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의 새로운 주력 차종 모델 3가 드디어 국내 가격을 공개하고 주문 접수를 시작했다. 2016년 4월, 1인당 1,000달러의 계약금을 받으며 계약자를 모집한 지 3년하고도 4개월 만이다. 그 사이에 해당 차량에 대한 추가 계약금 납입 요구, 생산 개시와 연기의 번복, 자금위기설 등 여러 곡절이 있었다. 과거 테슬라 로드스터 시절에 겪었던 문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원활하지 않은 관계 등은 모델 3를 주문한 사람들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이제는 만날 수 있게 된 모델 3, 개발 단계부터 지금까지를 타임라인으로 간략히 살펴보았다.
불안한 시작,
2006~2010
엘론 머스크가 모델 3의 기초적 아이디어를 대중에 공개한 건 2006년이었다. 그는 당시 미국 PBS 채널의 <와이어드 사이언스(Wired Science)>에 출연해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새로운 전기차를 언급했다. 이 당시 그는 공동 대표로 있던 솔라 시티라는 대체에너지 기업을 설립해 중이었다. 당시에는 거의 무료봉사처럼 태양광 판을 설치했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았지만 그는 이를 포함한 배터리 기술이 전기차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결과론적으로 맞는 얘기였다.
머스크의 머릿속에서 모델 3가 4인승 이상의 패밀리카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된 것은 2008년이었다. 현재 모델 3가 전장 4,690㎜에도 2,880㎜의 긴 휠베이스와 1,850㎜의 전폭을 바탕으로 5인승의 공간을 갖게 된 것도 이러한 초기 개념을 반영한 것이다. 참고로 머스크는 이 해 8년간 여섯 아이를 낳고 같이 살았던 캐나다 소설가 저스틴 머스크(결혼 전 ‘윌슨’)와 이혼했다. 테슬라 로드스터의 출시 지연, 스페이스 X의 연이은 발사 실패, 리먼 브러더스 발 금융위기가 겹치며 빈털터리가 됐고 사실상 이혼당한 것이었다. 당시 재산분할 및 위자료는 420만 달러(한화 46억 원)이었고 그는 알거지가 될 위기에 처했다.
2010년까지의 그만을 본다면 테슬라의 오늘을 긍정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영국의 배우 탤룰라 라일리와 결혼했지만 2012년에 이혼했다. 여전히 자금 사정은 나빴고, 전기차 사업은 확신이 없었다. 그 가운데 기존 자동차 제조사들은 하이브리드 라인업의 역량을 강화해나갔다.
모델 3와 모델 S의 인연,
2012~2016
머스크와 테슬라가 2010년대에 제대로 일어선 것은 역시 모델 S 덕분이었다. 럭셔리 전기 세단으로 미국의 각계 부자들의 잇템으로 자리잡으면서 성공했다. 핫로드(미국 올드카) 마니아인 메탈리카의 제임스 헷필드를 비롯해 한국인 메이저리거 추신수 등도 구입했다. 한국에서도 최근 들어 월 200대를 넘나드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모델 3의 이름은 모델 S와 관련이 깊다. 초창기 개발 프로젝트 당시 모델 S가 모델 2로 개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설에 의하면 머스크는 모델 3의 3은 영문 ‘E’를 좌우로 바꾼 것으로, 나중에 모델 X를 통해 ‘S3X’ 라인업을 완성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의도야 어쨌든 이 자동차가 판매량을 확보해준 덕분에 테슬라와 머스크는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차량도 인도 계획이 2012년에서 2013년으로 밀리긴 했지만 매년 꼬박꼬박 2만 대 내외의 미국내 판매량을 기록 중이다.
테슬라의 모델명을 이으면 ‘S3X’가 된다. 이상한 게 보인다고?
기도할 필요는 없다.
당신에게 음란마귀가 씐 것이 아니라 머스크의 빅 픽처였다고 한다.
