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는 특유의 다재다능함으로 자동차 제조사와 현재의 자동차 문화를 살찌운다. 하지만 범용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각 부분의 한계점을 어떻게 평균 이상의 만족도로 구현할 것인지가 현재 SUV 개발 및 제작의 관건이기도 하다. 온갖차는 현대자동차의 최상위 트림, 싼타페 인스퍼레이션의 시승을 통해 현대자동차가 SUV에 대해 진행 중인 다양한 고민을 살펴보았다.
휴식 같은 운전을 느끼다
과거와 달리 신차 연구∙개발의 전 과정에서 시장 조사가 병행된다. 지속적인 피드백 속에 자칫 연구진은 다기망양(多岐亡羊, 갈림길에서 양을 잃는다는 뜻으로 방침이 여러 가지일 때의 혼란을 가리킴)의 형국에 빠지게 된다. 특히 내수 판매 100만 대 이상의 SUV인 싼타페는 한 세대가 바뀔 때마다 전체적인 콘셉트를 설정하는 데 있어 선택의 기로에 선다.
물론, 4세대 싼타페 TM은 그 기로에서 최대 다수가 납득할 만한 길을 선택했다. 이는 판매량이 증명한다. 물론 이전 세대 대비 보다 스포티한 감각을 중시했다는 것이 강조점이지만, 이전의 다재다능함을 확장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포함해 360km 이상 운전해본 결과, 이 자동차는 다재다능함을 기반으로 제공하는 휴식을 메인 테마로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시승 차종은 싼타페 TM 중 최상위 등급의 최상위 트림인 2.2 디젤 엔진 인스퍼레이션 트림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느끼는 고급차의 다양한 가치 중 하나는 인테리어 요소이다. 해당 차종의 시트에는 착좌감이 우수한 버건디 컬러의 퀼팅 나파 가죽이 적용되었다. 나파가죽 시트는 내구성은 약하지만 밀착감이 우수하다. 버킷 시트는 아니지만 두툼한 사이드 볼스터와 어우러져 몸을 편안하게 잡아 주었다. 전동 조절식 럼버 서포트(요추지지대)가 있는 전동 시트이되, 스티어링 휠과 시트포지션의 기본적인 위치 관계가 좋은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다만 스티어링이 휠의 직경은 운전자에 따라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등받이에서 승모근이 닿는 부분에는 퀼팅(누빔)이 적용되었다. 퀼팅은 가죽 표면에 볼륨감을 구현하고 통기성을 향상시켜 운전자의 컨디션을 쾌적하게 해 주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습하고 더운 여름철에 좋은 사양이다. 버건디 컬러의 퀼팅 시트는 그랜저, 쏘나타 최상위 트림 등에도 적용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엄연히 싼타페를 고급 차종의 반열로 포지셔닝하고 있는 셈이다.
넓은 대시보드는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다만 이 때문에 A필러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앞에 있는 것으로 보여 좌우 시야가 매우 넓은 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A필러 창을 통해 시야 축소를 최소화했다. 물론 차로 이탈방지 보조라든가 전방 충돌방지 경고∙보조 등의 다양한 ADAS 시스템과 차량 주위를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서라운드뷰 영상이 위험을 막아준다.
싼타페를 비롯해 현대자동차 SUV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넓은 도어 미러 시야각이다. 휠베이스 2,765㎜, 전장 4,770㎜, 전폭 1,890㎜이지만 측후면 사각지대 자체는 넓지 않다. 교통 흐름이 많지 않은 강원도 산길에서는 앞에 펼쳐진 길과 뒤로 사라지는 길이 이어지는 느낌을 도어 미러를 통해 받을 수 있다.
내유 외강,
서스펜션 세팅
레저를 즐긴다면 고속도로만큼 국도를 주행할 일도 많다. 따라서 안정적인 선회력과 지지력의 기반이 되는 서스펜션 세팅은 필수다. 시승 구간으로는 비교적 빠른 속도의 커브구간이 이어지는 강원도 인제군의 내린천변 31번 국도를 택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구간에서 선회 시에 받은 인상은 예상했던 수준의 스포티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다소간의 충격과 단단함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다소 무르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카메라에 잡힌 선회 구간에서의 거동 형태는 안에서 느낀 것과는 달랐다. 이어지는 내리막 커브에서 60km/h 이상의 속도로 움직여도 차체의 기울어짐이 그리 심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요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235/55/19 101H의 타이어 규격이다. 상대적으로 휠 인치수도 크지만 하중지수가 101로 최대 825kg까지 지지할 수 있다는 점이 작용한다. 그 다음에는 이러한 타이어 특성과의 조화를 고려한 서스펜션 부품 간의 역학 계산이 그만큼 정확했다는 의미이다.
