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적, 현대차 팰리세이드 VS 혼다 파일럿

최근 대형 SUV 대전(大戰)은 정통 SUV 팬들의 지지를 받을 차종이 무엇인지 가릴 기회이기도 하다. 부가가치가 높은 차종들이 시장을 달군다는 점은 자동차 제조사의 입장에서 무척 반가운 이다. 온갖차는 이 두 자동차를 동시에 시승해볼 기회를 만났다.

친하게 지내요, 팰리세이드 & 파일럿

현대자동차의 팰리세이드는 2018 11 29, 혼다의 파일럿은 12 13일에 출시되었다. 현대자동차는 6월 부산국제모터쇼에서 콘셉트카를 공개한 이후 단계별 붐업 전략을 구사했고, 혼다는 글로벌 하이브리의 최강자 어코드의 국내 출시에 기반한 브랜드 파워 상승을 무기로 삼았다. 현대자동차 팰리세이드는 밀린 주문만 4만 대가 넘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혼다 파일럿은 원래 한국 시장에서의 볼륨 차종은 아니었으나 신차 안전도검사 불패의 성적과 혼다 센싱의 적용을 내세워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만약 두 자동차가 각각 따로 출시되었다면 이 정도의 붐업 효과를 누릴 수 있었을까? 한국의 여러 환경적 요인은 대형 SUV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물론 현대자동차야 국내 완성차 제조사이고, 볼륨 차종인 싼타페의 상위 기종이라는 후광 효과가 있으나 과거 맥스크루즈의 사례로 봤을 때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따라서 두 차종의 경쟁 구도가 대형 SUV 시장의 판을 키우고, 서로에게도 득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구경꾼이 많아지면 파이트머니도 올라간다.

웅장하고 대담하게
vs
여유롭고 친근하게

2018 부산국제모터쇼에 등장했던 팰리세이드의 전신 격인 HDC-2 그랜드마스터 콘셉트카는 역동적인 직선을 강조했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좌우 수직형의 LED DRL(주간주행등) 디자인, 테일게이트 라인 등은 말 그대로 건축물의 기둥을 연상케 했다. 양산형의 팰리세이드 역시 위압적인 느낌을 줄 만큼 대담한 것이 사실이다. 컴포지트 타입의 헤드램프를 택하고 있으나 싼타페가 주는 샤프함과는 사뭇 다른 인상이다.


혼다 파일럿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부드럽다. 헤드램프 부분만 봐서는 과거 레전드 등 세단의 우아함도 있다. 오히려 팰리세이드 같은 직선 중심의 디자인은 2세대 파일럿에서 더 두드러졌는데, 3세대 파일럿은 그것을 탈피한 것이다. 북미 혼다의 고급브랜드인 어큐라의 SUV MDX를 봐도 오히려 유럽형의 크로스오버 지향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오랫동안 미국 시장에서 자리잡아 왔던 혼다 파일럿이 오히려 미국적인 성향을 덜어내려 하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북미오토쇼에서 선보인 6세대 포드 익스플로러도 기존의 디자인 대신 부드러워진 디자인을 택했다.


팰리세이드는 전장이 4,980, 휠베이스가 2,900㎜로, 스포티한 비례감을 지향한다. 실물로 보면 측면 캐릭터 라인과 휠 아치의 조화도 근육질을 지향한다. 파일럿의 경우는 전장이 5,005, 휠베이스가 어코드와 비슷한 2,820㎜이다. 3세대 전기형에 비해 앞 오버행이 25㎜ 줄어들고 후미 오버행이 80㎜ 길어졌다. 수치보다 실질적인 공간으로 승부하겠다는 계산이 숨어 있다.


2.2리터 디젤의 팰리세이드
vs
3.5 VTEC의 파일럿

혼다의 3.5리터 VTEC 엔진과의 감각 비교를 위해서는 사실 팰리세이드도 3.8리터 가솔린 엔진이 매치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2.2리터 디젤 엔진 차종을 만나게 되었다. 따라서 각 파워트레인과 차종의 적합도를 간접적으로 비교해보았다.

팰리세이드는 출시 전부터 2.2리터 디젤 엔진은 다소 부족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과거 베라크루즈에 탑재됐던 3.0리터 디젤 엔진이라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WLTP(국제 표준 배기가스 시험법)과 강화 유로6 등 배기가스 규제가 엄격해지는 마당에 대배기량의 디젤 엔진은 채용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지 상태에서 60km/h까지 팰리세이드의 가속감은 나쁘지 않다. 최대 토크 45kgm의 발휘 영역이 1,750~2,750rpm인 까닭이다. 그러나 100km/h 이상에서의 추월 가속 시에는 제약이 있었다. 최대 토크 영역이 끝나고 최고 출력이 발휘되는 시점(3,800rpm) 사이의 공백은 무시할 수 없었다. 8단 변속기는 부드럽지만 하향 변속시 구조적 한계는 분명했다. 또한 스포츠 모드에서의 가속 시에는 차량이 갑자기 내려앉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차체자세 제어 시스템이 가속 시 스쿼트(차량 앞머리가 들리는 현상)를 방지하기 위해 강제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의도는 좋지만 다소 이질감이 강하다는 점이 아쉽다.

