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백색의 스타일, 엔지니어 출신 자동차 제조사 CEO

기업의 리더에게 전문성은 중요한 덕목이다. 업의 본질을 꿰뚫지 못한 전문 경영인들은 자동차 제조사를 경영하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자동차 제조사의 CEO들은 엔지니어 출신이 많다. 그러나 그 스타일은 제 각각 다르다. 영민하고 업의 본질에 밝되 냉혹한 폭군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련된 소통의 달인, 젊은 감각의 미래형 CEO 등 다양한 유형이 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다양한 면모의 경영스타일을 보여 온 각 자동차 제조사별 CEO들을 살펴본다.

폭스바겐의 페르디난트 피에히, 지치지 않고 비정한 군주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그야말로 자동차 산업에서 영욕의 아이콘이다. 포르쉐의 창업주인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외손자이자, 911의 개발자 F.A. 포르쉐(1935~2012)와 사촌지간인 그는 사촌형 못지 않게 포르쉐에 공헌한 인물이다. 우측 운전석을 좌측으로 옮긴 것도 그였고, 낮은 배기량의 엔진 개발을 통해 공도용 차량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은 것도 그였다. 또한 한편으로 917과 같은 전설적인 레이싱카도 만들어냈다. 1937년에 태어난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사촌 형제인 F.A. 포르쉐와 마찬가지로 학업과 혹독한 실무 수련을 통해 가업에 몸담게 되었다. 그는 스위스연방공과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했으며, 1962년 졸업 논문 주제로 F1 엔진을 택할 정도로 가업에도 열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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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르망 내구레이스 참관 중인 페르디난트 피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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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 페르디난트 포르쉐(가운데)와 F.A. 포르쉐(왼쪽), 그리고 페르디난트 피에히(오른쪽)

그는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무신론자이자 난독 증세가 있음을 밝힌 바 있다. 그만큼 그는 젊은 시절, 치밀했지만 한편으로 직관적이었고 철저히 목표 지향형이었다. 물론 이것이 도가 지나쳐 포르쉐를 르망 내구레이스의 정상에 올렸지만 연구∙개발비의 과다 투입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를 살린 것도 그의 기질에 기반한 엔지니어로서의 능력이었다. 4기통 엔진의 한계를 극복하고 소형자동차의 가능성을 확장한 2.5리터(2,480cc) 5기통 엔진 역시 그의 작품이다. 이 엔진은 새로운 RS3(2018) 기준으로 최고 출력 400hp(5,850~7,000rpm), 최대 토크 48.9kgm(1,700~5,850rpm)까지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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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엔진 테크놀로지 인터내셔널 선정 올해의 엔진에 선정된 5기통 엔진(RS3)

그의 직관은 경험을 통해 날카롭게 다듬어졌다. 특히 사람을 쓰고 버리는 방법과 운신의 기술은 더욱 정교한 한편 비정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 폭스바겐 회장이었던 마틴 빈터코른의 운명과 디젤게이트다. 피에히보다 10살이 어린 마틴 빈터코른 역시 금속공학 전공의 엔지니어였고 치밀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또한 F.A. 포르쉐와 피에히가 그랬던 것처럼 보쉬에서 인턴 생활을 거쳤고 그와 함께 30년 가량 한솥밥을 먹었다. 그는 2000년대 중반, 피에히의 의중을 읽고, 폭스바겐과 아우디를 비롯한 그룹 전체 플랫폼을 합리적으로 이원화하는 방안을 연구했다. 낮은 배기량의 가로 배치 엔진 레이아웃과, 높은 배기량의 세로 배치 엔진 레이아웃을 별도의 플랫폼으로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메가플랫폼전략의 시작으로, 각 차량에 뚜렷한 개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된 폭스바겐은 나날이 판매량이 높아졌다. 또한 빈터코른 재임 시절 폭스바겐에는 14만 개의 일자리도 늘어났다. 이런 업적을 바탕으로 2012 7세대 골프의 출시까지, 빈터코른과 피에히는 밀월관계 그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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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빈터코른 전 폭스바겐 회장(왼쪽)

