적다.
어코드는 어떤 모드에서건 부드러우면서도 신속한 가속감을 자랑한다. 배터리만 충분하다면 EV 모드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속 시 관성에 의해 차체가 전후 어느 한 방향으로 급격하게 쏠리지 않는 균형 감각이 돋보인다. 혼다가 9세대에 이르는 동안 보여 준 섀시의 균형감각은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은 부분이지만, 하이브리드에서는 경량화된 엔진과 배터리 팩의 분할 배치로 인해 한층 더 완성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어코드 하이브리드를 구입하거나 시승해본 이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부분이 바로 선회 시 서스펜션의 감각이다. 전장 4,945㎜에 휠베이스 2,775㎜로 결코 짧지 않은 차체지만, 격하게 스티어링 휠을 조작해도 굳건히 버티는 외륜의 지지력은 분명히 매력적이다. 조향 성능 역시 명쾌하다. 전륜에는 맥퍼슨 스트럿, 후륜에는 멀티 링크로 세단에서는 흔한 구성이지만, 세부적인 세팅에서 어코드 하이브리드만을 위한 섬세한 조정작업이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의 기본은 역시 서스펜션보다 섀시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동차의 공차중량은 1,605kg으로 섀시 사이즈, 그리고 배터리 팩을 감안한다면 매우 가벼운 편이다. 그것이 전후좌우의 불필요한 쏠림을 원천적으로 막아준다. 서스펜션은 이 섀시의 지지력이 한계에 다다르려 할 때 힘을 발휘한다. 전후 서스펜션의 안티롤 바 직경도 19㎜와 16㎜로 비슷한 세그먼트의 유럽 자동차보다 짧다. 참고로 최근 일본 튜닝 업계와 모터스포츠에서는 선회 성능의 향상에 있어, 안티롤 바의 강성 강화보다 경량화가 더 효율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어코드의 디자인은 9세대에 이르는 동안, 강렬한 개성을 과시하기보다 각 디자인 요소들이 충돌하지 않고 매끄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어 왔다. ‘조화’를 뜻하는 이름다운 이 특성은 오히려 그 자체로 강한 개성이 되었고 많은 마니아들을 낳았다.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9세대 페이스리프트의 디자인과 거의 차이가 없어, 전륜 펜더 측의 하이브리드 배지가 아니라면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다.
어코드의 디자인은 핵심적인 조형 요소나 윤곽을 익스테리어나 인테리어의 요소에 반영하는 방식을 택한다. 9세대 페이스리프트의 디자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의 윤곽이다. 이것이 센터페시아 인스트루먼트 패널의 윤곽에도 반영되고 있다. 물론 특징적인 요소를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기법은 다른 자동차에서도 사용하지만, 어코드에서는 어느 날 문득 부지불식간에 이를 느낄 수 있도록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디자인이 결국 사용의 편의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 자동차를 타 보기 전 두 개로 나뉜 미디어 패널이 시각적으로 운전자의 주의를 분산시킬 우려가 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상단의 정보 중심 패널은 클러스터의 기호들을 훨씬 간명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으며, 네비게이션 및 인포테인먼트를 담당하는 터치스크린의 부하도 덜어주는 역할을 했다. 또한 이러한 패널과 버튼을 가지런히 정리한 윤곽은 운전자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기에 적합했다. 이 외에 변속기 앞쪽 공간을 활용한 무선 스마트폰 충전 패드도 불필요한 공간 사용을 줄이면서도 스마트폰을 넣고 빼는 데 큰 불편을 느낄 수 없었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에서 또 한 가지 돋보이는 것은 NVH(Noise, Vibration, Harshness : 소음, 진동, 거슬림) 설계다. 주차장이나 골목길 등 저속으로 주행할 때 통상 일반적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들은 모터가 구동하는 소리를 노출한다. 그런데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여기에 별도의 사운드를 섞어 놓았다. 이는 마치 볼륨을 낮춘 신서사이저의 음색과도 비슷하다. 밖에서도 들리지만 차 안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사운드 감각은 기어 레버를 적극적인 회생 제동 모드인 B에 놓았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다만 이러한 NVH 설계에 비해 스피커의 건조한 음색은 다소 아쉽다. 정숙한 환경을 더 돋보이게 할만한 오디오 유닛이 있었다면 더욱 빛을 발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더 있다. 깜빡이를 켤 때 옆 차선을 비춰주는 레인워치(Lane Watch) 시스템을 제외하면, 다양한 스마트 기능의 집약체이자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혼다 센싱이 제외된 까닭이다. 특히 혼다 센싱 안에는 국산차에도 기본으로 장착되는 추세인 오토홀드가 포함되어 있어, 정체구간에서 브레이크를 꾹 밟고 있어야 하는 아쉬움도 있다. 국내에서는 별도로 비용을 지불하고 장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혼다 센싱을 장착할 경우 비용을 현재와 같은 4,300만 원대에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 혼다 코리아 측의 전언이지만, 과연 가격이 올라간다고 해서 혼다 센싱이 장착된 어코드를 기피하는 소비자들이 많을까?
혼다의 자동차를 구입하려는 소비자들 중에, 혼다의 기술력을 크게 의심하는 이들은 드물다. 이번 어코드 하이브리드 시승을 통해서도, 그 제원표가 정직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혼다 센싱의 미장착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은 있으나,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분명 어코드 하이브리드가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미래형 자동차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