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F1 개막전 취소·포뮬러E 서울은 연기, 그래도 희망을

2020년 포뮬러 원(이하 ‘F1’)의 첫 대회인 오스트레일리아 GP가 취소된다. 또한 오는 53, 서울에서 열리기로 했던 포뮬러 E의 서울대회(E-Prix)도 일정이 조정될 예정이다. 지난 312()13(), 국제자동차경주연맹(FIA)과 각 대회 조직위 측은 이 같은 사실을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알렸다. 이유는 명확하다. 코로나바이러스 19(COVID-19)의 감염 및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한 경정이다. 우려했던 일이지만 예상한 일이라는 것이 각 팀의 반응이다. 유례없는 일이긴 하지만 큰 위기에 훌륭하게 대처했다는 선례를 만든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결정이다.

2,500만 달러 손실,
그러나 더 큰 것을 지킨다

사실 코로나바이러스의 세계 대유행 이전에도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는 굵직한 국제 스포츠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20196월에 시작돼 2020년 현재까지 아직도 채 진화되지 않은 곳이 있을 정도로 격렬했던 이 산불로 인해, 2019시즌 WRC의 마지막 경기도 열리지 못했을 정도였다. 또한 20201월의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테니스 대회의 경우도 가까스로 개최됐지만 참가한 많은 선수들이 연기로 인한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기권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오스트레일리아 전체는 물론 세계인들이 안타까움에 잠긴 이런 상황은 F1의 오픈 경기를 치르기에 유리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코로나바이러스가 덮친 셈이다. 여기에 계절적 요인으로 인한 우려도 크다. 그간 더운 여름이어서 상대적으로 바이러스의 활동에 제약이 있었던 남반구였으나 이제는 서서히 가을로 접어들고 있는 시점이다.


2020 F1 개막전 취소·포뮬러E 서울은 연기,
그래도 희망을
맥라렌 르노는 팀원 1명이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아 오스트레일리아 GP 불참을 선언했다

FIA와 오스트레일리아 GP 조직위는 개막을 1주일 앞둔 시점까지 깊이 고심했다. 대회 취소 시 최소 손실은 2,500만 달러에 달하는 대회 준비 비용이었다. 대회로 인해 거둘 수 있는 부가적 경제효과까지 감하면 손실 금액은 더 클 수 있다. 그러나 감염병의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더 클 것으로 우려되는 만큼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F1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각 팀의 상황이 큰 영향을 미쳤다. 맥라렌 측이 지난 312, 팀 멤버 중 한 명의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으로 참가 포기를 선언한 것은 결정적인 이유였다. 맥라렌 측은 한 명의 확진자가 다른 팀원들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고,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을 F1 측에 분명히 밝혔다.

 이후 오스트레일리아 GP의 취소 결정은 긴박하게, 그러나 민주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로스 브론(Ross Brawn) F1 모터스포츠 디렉터는 전했다. 회의는 12시간 내내 이어졌고 이 때문에 체이스 캐리(Chase Carey) F1 회장이 베트남과 멜버른을 오가는 피곤한 비행을 반복했다.

브론 디렉터는 우린 레이스에 미쳐 있는 사람들이고 한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오스트레일리아 GPF1에서, 또 경제적인 측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그는 때로 전체적인 상황을 종합적으로 봐야 할 때가 있으며, 단 한 팀에 단 한 명의 확진자라도 있으면 알리는 것이 맞다며 취소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브론 디렉터는 생각 이상으로 2020 시즌의 많은 대회를 치르지 못할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겸허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페라리의 경우는 파워트레인을 책임져야 할 이탈리아의 생산 시설이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페라리의 파워 유닛을 쓰는 팀은 페라리 외에 알파로메오 레이싱, 미국의 하스 등이 있는데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어지는 일정의 바레인 GP는 사상 첫 무관중 경기로 진행될 예정이고 상하이 경기는 당연히 연기됐다. 베트남 경기는 가급적이면 진행하겠다는 것이 의지지만 이 역시 불투명하다.

다만 오스트레일리아를 덮친 이중의 재난에 F1 드라이버들이 보낸 선행은 그나마 개막전 취소 소식을 통해 확산되는 공포를 조금이나마 완화할 작은 위안거리였다. 코로나바이러스 세계 대유행 전이긴 하지만, 루이스 해밀튼은 지난 1월 산불 피해 복구와 동물 보호를 위해 50만 달러를 쾌척했고,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다이넬 리카르도(르노 F1) 역시 적십자를 통해 기부를 진행했다. 해밀튼의 경우 호주에 입국해 산불 현장과 구조된 동물이 보호되고 있는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포뮬러 E 서울대회는 일정 조정

202053일에 예정됐던 포뮬러 E 대회는 흥행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접근성이 우수한 서울 도심에서 치러지는데다, 모터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적은 이들도 즐길 수 있도록 K팝 공연 등 부대행사도 다양하게 계획된 덕분이었다. 특히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국 국적의 K팝 그룹인 BTS(방탄소년단)이 포뮬러 E의 홍보 대사를 맡은 것도 이점이었다. 국내 팬뿐만 아니라 글로벌 단위로 움직이는 이들의 팬클럽을 관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FEO(포뮬러 E 조직위원회)FIA가 일정을 2개월간 중단하면서 서울 대회의 일정이 재조정될 수밖에 없게 됐다. 다행히 완전한 취소가 아니라 경기 일정을 재조정하고 차후 가능한 날짜를 재발표하겠다는 것이 FEO의 입장이어서 좀 더 기다려볼 필요가 있다.

알레한드로 아각(Alejandro Agag) FEO 회장은 지금은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시기라며 포뮬러 E 2019/2020 시즌의 2개월 중단이 불가피했음을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 일정을 재조정해야 하는 대회는 서울을 포함해 로마, 산야, 자카르타, 도쿄 등 총 5개 도시의 대회다.


2020 F1 개막전 취소·포뮬러E 서울은 연기,
그래도 희망을
포뮬러 E의 공식 앰배서더인 그룹 BTS(방탄소년단)

FIA의 다른 종목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2014년 출범 후 인기를 누리고 있는 투어링카 대회 WTCR의 경우 424~26일 헝가로링에서 개최 예정이던 헝가리 대회가 취소됐다. 운영 단체가 다른 다른 모터스포츠 대회들도 시즌 운영에 있어서의 차질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초유의 감염병 사태 앞에서 예외는 있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 인류사의 긴 흐름 속에서 이 혹독한 시간은 향후 결코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는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방법도 동시에 알려주고 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세계 대유행 사태를 통해 주요 모터스포츠 운영 단체들은 감염병에 보다 슬기롭게 대처하는 한편 누군가의 소중한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방안을 갖게 되리란 점이 그나마 희망이다.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