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변화에 대한 깊은 고민, 메르세데스 벤츠 비전 EQS

자동차 산업에서 전동화의 흐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파워트레인 자체가 기존 엔진 시대와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고, 자동차 제조사들의 성역이라 여겨졌던 섀시 및 기계 시스템은 조달이 너무나 쉬워지면서 기존 거대 제조사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특히 엔진 시대에 구축했던 아성이 견고할수록 전동화로의 이행은 더디다. 바로 메르세데스 벤츠의 사정이다. 이런 가운데 나름의 해법을 상징하는 콘셉트카가 2019IAA(프랑크푸르트 국제모터쇼)에서 공개됐던 비전 EQS 콘셉트카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이 차종을 지난 514, 한국에서도 선보였다.

벤츠의 미래를 보여주는 수정구슬,
비전 EQS

사실 메르세데스 벤츠가 전동화 시대에 다소 안일하게 대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는 있었다. PHEV전략도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고 꽤 잘 이어오던 FCEV(퓨얼셀하이브리드) 전략도 승용 라인에서는 사실상 포기한 모양새다. 양산 전기차도 EQC 하나지만 경쟁 전기차들에 비해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

물론 여기에도 이유는 있다. 여전히 삼각별의 코어 지지자들은 전동화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이들의 바람은 시대를 따르지 않고 볼륨도 적다. 그러나 시대 흐름과 볼륨을 찾아 코어를 포기했을 때의 실패는 실패 그 이하의 몰락을 의미한다. 전기차 시대에도 벤츠는 벤츠여야 한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수사적 언설이 아니라 복잡한 조건 속에서의 절규에 가깝게 들린다.


빠른 변화에 대한 깊은 고민, 메르세데스 벤츠 비전 EQS
마크 레인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 부사장

비전 EQS는 바로 그런 고민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결과는 탄소 중립성, 오랫동안 이어져 온 장인 정신, 커넥티드 기능을 포함한 지능형 모빌리티의 완성 등으로 요약된다.

고성능 전기차가 양산되는 이 시대에, 최고 출력 350kw(469ps), 최대 토크 77.5kg∙m 0100km/h 가속 시간이 4.5초 이하로, 현재 4.0리터 AMG보다도 못하다는 것은 아쉽다. 그러나 1회 완충 시 주행거리는 700km에 달한다. 물론 어차피 EQ 브랜드의 전략이 코어 브랜드인 메르세데스 벤츠를 포함한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메르세데스 AMG와도 유기적으로 결합될 수 있다면 이러한 동력 성능의 수치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비전 EQS는 무엇보다 럭셔리라는 가치에 충실하다. 차체 전체에서 느낄 수 있는 끊김 없는 율동감, 기존 차량에 적용되는 절곡형의 캐릭터라인 대신 라이트벨트를 택한 것 등은 향후 EQ 브랜드의 럭셔리 세단의 형태를 짐작케 한다. 부유층들의 애호품인 요트에서 힌트를 얻은 디자인인데, 전체적으로는 비전 마이바흐 6AMG 1 하이퍼카의 유전자가 더해진 모양새다.

인테리어는 비전 마이바흐 6쪽에 좀 더 가깝다. 특히 전체적으로 화이트 컬러에 푸르스름한 무드 라이트로 구현된 분위기부터 그러하다. 비전 마이바흐 6 중에서도 카브리올레와 분위기가 흡사한데, 여기에 대시보드와 전면 트림부의 일체화를 통해 더욱 요트 갑판과 같은 분위기를 구현했다.  

비전 마이바흐 6 쿠페(왼쪽)와 카브리올레

전면부는 홀로그래픽의 향연이다. 헤드램프에는 좌우 각 2개씩의 홀로그래픽 렌즈 모듈이 적용돼 있으며 이는 외부 라이트벨트와 통합된다. 디지털 라이트 헤드램프는 360도 라이트벨트와 디지털 LED 매트릭스 그릴과 함께 자동차와 주변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만든다. 세계 최초로 구현된 블랙 패널 그릴의 조명 매트릭스는 5개의 개별 LED 1개의 별이 탑재된 188개의 회로판으로 구성되어 정밀한 신호를 제공한다.

라이에이터 그릴을 대체한 블랙 패널에는 그간 원형 테두리에 갇혀 있던 삼각별들이 빼곡히 박혀 있다. 램프의 블랙 패널이 활성화되면, 자유롭게 떠다니는 듯한 별과 픽셀이 홀로그래픽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홀로그래픽 렌즈 모듈은 2,000rpm 이상의 빠른 속도로 회전한다. 메인 모듈과 회로판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고, 헤드램프당 500개의 LED가 공간을 떠다니게 된다. 향후 이 패널은 자동차 간이나 차와 사람 간 의사 소통을 위한 인터페이스로도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양 폐기물, 럭셔리한 외관에 적용됐다고?

메르세데스 벤츠의 제품 세대 교체 주기는 7년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측은 이 주기가 3번 돌아오기 전인 20년 안에 완전한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는 앰비션 2039(Ambition 2039)’라는 계획으로 명명되었다. 재활용 소재의 적극 활용부터 생산 단계에서의 재생 에너지 사용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이미 비전 EQS에는 실제 그러한 공정을 통해 생산된 소재가 포함되어 있다.

우선 루프 라이너에 사용된 혁신적인 텍스타일은 특별히 해양 폐기 플라스틱이 함유되어 있으며, 이는 육안으로 보이는 고급 소재 영역에서는 처음으로 재활용 플라스틱이 사용된 사례다. 비전 EQS에 사용된 우드 트림 역시 지역 내 생태 친화적인 방식으로 관리되는 독일의 삼림에서 재배된 단풍 나무 소재다. 운송에서의 거리 단축을 통해 탄소 발자국을 줄였으며, 열대 삼림 보존에도 기여한 프로세스다.

인테리어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뭇결을 그대로 살린 단풍 나무 소재 트림과 함께 크리스탈 화이트 색상의 고품질 다이나미카(DINAMICA) 극세섬유가 사용됐다. 이는 재활용한 PET병과 나파 가죽처럼 세밀한 표면 가공 처리를 한 인조 가죽을 사용한 것이다. 즉 재활용한 소재를 통해 비전 마이바흐와 같은 고급스러움을 구현한 셈이다. 측면 문틀 역시 인조가죽이 사용되었다. 가죽을 얻는 동물 사육 두수의 감소도 역시 온실 가스를 감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해외에서 먼저 소개된 콘셉트카를 국내에 실물로 보여주는 것은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그러나 비전 EQS 국내 공개 행사는 뜻하지 않은 시대적 가치 전환이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콘셉트카는 역시 보수적인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향후 삼각별이라는 엠블럼이 어떤 지향점을 갖게 될지를 미리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메르세데스 벤츠는 고민의 과정을 공개하는 브랜드는 아니었다. 그러나 비전 EQS는 시대에 따른 고민의 과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차라는 점만으로도 이전과 다른 신선함을 준다.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