그러나 2015년 단 6개월만에 퇴위한 마틴 빈터코른의 폭스바겐 제국 회장 재임기간과 미국에서의 디젤게이트 사건을 둘러싼 음모론들은, 최소한 피에히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2015년 상반기, 주요 매체와 자동차 전문지들은 피에히가 볼프강 포르쉐 및 다른 대주주들을 등에 업고 피에히를 축출했다고 썼지만, 기실 이를 통해 피에히는 디젤게이트의 책임을 슬쩍 떠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폭스바겐 회장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역시 피에히의 사람으로 불리고 있는 마티아스 뮐러다. 그 역시 아우디 견습공 시절 피에히의 눈에 띄어 오랫동안 폭스바겐에 머무른 사람이다. 영국 <> 매거진 등 주요 매체들은 피에히 회장이 80세의 고령에도 더 강해진 힘으로 폭스바겐 컴백 시기를 점치고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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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아스 뮐러 현 폭스바겐 회장(오른쪽)
다임러 그룹의 디터 체제, 친구 혹은 전사

메르세데스 벤츠를 포함한 다임러그룹이 쟁취해야 할 최고는 다소 다른 차원의 것이다. 대중화 전략을 시도하고 있긴 하지만 어차피 판매량으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기업은 아닌 만큼, 얼마나 한 시대 기술의 표준이자 모범이 될 수 있느냐가 다임러그룹을 비롯한 몇몇 제조사들의 싸움이다. 이를 이끌고 있는 CEO 역시 카를스루헤 대학과 파더본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그러나 기계공학 쪽에 강점이 있는 폭스바겐이나 포르쉐의 CEO들과 달리, 그는 전기공학도 출신이다. 체제 회장은 매번 주요 모터쇼와 미국 가전박람회인 CES에서 전기 모빌리티 등에서 IT 기업에 못지 않은 새로운 발상과, 자동차 제조사만이 가질 수 있는 실물 경제에 대한 견고한 감각의 조화를 자랑하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2015 CES에서 선보인 메르세데스 벤츠의 미래형 전기자동차인 F015 럭셔리 인 모션 콘셉트카를 들 수 있다. 이 자동차는 전장 5,220㎜에 휠베이스 3,610㎜로 넓은 탑승공간을 자랑하는 전기자동차다. 기이할 만큼 미끈한 외관과 커넥티드 기능 및 자율주행 기능, 그리고 인터페이스의 기능을 갖는 인테리어 등으로, 테슬라 등 여러 전기자동차 제조사들의 긴장시켰다. 또한 이 자동차는 272hp의 최고 출력과 40.kg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며 0100km/h까지 6초대의 가속이 가능한 것으로도 알려져, 메르세데스 벤츠가 엔진시대부터 유지해 온 질주의 가치 역시 계승하고 있다.

1953년생으로 올해 만 64세인 디터 체제는 터키 이스탄불 출신이다. 그는 이미지를 잘 활용할 줄 아는 CEO이기도 하다. 그는 크라이슬러가 다임러그룹과 함께 있던 2000년대 중반, ‘Dr.Z에게 물어보세요(Ask Dr.Z)’라는 광고 캠페인을 통해 큰 인기를 누렸다. 참고로 이 광고에서의 ‘Dr.Z’의 목소리는 가상의 성우를 기용한 것으로 알려져 약간의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독일식 억양이 섞인 진짜 목소리를 들은 이들이 반드시 성우에게 대역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그 당시 자료를 살펴보면,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콧수염에 안경은 그 때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하얗게 센 이 콧수염이, 스피치마다 입고 나오는 청바지에 흰 운동화, 푸른 재킷과 잘 어우러져 다른 제조사의 CEO와는 다른 친근감을 주고 있기도 하다.
 
1976년에 연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디터 체제는 연구뿐만 아니라 영업 분야에도 몸담았다가 비교적 젊은 나이인 1998, 다임러가 인수한 크라이슬러의 CEO가 되었다. 그리고 2005년 다임러크라이슬러의 미국 법인 총책임자로, 그리고 그 이듬해부터 다임러 그룹의 총수가 되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 계약기간은 2019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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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015 럭셔리 인 모션 콘셉트카
혼다의 타카히로 하치고, 숫자가 아닌 미래를 쫓는 CEO

