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 클리오, 씬 스틸러의 자격

르노의 소형 해치백인 4세대 클리오가 국내 출시 2개월을 넘어가고 있다. 해당 장르가 선전하기 어려운 한국 시장이고, ‘너무 늦어서 미안’이라는 광고 카피처럼 출시 시점이 기대보다 늦어졌다는 점은 있지만, 이 자동차의 가치는 판매량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르노의 클리오가 가진 장점과 약점, 살려야 할 기회와 주의해야 할 위협은 무엇인지 시승을 통해 살펴보았다.

가볍고 활발한
‘프랑스 미인’

가볍고 덜 먹는다


르노 클리오, 씬 스틸러의 자격
르노 클리오는 1.5리터의 디젤 엔진과 게트락 사의 6단 DCT 파워트레인으로 17.7km/L의 연비를 구현한다.

르노 측이 강조하는 바이기도 하고 여러 매체들이 주목하는 클리오의 강점은 우선 17.7km/L(도심 16.8, 고속 18.9)에 달하는 복합 연비다. 최고 출력이 90hp(4,000rpm)에 불과한 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있으나, 비슷한 배기량을 지닌 디젤 엔진 차종 대비 크게 떨어지는 동력 성능은 아니다.
현재 국내 시판 차종으로 국한하면, 르노 클리오와 비슷한 등급의 차종은 크게 푸조의 208 1.6 블루 HDi, 동일한 엔진을 장착한 DS3가 수입차 라인업에 포진해 있다. 외에도 현재 국내 시장에 신차 판매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폭스바겐의 폴로 역시 대표적 경쟁기종이다. 국산차 영역으로 시선을 옮기면 현대자동차의 액센트 위트의 1.6리터 디젤 엔진이 눈에 띈다.

  차종
 
  푸조 208 1.6 HDi
 
  DS3
 
  VW 폴로(국내판매중단)
 
  엔진형식
  및 배기량(cc)
 
  L4 싱글터보 / 1,560
 
  L4 싱글터보 / 1,560
 
  L3 싱글터보 / 1,422
 
  최고 출력(hp)
 
  99
 
  99
 
  90
 
  최대 토크
 
  25.9kg∙m
 
  25.9kg∙m
 
  23.5kg∙m
  (1,750~2,500rpm)
 
 
  복합연비(도심,고속,km/L)
 
  17(15.7, 18.7)
 
  17(16, 18)
 
  17.4(15.9, 19.7)
 

최대 토크 세팅, 조금만 더 과감했더라면

변속기는 게트락 사의 6단 DCT다.해당 세그먼트는 연비를 중시한 차종이 상당수이기에 대부분 동력 전달 효율이 우수한 DCT나 자동화 수동변속기를 사용하고 있다. 클리오에 적용된 게트락의 6단 DCT는 가벼운 중량이 장점으로 최대 허용 토크는 32.6kg∙m에 달한다.
클리오의 1.5리터(1,461cc) dCi 엔진은 푸조처럼 직렬 4기통이며, 최대 토크가 22.4kg∙m(1,750~2,500rpm)이다. 폴로나 푸조 208보다는 다소 낮은 수치다. 이는 개별 실린더 용적과도 무관치 않다. 배기량은 1,422cc로 클리오 보다 약간 적지만 직렬 3기통인 폴로는 실린더 당 용적이 약 474cc에 달한다. 208의 경우는 직렬 4기통이지만 전체 배기량이 100cc이상 크다. 따라서 비교 대상의 자동차보다 클리오의 엔진 정숙성은 돋보이지만 토크는 낮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덕길에서 정차했다가 출발을 위해 가솔 페달로 발을 옮길 때 순간적으로 뒤로 밀리는 경향도 있다.

게트락의 6단 DCT

120km/h까지는 OK! 균형감각도 기본

하지만 가벼운 공차 중량과 전후 밸런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시간 유럽의 골목길에서 입증해 온 탄탄한 하체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차 후 출발 시에 약간 밀리는 듯한 느낌이 있다고 했지만, 페달을 밟아 가속을 시작하면 무리 없이 치고 나간다. 저단 영역에서 게트락의 DCT와 엔진의 합이 좋다. 120km/h까지의 가속감은 무난하다.

자동차의 무게도 가볍지만 전후좌우 균형이 우수하고 조향 감각에서도 이질감을 크게 느낄 수 없다. 가속이나 제동 시에도 큰 쏠림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서스펜션 구성은 전륜 맥퍼슨 스트럿, 후륜 토션 빔이다. 그러나 주행 중 느낀 균형감과 조향성능은 서스펜션의 특성보다는 섀시 자체의 견고함 덕분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대부분의 유럽 자동차들이 경량화를 목적으로 이와 같은 구조를 택하고 있는만큼 서스펜션 구성으로 차의 운동 성능을 단정짓기는 어렵다. 와인딩 로드에서 충분한 재미를 제공할만하다. 여기에 크기가 적당하고 밀착감이 우수한 가죽 소재의 스티어링 휠도 조향의 재미를 배가한다.