엘론 머스크가 부지런히 탤룰라 라일리와의 이혼과 재결합 등 개인 신상을 분주히 조립, 재조립하고 있던 2013~2015년 즈음 모델 3의 계획은 보다 구체화된다. 2015년 1월, 테슬라의 시험 주행용 차량이 주요 외신에 포착됐다. 이 차량은 걸 윙 도어를 가진 SUV인 모델 X의 시험차량이었다고 밝혀졌지만, 당시 이 차량을 모델 3로 본 이들도 많았다. 그만큼 기대감이 높았다는 의미이다.
테슬라의 원동력은 예약 고객의 인내심?
2016~2019
그 이후 1년 뒤, 테슬라는 전 세계적으로 모델 3의 예약을 실시했다. 마치 아이폰을 사듯 일정 금액의 예치금을 넣어두고 기다리는 방식이었다. 절차도 홈페이지에서 가능해 매우 간편했고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수의 유저들이 계약했다. 테슬라는 당시 1주일만에 16조 원의 예약 금액을 기록할 정도였다.
당시 테슬라는 기다림이 어느 정도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은 알렸다. 예약자들 역시 이에 수긍했다. 그러나 기다림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첫 생산에 들어간 시점이 2017년 7월이었다. 이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산업계 관계자들의 시선은 테슬라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2018년 4월 1일 만우절에 들어서는 일론 머스크의 ‘파산’ 관련 트위터 언급으로 인해 주가가 폭락하기도 했다. 이것이 단순히 농담인지, 어떤 목적이 있어 일부러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려고 한 것인지 속내는 아직도 분명치 않다.
머스크에 대한 금융기관들의 신뢰도는 2018년에 최악을 찍었다. 2018년 9월,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테슬라가 생존하려면 2년 내에 100억 달러(당시 기준 11조 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전망에는 당연히 그런 일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란 전제가 깔려 있었다.
물론 테슬라가 모델 3의 생산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2018년 7월에는 결국 주당 7,000대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물론 이에 대한 머스크의 자화자찬이 독이 돼 포드로부터는 ‘우리는 4시간에 7,000대를 만든다’는 비아냥도 듣긴 했지만, 모델 3의 물량 수급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뜻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테슬라는 2019년 3월 28일에 개막해 4월 초에 막을 내린 2019 서울모터쇼에서 모델 3를 공개했다. 비록 부스가 크고 화려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물이 과연 어떠한지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부스를 찾았다. 포토샵에서 마술봉 한 번이면 배경제거가 가능할 것처럼 생긴 외관 등은 홈페이지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이 차량들을 유심히 지켜본 관객들은, 모델 S나 모델 X와 마찬가지로 1열 내장재의 아쉬움은 어쩔 수 없지만, 외형보다 넓은 실내 공간 등은 만족스럽다는 평을 내놓는 분위기였다.
8월 13일 공개된 판매 시작 가격은 5,239만 원으로 1회 완충시 386km를 주행하고 0→100km/h 주파에 5.6초가 걸리는 후륜 구동 스탠다드 레인지 플러스의 가격이다. 1회 충전 시 499km를 갈 수 있는 4륜 구동 차종은 0→100km/h 4.6초의 롱 레인지, 3.4초의 퍼포먼스로 나뉘며 각각 6,239만 원, 7,239만 원에서 시작한다. 4륜 구동 퍼포먼스 트림에 블랙 앤 화이트 프리미엄 인테리어를 더하면 7,896만 원이다. 애초에 예약을 시작하던 2016년 당시, 4,000만 원대 고성능 전기차를 표방했던 것과는 다르다. 테슬라 코리아가 전기차 구매보조금을 신청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4,000만 원 중반대는 넘어가게 된다.
가격이 예상보다 높고, 기다림이 길어도 사겠다고 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그만큼 테슬라라는 자동차가 제시하는 미래적 가치를 일상에서 누리고 싶었던 이들일 것이다. 과연 테슬라가 이후에도 생산 물량을 꾸준히 확보하며 한국에 물량을 공급할 수 있을지가 모델 3 성공의 관건이다. 한국 유저들은 얼리 어댑터이고 새로운 가치를 좋아하지만 그만큼 빨리 지치고 상처받기도 쉽다는 점을 테슬라는 알아야 할 것이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