충격 저감 장치인 댐퍼 시스템의 역량도 꼽을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싼타페 TM에 다중충격 저감 시스템을 적용했다. 즉 노면의 그루브를 지나칠 때처럼 자잘한 충격은 짧고 빠른 행정으로, 긴 커브 구간에서의 고속 선회에서는 느리고 긴 행정으로 걸러내는 방식이다. 이 때 운전자에게 전달되는 충격은 최소화하되 원심력을 버텨내는 힘은 강하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 싼타페 TM의 서스펜션 감각이다.
물론 여기에는 전자식 4륜 구동 제어 시스템인 HTRAC과 현대자동차가 자랑하는 구동선회제어(ATCC)의 작용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의 하체 관련 기술은 상당히 진보했다는 것이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여기서 참고가 되는 것이 지난 7월 11일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열린 벨로스터 N 엔지니어와의 대화에서 등장한 연구원의 메시지다. 우수한 동력 성능을 앞세운 현대자동차의 고성능 디비전 N, 그 첫번째 국내 출시 차량인 벨로스터 N은 선회 성능에 큰 승부수를 띄운 자동차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연구원들은 “서킷과 같은 극한의 선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선회 상황에 걸맞는 댐퍼의 감각도 구현하는 것”이 해당 차종의 개발 기조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고성능 차종에서도 이러한 범용성을 강조하는만큼, 싼타페처럼 보다 일상의 여유를 지향하는 차종이라면 서스펜션 감각에 있어서의 관용성이라는 것은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스티어링휠 조작에 대한 조향 반응이 기민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언더스티어 경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앞서 잠시 언급한 대로 스티어링휠의 직경이 크다는 점 그리고 무거운 공차 중량 등의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협조제어가 보여 준
기대 이상의 연비
현대자동차의 2.2리터(2,199cc) 디젤 엔진의 제원과 동력 성능은 이제 거의 모든 유저들이 외울 수 있을만큼 익숙한 엔진이다. 최고 출력은 199hp(202ps, 3,800rpm) 45kg∙m(1,750~2,750rpm) 수준이다. 제원표상 연비는 복합 12km/L(도심 11.1, 고속 13.5) 수준이다. 이전 세대 대비 조금씩 하락한 수치이지만, 다양한 ADAS 기능을 위한 전장 패키징의 강화, 차체 크기 확장 등을 고려하면 우수한 연비다. 기어비가 촘촘한 8단 변속기의 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양재동과 인제군 기린면을 왕복한 거리는 약 360km 이상이다. 서울로 돌아왔을 때의 평균 연비는 약 17km/L를 기록했다. 4륜 구동은 무겁다라는 통념을 깨고, 주행 모드마다 구동력 배분을 최적화해 연료 소모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주행모드를 에코로 두면 업시프트의 타이밍도 조금 빨라 최고단인 8단에 빨리 이르는데다, 정속 주행 시에는 거의 전륜 구동으로 달리게 된다.
노면 상태가 약간 불안한 곳이나 와인딩 구간에서는 후륜에 대한 동력 전달 비중이 높은 컴포트 모드를 사용했지만 연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아무리 최대 토크가 두터운 2.2리터 디젤 엔진이라 해도 무거운 공차중량으로 인해 연비 면에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1km 당 연료비는 서울 평균 경유 가격 약 1,410원 기준으로 했을 때 83원, 유류비는 약 3만 원 수준이었다. 소모된 경유량은 약 21리터였다.
싼타페는 잘 팔리는 SUV다. 이는 현대자동차 및 관계 기업들을 행복하게 하는 요소다.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요구 사항을 가진 많은 운전자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존재 자체가 꾸준히 숙제인 자동차이기도 하다. 하지만 짧지 않은 거리의 시승을 통해 느낀 것은, 싼타페 TM이 보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큰 고민 없이 SUV만의 여유와 경제적이고 안전한 이동의 자유를 누리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몰입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운 것이 운전이어야 한다고, 이 자동차는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글
한명륜 기자
사진
김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