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로렌, 자동차와 패션의 시너지를 꿈꾸다

세계적인 의류 브랜드인 폴로의 설립자이자 디자이너인 랄프 로렌은 소문난 자동차 마니아이다. 특히 자동차를 향한 그의 애정과 콜렉션은 본업인 의류 디자인 및 비즈니스와도 시너지를 이루었다. 제조와 마케팅, 그리고 소비로 이루어지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총아인 패션과 자동차, 그 두 영역을 아우른 랄프 로렌의 발자취를 살펴보았다.

패션 철학으로 이어진, 상류층을 향한 열망

랄프 로렌은 1939년 뉴욕 브롱크스(Bronx)의 유대인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랄프 리프시츠. 그는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으며, 이후 리프시츠(Lifshitz)라는 성을 버리고 로렌(Lauren)으로 바꾸었다.
 
패션에 대한 열정도 컸던 랄프 로렌은 당시 유행하던 트렌드에도 민감해, 다양한 사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부유층 유대인 학생들의 옷차림에서 부터 영화배우 캐리그랜트의 군더더기 없는깔끔한 패션감각, 탭댄스로 유명했던 가수겸 배우 프레드 에스테어(Fred Astaire)’ 등이 그의 참고 사례였다. 그러나 그는 타인의 멋을 따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남다른 패션감각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이 컸던 그는, 상류 사회의 라이프 스타일을 옷에 심는다는 것을 자신의 디자인 철학으로 삼았다. 하지만 단순히 개별 의상의 스타일에 그치지 않고, 상류층의 라이프 스타일을 자체를 콘텐츠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그의 옷을 사면 누구나 특권층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랄프 로렌은 1971, 여성용 테일러드 셔츠를 출시하며 소맷부리에 폴로 선수의 모습을 본 따 만든 로고를 처음으로 수놓기 시작해 시선을 집중시켰다. 우리가 알고 있는 폴로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미와 실용성 모두를 추구하는 자동차 수집

랄프 로렌이 패션만큼 사랑한 분야가 바로 자동차다. 랄프 로렌은 자동차의 디테일에서 디자인에 대한 영감을 많이 받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자동차와 패션은 그에게 뗄 수 없는 존재라 할 수 있다. 희소성 있는 자동차를 끊임 없이 수집한 것도, 상류층의 문화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고자 하는 디자인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랄프로렌, 자동차와 패션의 시너지를 꿈꾸다
출처-www.ralphlaurencarcollection.com

랄프 로렌의 자동차 수집 기준은 명확하다. ‘희귀하거나 아름다운 것이 두 가지이다. 그는 자동차를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여긴다. 이는 이탈리아 유명 카로체리아 디자이너들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부가티, 알파 로메오, 벤틀리, 벤츠, 재규어, 애스턴마틴, 포르쉐, 페라리 등 세계적인 제조사의 클래식카 60여대를 소유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자동차 컬렉션은 여타 콜렉터들과는 다른 예술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랄프로렌은 단순히 수집한 차를 늘어놓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핸들을 잡고 직접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수집의 목적을 넘어 진정한 자동차 마니아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수집한 자동차 대부분은 미국 현지 번호판을 달고 있으며, 랄프 로렌이 직접 운전하는 ‘실전용 차량’이다. 여기에 그는 4명으로 구성된 정비팀을 운영하며 자신의 자동차를 관리하고 있다. 실제로 차량 정비를 담당하는 마크 레인워드 컬렉션 매니저는 “자세히 살펴보면 전시된 차량에 엔진오일이 묻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자동차를 통한 영감, 대중과 공유하다

랄프 로렌이 수집한 자동차는 차고에 두기에는 아까울 정도의 가치를 갖고 있다. 그도 자신이 수집한 자동차에 반영된 미적 감각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2005.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에서 <속도,스타일 그리고 아름다움(Speed, Style, and Beauty)>이라는 전시회를 열었다. 이곳에 전시된 빈티지 스포츠카들은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희귀하다고 꼽히는 디자인을 갖고 있는 차량들이었다. 전시장 입구에 자리잡은 전 세계에서 4대만 제작된 1938년형 부가티 애틀랜틱부터, 1930년대 메르세데스 벤츠의 SSK, 그리고 1958년형 페라리 250 테스타 로사(Testa Rossa) 등이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참고로 이 전시는 세계적 투자사인 메릴 린치가 후원하였으며, 미국의 유수 언론들이 그 전시의 의미에 대해 대서특필하였다.


랄프로렌, 자동차와 패션의 시너지를 꿈꾸다
1958년형 페라리 250 테스타 로사

랄프로렌, 자동차와 패션의 시너지를 꿈꾸다
1996년형 맥라렌 F1

이 전시에서 선보였던 차량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전시와 같은 제목의 도록으로 발간되었다. 여기에는 전시되었던 클래식카에 대한 소개는 물론, 자신이 생각하는 자동차 철학과 디자인의 관계, 자신이 수집한 자동차 제조사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당시 책임 큐레이서 다아시 쿠로넨과의 인터뷰도 수록하고 있으며, 240여 컷의 컬러 화보도 수록하고 있다. 자동차에 관심 있는 마니아들 뿐만 아니라 전시 관련 전공자에게는 도움이 될 만한 책이기도 하다.


랄프로렌, 자동차와 패션의 시너지를 꿈꾸다
출처-랄프로렌 공식 홈페이지
파리에서 다시 한 번 선보인 랄프로렌의 콜렉션

랄프 로렌은 <속도,스타일 그리고 아름다움> 전시를 진행한 지 6년 후인 2011, 프랑스 파리 장식미술박물관(Decorative arts Museum)에서도 <자동차의 예술 (The Art of the Automobile)>라는 이름의 또 다른 자동차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에서는 보스턴 박물관에서와는 달리 철저히 빈티지 자동차들에 집중했다. 파리 장식미술박물관 측은 그의 콜렉션 중 17대의 최고급 클래식카만을 선정하여 300m² 규모의 전시장에 전시했다. 17대의 자동차를 모두 합친 값은 약 1 2200만 달러( 13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당시 등장했던 자동차들은 1929년식 벤틀리 블로어를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로 꼽히는 1962년식 ‘페라리 250 GTO’와, 영화배우 제임스 딘이 교통사고로 사망할 당시 타고 있던 차로 유명한 1955년식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비롯해, 6년 전 보스턴 미술관 전시 당시에도 화제를 모았던 1938년식 ‘부가티 애틀랜틱’ 등 그 면모는 20세기 대중문화사의 증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시장 한쪽에서는 이 자동차들이 도로를 달릴 때 나는 배기음을 직접 녹음해 재생하여 현장감을 살리기도 했다.  


랄프로렌, 자동차와 패션의 시너지를 꿈꾸다
1938년식 부가티 애틀랜틱 출처- www.ralphlaurencarcollection.com

랄프로렌, 자동차와 패션의 시너지를 꿈꾸다
1929년식 벤틀리 블로어 출처- www.ralphlaurencarcollection.com

랄프로렌, 자동차와 패션의 시너지를 꿈꾸다
1955년식 포르쉐 550 스파이더 출처- www.ralphlaurencarcollection.com

랄프로렌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파는 것은 옷이 아니라 꿈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랄프로렌이 클래식카를 수집하는 이유는, 그가 진행한 전시와 이를 통해 출간한 도록 등을 통해 추론하고 정리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그의 차고는 곧 그가 만들어 놓은 꿈의 공간이 아닐까? 그가 성까지 바꿔 가며 강렬하게 갈망했던 고급 문화에 대한 동경, 그것이 현실화된 공간 말이다.



김은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