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여지가 있는 COVID-19 종식 선언 속에, 지난 10월 24일 미디어데이를 시작으로 중국 베이징 모터쇼(Beijing International Automotive Exhibition 2020)가 막을 열었다.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이자 부품 생산 기지인 중국이 시장 활성화의 신호탄을 쏜 건 긍정적으로 볼 일이지만 대국으로서의 책임 있는 자세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가운데 시작된 행사라는 점에서 개운치는 않다. 그러나 어쨌든 모터쇼는 새로운 전략을 선보일 기회다. 혼다는 BEV(배터리 기반 전기차)의 상용화라는 관점에서는 다소 늦었지만 EV 콘셉트카를 발표했다. 또한 글로벌 베스트셀링 SUV인 CR-V의 PHEV 버전도 공개했다.
혼다 SUV e:콘셉트
토요타나 혼다 등 일본 자동차 공룡들은 EV 트렌드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동화 기술 자체에서의 완숙도는 높다. 혼다만 해도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전기차 개발에 들어가 전기차를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 레이스에 투입할 정도였다. 다만 여기서 얻은 기술을 하이브리드에 좀 더 집중시켰을 뿐이다.
베이징 모터쇼에서 공개한 SUV e:콘셉트(e:Concept)는 혼다가 본격적으로 BEV를 선보이겠다는 전략이다. 매끈하면서도 보닛 후드, 휠 아치 등에 볼륨이 살아 있는 이 콘셉트카는 어딘가 혼다 콘셉트카들의 전형과는 조금 다른 면모가 있다. 전면부 일체형의 LED 사이에 혼다 엠블럼이 빛나지만 혼다의 대표적 전동화 파워트레인 라인업인 클래리티와 닮은 구석을 찾기는 어렵다. 수평성을 강조한 후미 등화류, 미끈한 윈드실드와 루프의 흐름은 오히려 독일 브랜드들으 콘셉트카 디자인을 연상시킨다.
이런 부분은 혼다가 BEV 개발에서 여러 제조사와 함께 협업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혼다는 지난 7월, 세계 2위의 배터리 기업인 중국의 CATL과 전기차 제조사 NEVs와의 협업을 통해 전기차를 개발하는 데 합의했다. CATL은 2022년까지 중국 시장에서 출시되는 혼다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한다. 혼다는 CATL의 주식을 1% 인수하는 조건이다.
현재 파워트레인의 제원 성능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2020년 8월부터 유럽 시장에서 인도하기 시작한 혼다-e의 동력 사양이 최고 출력 154ps, 최대 토크 32kg·m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SUV에 걸맞는 동력 사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산 버전의 공개 시기는 2021년 중반으로 예상되고 있다.
PHEV 버전의 CR-V
한국에서는 큰 인기가 없다지만 유럽을 비롯해 글로벌 전동화 파워트레인 시장에서 PHEV의 인기는 높아지고 있다. 전반적인 저유가 분위기에서 소비자가 체감하는 유가도 하락하고 있고, 전기에만 의존하는 것 역시 오히려 발전 과정에서의 탄소 증가를 부를 수 있다고 볼 때, 그 모든 비용의 균형에 가깝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혼다는 클래리티를 통해 PHEV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었고 글로벌 인기 SUV CR-V를 통해 자사 최초로 PHEV 버전의 SUV를 선보이게 됐다. 베이징 모터쇼에서 선보인 것이긴 하지만 이 차량은 글로벌 스펙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역시 상세 제원은 미공개이나, 혼다가 자랑하는 2모터 기반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인 스포츠 i-MMD(Intelligent Multi Mode Drive)가 적용된다. 이 시스템은 배터리, 엔진에 연결된 두 개의 모터가 크랭크축 상에 함께 연결되고 록업 클러치를 이용해 분리되거나 협응하는 방식이다. 강력한 가속이 필요할 때는 모터와 엔진의 동력을 한번에 구동축으로 몰아넣는 방식이 가능해 역동적인 주행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 특징이다.
PHEV 버전의 CR-V는 배터리 용량을 하이브리드 대비 크게 늘려 전기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를 늘리는 한편, 전기차 특유의 가속감까지 느낄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게 혼다 측의 메시지다. 이미 혼다 CR-V의 하이브리드 버전은 북미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2019년 미국 그린카 저널(Green Car Journal)이 선정한 최고의 친환경 SUV(Green SUV of the Year), 2020년 오토트레이더 닷컴이 선정한 2020년 최고의 신차에 선정된 바 있다. 양산된다면 한국 시장에서도 수요가 있을 만한 차종이다.
360°레이더로 업그레이드된 혼다 센싱
베이징 모터쇼를 통해 공개된 혼다의 두 차종에는 보다 향상된 ADAS 시스템인 차세대 혼다 센싱이 적용된다. 차세대 혼다 센싱은 레이더의 감지 범위를 360°까지 확장한 것으로 ‘옴니디렉셔널 ADAS’를 지향한다고 혼다 측은 전했다.
새로운 레이더를 기반으로 한 혼다 센싱은 보다 향상된 차로 인식 및 복합적인 주행 상황의 확인 등을 통해 편리하고도 안전한 ‘충돌 없는 이동의 자유’에 한 단계 근접한 기능이다. 혼다는 해당 기능의 시연을 연내에 중국 시장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혼다는 최근 GM 등 글로벌 제조사들과의 협력을 통해 신차 개발에서 보다 글로벌 스탠더드의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디자인에서나 성능 면에서나 자동차 시장이 천편일률적이지만, 시장의 소비성향 자체가 유니크함보다 보편성에 의한 안도감을 지향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도 보인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