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제조사들의 유쾌한 광고 전쟁

구경 중 으뜸은 싸움 구경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 피해가 나는 싸움이 아니라면, 삶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대리적으로 해소해주는 카타르시스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 간의 광고 디스전은 흥미로운 콘텐츠다. 신사적인 공격이 있는가 하면 때로 수위가 아슬아슬할 정도로 높거나 유치한 수준도 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이 광고를 통해 벌이는 자존심 대결과 그 속에 담긴 유머 및 문화적 의미를 살펴본다.

스트리트 파이터, 아우디와 BMW

아우디와 BMW두 제조사는 자동차도 볼거리지만 광고 또한 흥미롭다. 이 두 제조사는 해마다 엄청난 광고 비용을 집행한다. 예컨대 2014년 아우디의 경우는 북미 시장에서만 1 6,000만 달러에 가까운 광고비를 썼고, BMW는 그 두 배를 쓰더니 2015년부터는 3억 달러 이상을 광고예산으로 집행했다. 그런 만큼 에이전시도 최고 수준이어서 광고의 크리에이티브나 완성도가 매우 높다. 이런 완성도로 진행하는 광고전이기에 말 그대로 전쟁을 방불케 한다.

아우디는 자동차 제조사의 모두까기 인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공격 범위가 다양하다. 2003네 개의 키링(4 Key Rings)’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인 광고영상이 대표적이다. 아우디는 알파로메오의 디자인, 메르세데스 벤츠의 안락감, 볼보의 안전, BMW의 스포티함이라는 문구와 함께, 각 제조사 차량의 키 4개를 겹쳐 아우디의 로고를 완성하는 장면은, 이탈리아, 스웨덴, 그리고 자국일 독일까지 3개 국적의 경쟁 제조사를 한번에 꿰는 것이었다. 아우디의 공격 전략은 타 제조사를 칭송하되, 타 제조사의 장점은 물론 갖추고 있으며 그보다 발전된 것이 아우디의 차량임을 내세우는 방식이다.

아우디의 “4개의 키링(4 key rings)” 광고영상(2003)

BMW도 못 말리는 광고계의 스트리트 파이터다. 광고 전쟁터라면 그곳이 어디든 BMW가 빠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이들에게는 고정된 타깃이 없다. 메르세데스 벤츠, 아우디 등 자국 제조사부터 영국의 재규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시대에 따라 업데이트되고 있다.

특히 2016년에는 테슬라의 모델 3가 그 타깃이 됐다. 야간의 어느 도심 주차장에서, 한 여성이 바쁜 듯 시계를 보며 걷는다. 여성의 오른편에는 테슬라의 충전기는 보이지만 자동차는 보이지 않는다. 출시가 지연되는 모델 3에 대한 디스인 것이다. 충전기 옆의 가로등이 심하게 깜빡인다. 인프라도 채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황을 꼬집는 것이다. 발걸음이 빨라진 여성 앞에 나타난 차는 3시리즈 PHEV 330e. 답답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인 듯한 이 여성은 일반적인 콘센트에 연결되어 있는 충전기를 거칠게 뽑은 뒤, 자동차를 힘차게 몰고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BMW 특유의 경쾌한 스타트 성능까지 보여 준다. 해시태그 형태로 구현된 이 광고의 카피 문구는 가거나 혹은 기다리거나(#GoOrWait)”였다.

BMW 330e의 광고. 테슬라 모델3가 출시일도 불분명하고 충전 인프라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저격’했다

이렇듯 BMW 의 디스 전략은 타깃으로 삼은 제조사의 치명적 약점을 집어내고, BMW의 자동차를 구입하면 이와 같은 약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2003 X5의 지면 광고에서는, 초원에서 얼룩말 카무플라주를 한 메르세데스 벤츠의 ML을 표범 무늬 카무플라주를 한 X5가 쫓아가는 모습을 선보였다. 무거운 차체로 인해 다소 굼떴던 ML을 놀리는 의미가 다분했다.


자동차 제조사들의 유쾌한 광고 전쟁
BMW X5의 지면 광고. 얼룩말 카무플라주를 한 메르세데스 벤츠의 ML을 쫓는 듯한 형국이다

2006년, 자동차 광고 세계대전?

BMW와 아우디는 그들끼리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아웅다웅 했다. 비벌리힐즈에서 애드벌룬까지 동원한 옥외 광고판 전쟁은 해외 토픽에 등장했을 정도다. 이 두 제조사의 전쟁은 의외로 세계 대전으로 번지기도 했다.

발단은 BMW였다. BMW아우디의 2006년 남아프리카 최고의 자동차 선정을 축하합니다(Congratulations to Audi for winning South Africa Car of the Year 2006)’라는 메시지 끝에 ‘2006년 세계 최고의 자동차로 선정된BMW 드림(From the winner of World Car of the Year 2006)’라는 문구를 붙였다. 이에 아우디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에 꼽힌 것은 축하하는데, 내구 레이스에서의 강자는 아우디다라는 메시지를 실은 광고를 내보내며 응수했다. 여기까지는 늘 그랬던 두 제조사 간의 신경전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일본 제조사인 스바루가 끼어들었다. 아우디와 BMW올해의 차싸움을 미인대회정도로 평가한 스바루는 2006올해의 엔진으로 꼽혔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당시 SUV인 포레스터 등에 장착되었던 스바루의 2.5리터 수평대향 터보 엔진은 2.0~2.5리터 부문 최고의 엔진으로 꼽혔던 것이 사실이다. 이 엔진은 사양에 따라 210hp에서 265hp의 최고 출력을 발휘했으며 8.2:1에서 8.4:1의 낮은 압축비를 통해 안정성을 구현했다. 하지만 BMW  507hp의 최고 출력(7,750rpm)BMW M5(E60), M6(E64)에 장착되었던 5.0리터 V10 엔진이 그 해 올해의 엔진이라며 스바루의 딴지를 일축했다.

