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 그룹의 자동차를 향한 매체의 시선과 한국 자동차 소비자 상당수의 시선은 그 온도가 다르다. 여기에는 오해도 있고 타당한 이유도 있지만, 이 온도차는 특정 시장이라는 맥락이자 거기에 놓인 자동차가 풀어야 할 과제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MPV(다목적차량)의 시대를 마감하고 세계적 대세에 따라 SUV의 시대로 돌입한 푸조의 5008이, 한국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 것인지 시승을 통해 풀어보았다.
1.6리터 엔진,
효율성을 갖춘 플래그십을 말하다
이번 시승을 통해 만나 본 5008은 1.6리터 엔진이 장착된 기종의 상위 트림인 GT 라인이다. 물론 푸조 역시 180hp의 최고 출력을 발휘하는 2.0리터(1,997cc) 엔진이 있으나, 최고 출력 120hp의 1.6리터(1,560cc) 디젤 엔진이 과연 플래그십의 의미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물론 공차 중량이 1,640kg으로, 같은 동력 성능의 1.6리터 디젤 엔진을 장착한 3008 GT 라인과의 무게 차이가 50kg에 불과하다. 그러나 주행 성능 면에서 순발력이라든가 적정 수준의 고속 주행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경험해볼 필요가 있었다.
제원상 1.6리터 엔진을 장착한 5008의 0→100km/h 가속 시간은 11.9초다. 180hp의 최고 출력을 발휘하는 2.0리터(1,997㏄) 엔진을 장착한 GT는 9초대를 기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속도로에 올라 킥 다운(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았을 때 하향 변속을 통해 가속력을 높이는 것)을 시도해보았지만, 엔진회전수의 증가에 비해 큰 속도의 변화를 느낄 수는 없었다. 정숙성 높은 HDi 엔진은 최고 출력 영역인 3,500rpm에서도 ‘나는 그렇게 타는 자동차가 아니다’라고 타이르는 듯했다. 그러나 최대 토크(30.6kg∙m)가 발휘되는 시점이 1,750rpm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대부분 고속도로의 한계 속도인 100~110km/L 범위로 가속하는 데는 답답함을 느낄 수준은 아니었다.
대신, 잘 알려져 있듯 이 엔진의 매력은 연비다. 물론 최근 경쟁 제조사의 디젤 엔진 기종들도 평균적으로 높은 연비를 보이는 까닭에 상대적으로 ‘연비=푸조’라는 과거의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그러나 토크컨버터 기반 자동변속기인 EAT6가 1,500~1,600rpm 언저리에서 변속을 끝내고 엔진 회전수를 끌어내리는 능력은 독보적이다. 이 정도의 엔진 회전수는 경쟁사의 1.6리터급 디젤 엔진 차량이 에코 모드에서 항속할 때 보이는 수치보다 낮다. 물론 제원상 고속도로 연비가 13.1km/L로 2.0 블루 HDi를 장착한 GT보다 낮지만, 도심에서의 연비는 12.3km/L로 GT보다 높다. 실제 고속도로 연비는 정속 주행 시 16km/L 수준으로 측정되었는데, 2017년 4월, 시승을 통해 살펴보았던 3008 GT 라인과 비슷한 수준이다.
참고로 PSA그룹은 2017년부터 자발적으로, 기존보다 다소 낮게 측정되는 연비를 유럽 각 지역의 법인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대신 공차 중량에 있어 일종의 핸디캡인 SCR 시스템을 장착하고서도 나오는 결과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유롭고 확실한 조향 감각, 섀시의 힘?
조향 감각에 관한 사안과 서스펜션에 관해, 24시간 이내의 도심 및 고속도로 반복 주행 정도로 알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비슷한 체격을 지닌 다른 자동차의 시승 경험에 관한 몇 가지 체크포인트를 최대한 참고하며 5008 GT 라인의 주행 및 조향 감각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5008의 전장은 4,641㎜이나 휠베이스는 2,840㎜에 달한다. 전장 대비 비율로 따지면 61% 수준에 달한다. 이와 거의 비슷한 비율을 보이는 차량으로는 5008보다 전장과 휠베이스가 약 20㎜ 긴 볼보의 XC60가 있다. 그 외 5008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긴 전장을 보이는 자동차들보다, 5008의 휠베이스가 더 긴 편에 속한다.