지난 2015년에 취임한 혼다의 타카히로 하치고는 1982, 섀시 제작 부문의 엔지니어로 시작한 인물이다. 혼다 소이치로 창업주가 친아들을 경영에 입사시키지 않으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다른 수많은 아들들중의 하나였던 셈이다. 그런 만큼 타카히로 하치고 CEO의 혼다에 대한 애정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의 임기는 출발이 좋았다. 2015년 디젤게이트로 인한 반사이익은 혼다를 외면하지 않았다. 2015년까지 430만 대에 머무르던 글로벌 세일즈는 회계연도 기준으로 2016 470만 대를 돌파했고 2017년에는 500만 대 이상을 기록했다. 참고로 모터사이클 분야에서는 2016년대에 1,700만 대의 글로벌 세일즈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혼다의 릿지라인 픽업트럭은 2016년 미국의 올해의 픽업트럭에 꼽히기도 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적, 질적으로 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아직 타카히로 하치고는 자동차 CEO 세계에서는 다소 생소한 인물이다. 하지만 취임 2년째를 맞는 2017년 그의 존재는 혼다의 성장과 함께 서서히 부각되고 있다. 그는 혼다라는 기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혼다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각 제조사들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있어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합종연횡을 진행하지만, 그는 자사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지를 철저히 검증하고 움직이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다만, 2017 6 19, 취임 2주년 기념 연설에서 혼다 역시 여러 방면으로의 제조사 간 협력에 열려 있음을 피력해, 변화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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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히로 하치고 CEO(오른쪽)

또한 그는 급격한 변화보다는 혼다가 가진 저력을 믿는 CEO. 저렴한 가격의 고성능 기종으로 현재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10세대 시빅 타입R을 기존 영국 스윈든 공장에서 지속적으로 생산 및 수출하기로 결정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인기 기종의 경우 생산 라인을 다원화하는 등의 욕심도 부릴 수 있지만, 그는 기존 공장의 생산 능력을 우선 최대화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혁신의 기본으로(back to basic in drive for innovation not number chasing)’라는 것이 바로 그의 2년 전 취임 일성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납득할 만한 행보다.

FCA의 존 엘칸, 첨단 감각 지닌 조용한 실권자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FCA)의 주인인 아녤리 가문의 자동차에 대한 열정은 모계로 이어져오고 있다. 이 부분과 관련해 가장 유명한 인물은 외조부 지아니 엘칸의 를 듬뿍 물려받은 라포 엘칸이다. 그러나 자동차에 대한 실질적 열정을 물려받은 것은 존 엘칸이라 할 수 있다.

 

1976년생인 그는 지난 2010, 34세 때 피아트의 회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동생과 달리 그는 토리노 공대를 졸업하고 1990년대 중반부터 세계 각지의 피아트 관련 공장에서 자동차 각 부품의 엔지니어로서의 경험을 쌓았다. 물론 그가 21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사로 추대되긴 했지만, 그것은 외조부의 동생 움베르토 지아니의 아들, 즉 그와 5촌 지간인 지오반니 알베르토 지아니가 33세로 세상을 떠난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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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A의 존 엘칸 회장(가운데)

그는 동생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동차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경영을 해나가고 있다. 2011년 그는 피아트의 지주회사이자 전장기업인 엑소르의 CEO에도 추대되었으며, 2013 <포천>지가 선정한 40대 이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히기도 했다. 참고로 엑소르는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이 사외이사로 등록된 기업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전자상거래 등 첨단 산업에도 꾸준한 관심을 갖고 연구해 왔다. 그는 6 21,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신문의 미래> 포럼에 참석해,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와 함께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여기서 엘칸은 기업이 이윤을 내려면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내야 하며 어떤 시대 변화 속에서도 지불 능력이 있는 소비자군을 발견해 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 베조스를 비롯한 많은 참석자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는 실제로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미국 내 여러 중공업 기업과 IT 기업의 총수들을 연결해주는 인물로도 소문이 나 있다. 존 엘칸은 언론과 여러 미디어 산업에도 식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부친 알랭 엘칸도 언론인이자 극작가였다는 점을 살펴볼 때 납득할 만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하는 동생과 달리, 이탈리아의 마지막 귀족 가문 보로메오 가(家) 출신인 라비니아 보로메오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고 있다. 보로메오 가는 모나코 왕실과 인척관계이기도 해, 아녤리 가문과도 멀게나마 인연이 이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