2006년 ‘디스 세계대전’의 참전 제조사들. 벤틀리(오른쪽 하단)의 포스가 압도적이다

이 인쇄 광고 싸움의 끝은 벤틀리가 끝맺음하는 형국이 됐다. 벤틀리는 인쇄 지면에서, 어떠한 타이틀도, 어떠한 문구나 자동차도 내보이지 않았다. 다만 정장차림의 노신사가 가소롭다는 미소를 보이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로써 총 4개의 제조사 및 브랜드가 엮인 이 광고 디스전은 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사실상1998년부터 폭스바겐의 일원이 됐던 벤틀리가 같은 모기업 산하 아우디의 손을 들어 준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네거티브 같은 포지티브 광고로 네 개의 브랜드가 모두 웃은 광고라고 할 수 있었다.

품격 있는 저격수, 메르세데스 벤츠

메르세데스 벤츠는 비교적 점잖지만 은근히 경쟁사 홍보담당자가 뒷목을 잡게 만들 만한 저격수 본능을 갖고 있기도 하다. 특히 BMW는 그런 저격의 주 타깃이었다. 2016년은 BMW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메르세데스 벤츠는 영상을 통해 BMW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BMW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100년간의 경쟁에 감사합니다.”라는 진심 어린 축하였다. 다만 여기에 독일식 개그를 살짝 가미했다. “사실 30년간은 좀 심심했었어요.”라며 은연중 그들이 업계 선배임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메르세데스 벤츠는 역공을 받아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BMW가 메르세데스 벤츠의 트레일러에 실려가는 BMW사진을 통해, ‘메르세데스도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배달한다고 공격했지만, 벤츠는 우리가 없으면 BMW는 차도 배달하지 못한다고 되받았다. 게다가 BMW는 이 광고를 통해 오히려 다임러 그룹의 위용을 확인시켜준 모양새가 됐다.


자동차 제조사들의 유쾌한 광고 전쟁
‘메르세데스 벤츠도 드라이빙의 재미를 배달한다’는 BMW의 광고였지만, 벤츠에게 역공의 빌미를 준 광고였다. 더군다나 무상으로 다임러 트럭의 이미지도 홍보해준 광고가 됐다

효과적이지 못했던 재규어의 독일차 공격

영국 세단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재규어도 광고를 통한 입심이 만만치 않다. 특히 재규어는 북미 시장에서 세단 분야의 경쟁자들인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를 타깃으로 삼았다. 하지만 재규어는 역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 디스전이 성공적이었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고양이 같은 유연함을 내세운 광고였다. 이는 메르세데스 벤츠가 S 클래스 등에 구현한 차체 안정성 제어 시스템인 매직 바디 콘트롤에 대한 도발이었다. 당시 메르세데스 벤츠는 어느 방향으로 몸을 움직여도 머리가 고정되어 있는 조류의 특성을 이용해, 닭을 광고에 등장시켰다. 재규어는 이 영상을 패러디해, 닭을 한 번에 삼켜버리는 재규어의 모습을 통해 재규어의 유연성이 더욱 뛰어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다. 하지만 메르세데스 벤츠는 2015 CLA의 광고 영상에서, CLA의 유연한 차체 위로 미끄러지는 귀여운 고양이와, 이를 지켜보는 까만 새끼고양이 2마리를 통해 재규어에게 받은 것을 되돌려주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매직 바디 콘트롤 광고를 패러디한 재규어의 광고(출처: 북미 재규어)

또한 그 이전인 2009, 510hp의 최고 출력을 자랑하는 5.0리터(5,000cc) 신형 XF-R의 출시 당시, BMW M5(E60)를 저격한 광고도 역공으로 오히려 꼴이 사나워진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재규어는 최근 M5를 샀다고? 걱정마세요. 신은 아직 패배자를 사랑합니다라며 패기 넘치는 도발을 감행했지만, 얼마 후 BMW는 인쇄 광고에서, M5와 마주본 재규어 차량 위 엠블럼의 방향을 거꾸로 돌려 놓는 묘수를 택했다. 이는 영락없이, 노려보는 M5를 뒤로 하고 도망가는 재규어의 모습이었다. 이 사진 한 장은 많은 자동차 마니아들로 하여금 배꼽을 잡게 했다.


자동차 제조사들의 유쾌한 광고 전쟁
재규어는 XF-R 출시 광고에서 BMW M5를 ‘패배자’로 규정했다가, 말 한 마디 없는 BMW의 사진광고로 역공으로 ‘굴욕’을 맛보았다

개별 차량에 대한 저격전에서 번번이 역공에 당했던 재규어는 아예 독일 제조사들을 먹기로했다. 2014 우리는 아침식사로 BMW, 아우디 그리고 메르세데스 벤츠를 즐긴다라는 인쇄 광고를 펼친 것이다. 이는 음식의 이미지를 통해 각 제조사의 엠블럼을 구현한 것으로, BMW의 엠블럼은 요거트와 블루베리, 아우디는 프레츨 그리고 메르세데스 벤츠의 삼각별은 피자를 이용해 구현했다. 이 광고 역시, 해당 제조사의 팬들이 약올라하기보다는, 대형 커뮤니티를 통해 오히려 음식 사진이 맛있어 보인다는 등 칭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즉 공격의 효과가 높았다고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