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의 대반격, 혼다의 경사! 2020 F1 이탈리아 GP

이탈리아 현지 일자로 9월 6일(일)에 열린 2020 포뮬러 원(이하 ‘F1’) 챔피언십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스쿠데리아 알파타우리의 피에르 가슬리(#10)가 F1 무대 데뷔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맥라렌의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55)가 2위, BWT 레이싱포인트의 랜스 스트롤(#18)이 3위에 올랐다. 모두 이번 시즌 드라이버 랭킹 10위권 언저리에 머물던 ‘언더독’들이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반란’이라 할 만하다. 경기 초반에 벌어진 페라리의 사고와 20랩대의 세이프티카 상황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럴 때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적합하다. 강자들이 항상 쓰는 말이기도 하다. 

혼전이란 말로도 모자란 역전극

포디움에 오른 세 명 중 예선 상위 그리드에 있었던 건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밖에 없었다. 3위에서 시작해 2위로 끝났으니 그야말로 이번 이탈리아 GP에서 가장 안정적인 주행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피에르 가슬리는 10번 그리드, 랜스 스트롤은 8번 그리드를 받았다. 1, 2위는 메르세데스 AMG 페트로나스 F1의 루이스 해밀튼과 발테리 보타스였다. 둘은 이번 시즌 드라이버 포인트에서도 1, 2위를 달리고 있다. 


언더독의 대반격, 혼다의 경사!
2020 F1 이탈리아 GP
메르세데스 AMG 페트로나스 F1의 시작은 좋았다, 언제나처럼

그러나 시작부터 낌새가 이상했다. 2위의 발테리 보타스(#77)가 출발 불안과 함께 타 차량과의 컨택을 수 회 범하며 차량을 쉽게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곧 농담임을 밝히긴 했지만, 무전을 통해 이 상태론 계속 경기를 진행할 수 없다는 메시지까지 내보냈을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1위에 7초 108 뒤진 5위로 경기를 마감했는데, 경기 내내 일정 이상의 퍼포먼스를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루이스 해밀튼은 10초 스탑 앤 고 페널티를 맞고 7위에 머물렀다. 비록 이 결과가 드라이버 랭킹 1위의 위치를 흔들 순 없었으나 결과가 아쉬웠다. 

“그럴 때도 있지” 메르세데스 AMG F`1 팀의 발테리 보타스(왼쪽)와 루이스 해밀튼(오른쪽)

승부의 판이 요동친 것은 20랩 때의 세이프티카 상황이었다. 세이프티카 등장 직전에 피에르 가슬리는 피트인해 타이어를 하드 컴파운드인 C2(화이트)로 교체했고 트랙에 다시 돌입했을 때 15위였다. 그러나 이후 세이프티카 상황이 벌어지고 차간 거리가 좁혀졌다. 그리고 24랩에 경기가 재개됐지만 다시 페라리의 샤를 르클레어(#5)가 방호벽을 들이받으며 25랩에 리타이어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따라서 레드 플래그(경기 중단) 발동 후 그리드 재정렬 뒤 출발이라는 보기 드문 사태가 발생했다. 

가슬리가 승부를 건 것은 28랩에서 미디엄 컴파운드의 C3(옐로우)로 타이어를 교체하면서였다. 그는 29랩에서 1위로 올라섰고 막판까지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와 접전을 이뤘다. 피에르 가슬리는 경기 후에 “2위로 만족한다면 만족할 수 없을 것 같았다”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전했다. 이런 독기 덕분인지 사인츠와 가슬리의 간격은 1초 이내로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가슬리는 1시간 47분 6초 056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스트롤은 나름대로 자신의 플레이만을 했다. 22랩에 피트 스탑을 하지 않으면서 순위를 한 번 끌어올린 것은 일종의 도박이었는데 그 이후 세이프티카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래도 7월 19일 헝가리 GP와 8월 16일 스페인 GP에서 4위에 오르며 부친의 투자에 나름대로 부응하며, 향상된 실력을 자랑해오던 중이었다는 감안하면, 운도 실력을 쌓아가고 있던 자에게 찾아간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다. 이번 포디움은 윌리엄스 시절이던 2017년 아제르바이잔 GP 이후 2년만이자 두 번째이며, 순위는 그 때와 동일한 3위다. 포디움 소감도 비교적 겸손하게 ‘휠 스핀이 나 어려웠다’고만 밝혔으며, 대신 절친인 피에르 가슬리의 우승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잘 알려져 있듯 가슬리는 프랑스인이고 스트롤 가문은 캐나다에서도 프랑스의 영향력이 큰 퀘벡 주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메르세데스, 레드불, 페라리의 동반 부진
터보 하이브리드 시대 최초

이탈리아 GP에서는 유독 2014년 터보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의 도입 이후 최초 기록이 많이 나왔다. 혼다는 스쿠데리아 알파타우리의 우승을 통해, 2014년 이후 복수 팀에서 우승을 거둔 최초의 파워유닛 컨스트럭터가 됐다. 또한 메르세데스와 레드불 페라리가 동반 부진한 이 시대 최초의 그랑프리로도 기록됐다. 특히 제바스티안 페텔(#16)과 샤를 르클레어가 모두 탈락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샤를 르클레어
복귀 후 아직 ‘감’을 잡지 못한 제바스티안 페텔

지난 7월 12일의 오스트리아 GP부터 8월 30일의 벨기에 GP까지 6회 연속 포디움에 오르며 올 시즌 드라이버 챔피언십 2위 보타스를 위협했던  막스 페르스타펜(#33)은 31랩에서 리타이어했다. 이탈리아 GP 이후 결과가 보타스에 1포인트 뒤진 116 포인트인 까닭에, 10위에만 들었어도 동점, 그 이상이었다면 역전도 가능했을 것이다. 뛰어난 드라이버이지만 포스트 해밀튼의 시대를 책임질 것이 유력시되는만큼 마지막 한 칼이 필요해 보인다. 

혼다 측으로서는 강호라 할 수 없던 스쿠데리아 알파타우리의 가슬리가 우승을 일궈내 기쁘면서도 자사 파워트레인을 장착한 두 팀, 4인의 드라이버 중 간판  스타인 페르스타펜의 부진을 그냥 넘길 수 없는 모양새다. 혼다의 미케닉 파트 수장을 맏고 있는 토요하루 타나베 디렉터는 피에르 가슬리와 스쿠데리아 알파타우리 팀 멤버들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는 한편, 막스 페르스타펜의 파워트레인에 생긴 이슈를 빨리 해결해 다음 경기에서 4대의 차량이 모두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혼다 파워트레인을 장착한 두 팀은 2020 시즌을 전반적으로 잘 치르고 있다. 막스 페르스타펜은 여전히견고하며 영국 실버스톤 서킷에서 우승하며 오랜만에 혼다에게 영국 GP 우승이라는 쾌거를 안겼다. 아픈 손가락 같던 스쿠데리아 알파타우리 역시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COVID-19 사태만 아니었다면 더 배가되었을 기쁨이다. 다음 경기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열리는 토스카나 GP다. 


한명륜 기자



언더독의 대반격, 혼다의 경사!
2020 F1 이탈리아 GP
안볼거임? 클릭하면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