혼다의 3.5리터 VTEC은 퍼포먼스와 안정성에 있어서는 검증된 엔진이다. 여기에 9단 자동변속기가 결합되어 있다. 하지만 같은 엔진을 장착했던 9세대 어코드에서와 같은 고회전의 질감을 즐기기는 어렵다. 변속기 구조도 다르고 차량의 중량도 1,965kg(7인승 엘리트 트림 기준)이며 전자제어식 상시 4륜 구동을 채택해 무게가 상당한 까닭이다.

장군멍군, 실내 대결

팰리세이드는 시장에 먼저 나와 있던 다른 대형 SUV들의 유형을 기준으로 보자면 포드 익스플로러와 지향점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수직적이고 강인한 직선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외관뿐만 아니라, 운전자의 포지션도 픽업트럭 기반의 미국 SUV처럼 높다. 시트는 볼스터가 두툼해 스포티한 승용차와 비슷한 느낌인데 다리 포지션은 앞으로 뻗기보다는 아래로 내려놓는 것이 편한 스타일이다. 주차브레이크는 전자식으로, 운전석 대시보드 하단 왼쪽에 있다.


나의 친애하는 적, 현대차 팰리세이드 VS 혼다 파일럿
팰리세이드의 센터콘솔과 버튼식 변속기. 8단 AT


나의 친애하는 적, 현대차 팰리세이드 VS 혼다 파일럿
혼다의 센터 콘솔과 버튼식 변속기. 10단 AT

파일럿의 경우는 보다 승용 지향이다. 특히 혼다의 타 차종들과 마찬가지로 A필러로 인한 좌우 시야 방해도 적다. 또한 보닛 끝부분이 짧아 전방 하단 시야도 우수하다. 가죽 시트의 볼스터는 그리 두터운 편이 아니지만 안정감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스티어링 휠의 밀착감은,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는 혼다의 전륜 구동 조향 세팅과 어우러져 안정적인 조향 조작을 구현한다. 풋레스트의 위치 역시 바른 운전자세를 취했을 때 다리를 어느 정도 펴는 것이 가능한 승용차와 같은 구조다. 다만 주차브레이크가 풋브레이크 방식이어서 유저에 따라서는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7인승 시트 기준으로 가용 공간은 막상막하다. 1열의 경우, 팰리세이드는 브리지 방식의 센터 콘솔 구조를 통해 콘솔 하단부에 추가 수납공간을 두었다. 반면 파일럿은 슬라이드방식의 덮개를 활용한 수납함을 콘솔 뒤쪽에 두었다. 자주 수납하는 태블릿 PC처럼 얇다면 팰리세이드의 콘솔 하단 공간이, 향수병 등 굴러다닐 수 있는 소지품이라면 파일럿의 수납함이 유리할 것이다.

팰리세이드는 2열 천장 중앙에 송풍구를 두어 전체적인 실내 공기 순환에 초점을 맞추었다. 편의사양에 공들인 차종인만큼 최상위 트림을 선택하면 3열 대화 기능도 추가된다. 파일럿은 2열 중앙에 10.2인치 모니터, HDMI 단자, 유선 헤드폰 잭 2개 등으로 구성된 리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7인승인 엘리트 트림에 적용된다. 후석 대화 시스템인 캐빈 토크는 2개 트림 모두 기본 적용된다.

팰리세이드는 전면과 1열에 이중접합 차음 유리를 적용해 정숙성을 구현하고자 했다. 혼다의 경우는 자사가 자랑하는 어쿠스틱 글래스를 2열까지 적용했다. 파일럿의 차음 유리가 1열 더 적용되었으나 이로 인해 약간의 공차 중량 증가는 피할 수 없다. 가솔린 엔진 기준으로는 파일럿이 3.8리터 엔진을 장착한 팰리세이드 대비 10~20kg 정도 무거운 것도 이와 무관치는 않다.

두 차량 모두 2, 3열 시트를 접어 보았다. 레저 문화가 발달하면서 대형 SUV는 차박 공간으로도 인기 있다. 두 차종 모두 어느 정도는 수동 조작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크게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두 차종 모두 2열 좌석 측면 하단에 원터치식 버튼을 두어 2열 시트를 접거나 전개하기 용이하게 되어 있다. 팰리세이드는 트렁크 끝단 부분에 고무 패드가 적용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별도의 제원 설명은 없으나 오염 방지 등의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파일럿은 전폭이 조금 더 넓고 이음매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