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돌아오는 부산국제모터쇼지만 시작 전부터 부정적인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국내외 브랜드 합쳐 완성차 제조사가 6개에 불과하고 그나마 현대기아 계열이 3개(현대, 기아, 제네시스)라 사실상 로컬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그것입니다. 모터쇼에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제조사가 얻는 마케팅 효과가 신통치 않다며 모터쇼 존폐위기론도 이야기하는 마당에 부산모터쇼는 사치란 극단적인 의견도 있습니다.
꼭 그렇기만 할까요? 국제모터쇼답지 않아서, 완성차 제조사가 많이 참가하지 않으니까 부산모터쇼는 오랜만에 돌아와서도 조롱받아야 할까요? 저도 4년 전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다릅니다.
현대기아차그룹의 급성장
2024년엔 ‘현대기아모터쇼’로도 가득 찬다?
벡스코(BEXCO) 1 전시장 왼쪽과 오른쪽 벽은 각기 기아와 현대가 채우고 있습니다. 동선을 짜기 나름이지만 이 양쪽 끝은 관람객의 이동 속도가 느려지고 체류 시간이 길어지는 알짜 자리죠. 오히려 가운데 쪽은 경과하는 공간이어서 해당 전시의 종목과는 약간 떨어진 유관 기업의 자리입니다. 이번 부산모터쇼에서는 SK 텔레콤의 자리였습니다.
사실 2018년 이후 4년간, 현대기아차 그룹의 글로벌한 위치는 급성장했습니다. 특히 예상 이상의 템포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전동화가 진행되면서, 세계 최상위 수준의 배터리 기업과 보다 유리하게 협업할 수 있는 두 제조사는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후발주자의 위치를 강요받는 내연기관 영역에 머무를 필요가 없게 됐습니다. 급기야 기아의 EV6는 한국 브랜드 최초로 ‘유럽 올해의 차(EUCOTY)’를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EV6는 유럽 시장에서 더 이상 ‘가성비 좋은 차’가 아니라 프리미엄의 가치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입니다.
현대 역시 전동화 라인업은 물론 고성능 브랜드 N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간 경쟁자들 대비 약점으로 꼽혔던 정교한 운동 성능, 저배기량에서의 고성능 구현 등 한계를 극복한 차로 세계 자동차 전문가들의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제네시스는 고급차 시장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직 주력시장인 북미에서 갖는 존재감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차 자체에 대한 평가는 박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 브랜드 가치를 통해 시장 장악력도 확보할 겁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될 때, 다음 2024년 부산 모터쇼 때는 어떨까요? 예상대로 여전히 수입차 브랜드들의 참여는 저조하다고 칩시다. 하지만 현대기아차그룹은 많은 신차 특히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활용한 다양한 차를 공개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짝수 연도를 거르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짝수년에 진행되는 독일 IAA도 있지만 그렇다고 부산모터쇼를 무조건 패스하진 않을 겁니다. 전시의 질적인 향상을 기대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죠.
모터쇼 무용론?
완성차 아닌 새로운 기업들에게는 기회
모터쇼 무용론은 사실 기존 완성차 브랜드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전시장의 경과 동선을 채우는 작은 기업들에게도 그럴까요? 오히려 회사의 규모에 비해, 져야 하는 참가비 부담은, 앓는 소리를 하는 완성차 제조사보다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완성차 제조사들이 이런 소릴 하는 건 그만큼 모터쇼를 대체할 대안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팝업 전시장이나 시승회, 이벤트를 자주 열고, 이를 SNS나 영상 플랫폼을 등 상시 활용할 수 있는 마케팅 창구가 많아진 것이죠. 이는 어느 정도 시장의 인지도가 있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평소 소비자 접점이 작았던 기업들에게 모터쇼는 좋은 기회입니다. 대동, 고고로, 디앤에이, 바이크원 등의 브랜드를 들어보셨나요? 대동은 70년 전통의 농기계 기업인데, 점점 젊어지는 농업인구, 스마트팜의 대두 등 변화하는 농업환경에 따라 이에 맞는 전기 모빌리티를 시장에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현장 전시 중인 전기 바이크는 중국제 배터리가 아니라 LG 에너지 솔루션이죠. 참고로 골프장 전동카트도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고고로는 간편 충전식 전기 스쿠터로 업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플랫폼에서도 인기가 높죠. 이번엔 신모델도 들고 나왔습니다. DNA 모터스는 전시장 내 부스도 크고, 전시장 외부 주차장에도 시승 장소를 마련하고 신모델인 UHR125를 열심히 홍보하고 있습니다. 경주에 본사가 있는 바이크원은 국내 드문 트라이크 브랜드를 수입하는 곳이죠. 레저 바이크 인구가 많은 부산에서의 모터쇼를 지나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관심이 있는 분들은 들어봤겠지만 대중에게 알려진 접점이 많지 않습니다. 모두 견실한 기업들이고 변화하는 모빌리티 시장에서 사업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소비자 접점이 적은 B2B 기업들이거나 장르 자체가 국한됐던 기업이었습니다.
이런 이들이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들의 기회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많을까요? 모터쇼라는 이름을 걷어내면 부산국제모터쇼는 일종의 산업전시회입니다. 그런데 산업전시회 중에서 일반 대중들의 찾는 전시회가 많을까요?
현장에서 어떤 전문가는 이 브랜드의 전시관을 보고 인지도에 비해 부스가 너무 크다며 그 돈이면 유튜브를 하겠다고 평하는 걸 듣기도 했습니다. 유튜브가 그렇게 쉬운 것이면 누가 못할까요? 더군다나 유튜브 알고리즘은 철저히 개인 기존 관심사 기반입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게 있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세상은 그리 넓지 않습니다.
부산모터쇼는 분명 규모가 작습니다. 참가 제조사 수도 적습니다. 하지만 규모 이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있습니다. 아무리 코딱지만한 행사라도 손바닥 안 알고리즘 세상보단 넓다는 것 말입니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