긴 휠베이스는 거주 공간이 넓다는 장점이 있다. 5008은 이런 이점을 살려, 접이식 3열 좌석을 통해 실내공간을 7인승으로 구현했을 정도다. 하지만 선회 시의 안정감에 대해서는 다소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특히 고속 주행 시 만나게 되는 완만한 선회구간에서 차체의 후미가 ‘따라온다’는 감각이 어느 정도 구현될 수 있을 것인지가 궁금했다. 특히 낮은 기온과 블랙 아이스 등 도로 표면의 마찰력이 부족한 겨울에는, 실제 운전자들이 적극적으로 제동을 가하는 급커브 보다 가속을 유지하면서 돌아나가는 완만한 커브가 더 위험할 수 있기에,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시승 구간은 강변북로를 타다가, 자유로 북로 분기점에서 나와 방화대교를 탄 다음, 영종대교 하부도로를 타고 영종도로 진입해 해안도로를 달린 후, 인천대교를 건너 송도를 지나도록 짰다.
주변 차량과의 거리가 충분히 확보된 상황에서 허용 속도 안에서 감속 없이 선회 구간을 달려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의 전체적인 선회 감각은 안정적이었다. 날카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선회 시 운전자가 겨눈 방향과 자동차 사이를 잇는 호(弧)가 부풀어오르는 느낌은 없었다. 구름 저항을 줄이기 위해 폭 225㎜, 편평비 55%의 18인치 타이어를 장착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향 능력은 더욱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해외 주요 자동차 매체의 5008 시승기에서도 조향 감각에 대해서는 별 5개 기준 4개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여기에 i-콕핏의 작은 스티어링 휠과 조향 감각의 관계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온갖차의 경우, 3008 GT 라인과 GT, 그리고 i-콕핏이 적용된 푸조의 타 기종을 경험해본 바로는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다. 우선 스티어링 휠을 잡는 포지션에서 팔이나 어깨 피로도가 덜했고, 이는 운전자로서 보다 조향 감각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푸조, SUV 음향 조건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다
해당 시승 구간은 자동차의 NVH(소음, 진동, 불쾌감) 제어 성능을 테스트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잘 포장된 도로와 공사 구간이 교차하고, 주행풍은 물론 바다에서 불어오는 측면의 바람 등, 적어도 NVH에 있어서만은 가혹한 시험코스라 할 만했다. 여기에 일반적으로 SUV는 NVH 세팅에 불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페나 세단에 비해서는 윈드실드의 각도도 맞바람에 대해 높은 편인데다, 후미에서 와류가 발생하기 쉬운 까닭이다. 특히 5008의 테일게이트는 측면에서 볼 때, 다소 수직에 가깝게 서 있다. 선회 시 공기의 흐름이나 측면 바람으로 인한 풍절음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적어도 운전석이나 2열 좌석 측에서는 바람의 영향으로 인한 소음은 크게 느낄 수 없었다. 이로 인해서 가장 두드러지는 성능은 바로 스피커에서 구현되는 사운드의 선명도였다. 5008은 가장 하위 트림인 1.6 알뤼르에까지 포칼 오디오 시스템과 스피커가 장착되지만, 사실 카오디오 시스템에서 소리의 선명도는 오디오 브랜드 자체보다 청음을 방해하는 풍절음 등을 얼마나 억제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적어도 5008은 이러한 면에서 성공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해외 주요 매체에서도 5008의 오디오 튜닝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보이는 평가가 많지만, 보다 정확히 보자면 정제된 NVH의 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푸조는 실용적인 자동차, 혹은 랠리에서의 강자 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원래 그 혈통은 20세기 초 프랑스의 ‘아름다운 시절’을 상징하는 플래그십이었다. 그리고 PSA 그룹은 이 기억을 5008, 그리고 DS의 SUV인 DS7 크로스백 등을 통해 다시 구현하려 하고 있다. 환경 오염을 줄이기 위한 규제의 한계 안에서, 플래그십이 가야 할 길은 쉽지 않다. 어쩌면 5008은 이런 조건 속에서 플래그십의 기억을 되살려 가는 그들의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한명륜 기자
사진 김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