르노 클리오, 씬 스틸러의 자격
풀오토 에어컨이 적용된 인텐스 트림

국산 소형 해치백과의 비교,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클리오는 1,954만 원의 젠(ZEN)과 2,278만 원의 인텐스(INTENS) 두 가지 트림으로 나뉜다. 비슷한 엔진과 제원의 수입 소형 해치백 중에서는 가장 저렴하다. 애초에 르노 클리오는 수입 완제품을 들여온 방식이고 엠블럼 또한 르노의 로장주(마름모꼴)를 적용했다. 그럼에도 보험료는 국산차 수준이 적용된다.
그런데 스타일과 특성 면에서 경쟁할 필요가 없는 상대일 줄 알았던 국내 제조사의 해치백들이 변수라면 변수일 수 있다. 현대자동차의 벨로스터 중 최고 출력 136hp(140ps)대의 1.4리터 가솔린 엔진 탑재 차종은 가격도 비슷하지만 수치로 나오는 동력성능은 훨씬 우수하다. 과거에는 디젤 엔진과 가솔린 엔진의 유저는 건널 수 없는 강을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현재 디젤차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은, 우수한 연비를 갖춘 자동차라 해도 우선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마케팅 면에서, 유로6 디젤 엔진의 청정성과 우수한 연비를 얼마나 더 강조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르노 클리오, 씬 스틸러의 자격
부산모터쇼 현장에서의 르노 클리오

활력 넘치는
프랑스 미인의 모습 그대로

클리오의 확연한 강점은 역시 외관 디자인이다.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특별한 약점과 위기를 찾기 어렵다. 강인하거나 스포티하진 않지만 세련된 비례감이 눈길을 끈다. 전장은 4,060㎜, 휠베이스는 2,590㎜이며, 전고가 1,450㎜이다. 전장 대비 휠베이스 비율이 앞서 언급한 경쟁 기종보다 높고 전고는 가장 낮다. 여기에 대시보드와 휠센터의 거리가 길어 실제 크기보다 늘씬한 인상을 제시하며, 크롬 사이드 몰딩의 날카로운 선은 측면 비례감을 더욱 강조한다.

펜더나 차체부의 볼륨감 표현은 디테일하면서도 은근하다. 두드러진 사이드 캐릭터라인이나 융기면은 보이지 않지만 숨은 듯 드러나는 볼륨감이 글래머러스하다. 테일게이트 쪽에서 보면 윈드실드 양쪽 측면과 펜더로 이어지는 선의 윤곽을 보다 잘 느낄 수 있다. 후륜 펜더 위쪽에는 실크 등 부드러운 천이 굵게 주름진 듯한 면처리가 돋보인다. 그런 가운데 전, 측, 후면에 포인트로 들어가 이는 레드 컬러의 가니쉬가 감각적이다.


르노 클리오, 씬 스틸러의 자격
클리오의 ‘뒷태’

클리오는 예쁜 데 그치는 것만이 아니다. 이러한 외관은 공력 성능, 특히 선회 시 공기 저항의 최소화를 위한 계산과 닿아 있다. 역시 오랫동안 랠리를 포함한 모터스포츠에서 활약해온 르노의 기본기가 담긴 부분이기도 하다. 라디에이터 그릴 아래 흡기구 좌우 에어로파츠는 가속 선회 시 회전 반경 내측에서 발생하는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고 전륜 브레이크의 냉각 효율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본능적으로 운전자를 와인딩 로드로 이끄는 힘이 외관 디자인에도 녹아 있는 셈이다.

실용성과 인테리어 센스,
강조해야 할 점은 따로 있다

클리오가 유럽에서 누린 인기의 비결 역시 실용성이다. 그러나 한국 유저들이 조금 꺼리는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섬유재 시트는 독일 3사를 비롯한 프리미엄 제조사 차종을 제외한 유럽 제조사 차종들이 국내 지지자를 대폭 올리지 못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냉정히 살펴보면, 최근에는 소재의 발달을 통해 항균력, 통기성 등이 개선된 섬유재 시트가 적용되고 있으므로 그 자체가 약점이라고 하긴 어렵다. 클리오의 시트는 자세 지지력도 우수하며 촉감도 부드럽다. 1, 2열 좌석 모두 헤드레스트는 가죽으로 되어 있는데, 좌석 가장자리는 레드 컬러의 가죽으로 마감되어 있다. 특별히 화려한 기교가 적용된 것은 아니지만 가죽에 보이는 깔끔한 스티치에서 기본이 돋보인다.

대시보드 좌우 송풍구에는 레드 컬러 트림이 포인트가 된다. 도어 하단부 스피커에도 보스(BOSE) 로고가 적힌 고광택 소재의 인테리어 트림이 적용되어 있다. 물론 경량화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인만큼 오디오 성능의 구현을 위한 흡∙차음재가 별도로 적용되어 있지는 않다. 따라서 오디오 성능 자체가 인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감성적인 면에서의 어필로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