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애스턴 마틴 F1팀의 드라이버이자 월드 챔피언십 4회 우승의 기록을 가진 제바스티안 페텔이 자신의 공식 인스타그램 영상을 통해 자신의 공식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가 기록한 53회의 그랑프리 우승과 122회의 포디움 피니쉬는 역대 4번째로, 57회의 폴 포지션(예선 1위)은 역대 3번째로 많은 기록입니다. 게다가 그가 2010년 최연소 챔피언을 기록하기도 했죠. 이러한 기록들을 뒤로 하고, 만 35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F1 머신의 시트를 떠납니다. 그는 2022 시즌을 끝으로 의퇴한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페텔은 포뮬러 원의 전설 미하엘 슈마허의 후계자로 자주 거론됐고 연봉 400만 달러가 넘지만, 인지도와 스타성에 비해서는 조용한 사생활로도 유명합니다. 어린 시절 친구와 결혼해 세 아이를 두고 스위스에 조용히 살고 있죠. 독일인 드라이버들이 이렇게 30대 중반에 이룰 것은 다 이뤘다며 떠나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2016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니코 로즈베르크(메르세데스 AMG 페트로나스 F1)도 그랬습니다. 그러고 보니 니로 코즈베르크가 2016년 아부다비 그랑프리에서 생애 첫 챔피언을 이뤘을 때, 옆에서 페텔이 샴페인을 부어 주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페텔은 “무척 어려운 결정이었고, 이 결정을 위해 많은 시간을 고민해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페텔은 “적어도, 그들의 열정이 없다면 F1이 존재하지 않을 팬들에게 안녕을 고하는 날이 오늘은 아니다”라고 전해, 시즌을 완전히 마무리짓겠다는 의사를 비쳤습니다. 현재 포뮬러 원 2022시즌은 7월 마지막 주 헝가로링에서의 대회를 포함해 총 10개 그랑프리가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포뮬러 원 측에서도 그의 은퇴 결정과 관련된 게시물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공식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그의 은퇴 선언 소식을 알렸습니다. 공식 인스타그램에선 그의 과거 업적과 관련되는 다양한 게시물을 23시간도 채 되지 않는 동안에 10개나 올렸습니다. 그 중에는 페텔이 2013년 미국 그랑프리에서 드리프트를 선보이며 남겼던 라디오 통신도 있는데, “우린 오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게 영원히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죠(We have to remember these days. Because there’s no guarantee that they will last forever)”라는 내용이어서 그의 많은 팬들과 포뮬러 원 팬들이 감회에 젖은 댓글을 남기고 있기도 합니다.
제바스티안 페텔은 페라리 소속으로 네 번째 시즌이던 2018년까진 드라이버 챔피언십 2위까지 올랐지만 마지막 시즌 그랑프리 우승 1회에 그치며 5위로 떨어질 때부터 조금씩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결국 마지막 시즌에는 포디움 피니쉬 1회를 기록하고 데뷔 시즌 제외 최악인 13위를 기록하며 페라리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와 함께 페라리를 이끈 팀메이트이자 나이를 넘어선 절친인 키미 라이쾨넨도 2018년에 페라리를 떠났죠.
전문가들은 페텔의 경우, 전성기가 일찍 와서 빨리 지나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1986년생으로 그보다 한 살 많은 루이스 해밀튼은 실제 20대 후반부터 30대 초중반까지 절정에 달한 것을 감안하면, 페텔은 해밀튼과 함께 2010년대를 전후로 양분한 셈입니다. 게다가 페라리 시절 머신의 완성도는 낮았고 페라리 메르세데스가 ‘뽕빨’을 내던 시기라 2017, 2018 시즌의 준우승이 그렇게 나쁜 기록이라고만 할 수도 없습니다. 아니, 포뮬러 원이 어떤 무대인데, 2위가 나쁜 기록이겠습니까.
그럼에도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는, 그의 전성기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끝내 마지막 회광반조라 할 만한 장면이 안 나왔기 때문이죠. 그의 전성기는 단연 레드불 인피니티 소속이던 2009년에서 2014년이었습니다. 이 시기 불꽃놀이와 함께 체커기를 받는 싱가포르 그랑프리 우승을 다섯 번이나 했고(2011~2013, 2015, 2019) 영암에서도 4회 중 3회나 연속 우승을 거뒀습니다. 특히 한국 영암에서 마지막 경기가 열렸던 시즌이자 그의 마지막 드라이버 챔피언십 우승 시즌인 2013 시즌은 압도적이었습니다. 벨기에부터 브라질까지 무려 9개 그랑프리를 연속으로 우승했죠. 이 기록은 아직도 최다 연속 우승으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페텔의 은퇴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의 롤모델이었던 슈마허도 은퇴 이후 복귀했었고, 그 이전의 전설적인 드라이버들도 은퇴 후 복귀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바스티안 페텔의 은퇴 소식은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진한 흑백 화면 때문일까요?
그래도 아직 10번의 그랑프리가 남아 있습니다. 남은 그랑프리에서 그가 한 번 더 포디움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그의 팬들뿐만 아니라 포뮬러 원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바람일 겁니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