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맛있게 보는 뉴 푸조 2008! 빗속의 시승회

8월의 첫 주, 수도권에 머무른 장마전선은 8월 7일 잠시 한강 일대의 홍수경보가 해제될 때까지 어마어마한 피해를 남겼다.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전까지 슈퍼컴퓨터도 이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고 일기예보는 사후리포트 수준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에이전시 일에도 몸담았던지라, 8월 4~5일 양일간 정해진 뉴 푸조 2008의 시승 행사를 두고 담당자들이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지 짐작이 간다. 고심 끝에 주최측은 하남 스타필드와 가평 일대 와인딩 로드 사이 유명산의 주요 와인딩 로드를 포함했던 코스를 대폭 변경해 고속도로 중심으로만 진행했다. 기대되었던 운동 성능 등에 대한 자세한 시승기는 추후 시승차를 통해 전하고, 이번에는 간략한 인상만을 사진과 함께 리포팅하고자 한다.

“뒷자리 괜찮아?”
“레그룸은 괜찮습니다”

함께 참석한 기자는 187cm, 90kg에 육박하는 거구다. 본 매체의 또 다른 기자가 183cm에 80kg대 중반으로, 회사에 둘이 서 있으면 과거 WWE를 풍미했던 언더테이커와 케인의 조합을 보는 듯하다. 후자의 경우는 렉서스의 UX 시승회에 참가해 ‘봉변’을 당했다. 평균보다 작은 체격인 기자가 바른 자세로 운전석을 세팅했음에도, 해당 기자의 무릎은 운전 등받이에, 머리는 천장에 닿아 요철을 넘을 때마다 고생했다.

이번에 참석한 기자 역시 뉴 푸조 2008의 2열에 앉았는데 걱정부터 됐다. 조수석 뒤쪽에 앉은 그는 괜찮다고 하는데 나이 많은 꼰대가 물어보니 그런 게 아닌가 해서 시트 뒤쪽으로 손을 넣어봤다. 다행히 무릎 쪽에 여유가 많이 남아 있었다. 전장 140㎜, 휠베이스 60㎜가 길어졌는데, 기존 2008의 오너라면 그 차이를 크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스포티하고 날렵해 보이는 외관 때문인지 덕분인지 사실 단박에 ‘커졌다’는 느낌은 받기 어렵지만 2열 공간은 기대 이상이었다.

다만 PSA 그룹 차종 중에서도 푸조의 하체 세팅이 단단하고 스포티하다보니, 아무래도 2열은 안락감에 큰 장기는 없었던 듯했다. 동행했던 기자는 솔직히 ‘멀미가 조금 났다’고 전했다. 그러나 1열의 경우, 버킷형은 아니지만 몸을 꽉 잡아주는 시트와 알칸타라 시트 덕분에 착좌감과 안정감은 충분했다. 조수석에 타고 있을 때는 무거운 플래그십 DSLR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정도였다.

프랑스 현지 공식 시승 때도 비가 왔다?
빗속에서 더 멋졌던 실루엣

푸조는 공식 제공 이미지의 퀄리티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몇 개월 전 업로드된 공식 테스트드라이브 이미지를 보면 날이 잔뜩 흐리고 비가 왔던 흔적이 있다. 사실 맑고 쨍한 날보다 오히려 노출 맞추기가 용이해 포토그래퍼들은 폭우만 쏟아지지 않는다면 흐리거나 가랑비가 내리는 경우도 꺼리지 않는다.

그런 대단한 스튜디오의 포토그래퍼만큼은 아니었지만, 흐린 날씨와 적당히 비에 젖은 2008은 멋진 피사체였다. 키치하다 싶을 만큼 강렬한 엘릭서 레드 컬러, 달콤하고 상큼한 향이 날 것 같은 오렌지 퓨전, 높은 채도로 시원함을 자랑하는 버티고 블루, 음영에 따라 차의 캐릭터라인을 감각적으로 전하는 큐뮬러스 그레이 등은 2008의 디자인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GT 라인과 알뤼르는 디자인면에서도 약간 차이가 있다. 헤드라이트 테두리의 블랙 베젤과 ‘사자의 송곳니’ LED DRL와 연결되어 있는 세 개의 LED는 GT라인에만 적용되어 있다. 전륜 펜더 상단과 보닛 외곽 캐릭터 라인 경계에 있는 ‘GT 라인’ 레터링도 그 유무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 보이기도 한다. 도어미러 커버와 필러부 및 루프는 GT라인의 경우 고광택의 블랙 컬러, 알뤼르는 차체와 동일한 컬러다. 그래도 한국에 들어오는 알뤼르는 푸조의 전체 트림 중 중간에 해당한다. 유럽에서는 가격을 확 낮추고 여러 디자인 요소와 편의 사양을 뺀 액티브와 액세스 트림도 운영하고 있다.

빗길 주행 중 선행 차량의 뒷모습은 체급 이상의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물에 바퀴 사이드월이 잠길 정도의 도로에서도 마찰력을 잃지 않았다. 하긴 푸조는 랠리의 강자인 점을 감안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주간주행등이 뒤쪽에도 적용돼 있는데, 꽤 어둑어둑한 날씨 속에서 유광 블랙 스트립(가로 구조물)위의 ‘PEUGEOT’ 레터링과 그 아래의 사자가 눈에 잘 띈다.

뜻밖의 씬 스틸러 e-208

시승 행사의 체류 장소인 가평 제이드가든에는 전기차인 e-208 전시돼 있었다. 참고로 이 역시 별도 시승 가능한 차량을 받아 시승기를 업로드할 예정이다.

건물 앞에 주차된 e-208은 파호 옐로(Faro Yellow) 컬러의 e-208이 더 주목을 받았다. ‘2020 유럽 올해의 차’ 선정 엠블럼이 보닛과 도어에 찍힌 이 차는 기자들뿐만 아니라 제이드가든을 찾은 일반 관람객들의 관심도 끌었다. 파호는 벨기에산 맥주를 뜻하는데 특유의 황금빛을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이 컬러는 높은 광량의 확산광 속에서 더욱 아름다우며, 곡선의 미를 잘 살리는 데 적합하다. 배우 조여정을 홍보대사로 위촉한 DS의 대표사진 속 DS3 크로스백의 임페리얼 골드도 비슷한 계열의 컬러인데, 부드럽고도 풍부한 확산광 속에서 더욱 멋져 보였다. 2008에는 없는 컬러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 폭우의 와중에 5분 정도 해가 떴다. 한참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언제 다시 빗방울이 닥칠지 몰랐다. 바로 200-500㎜ 줌 망원 렌즈를 물려, 햇빛에 드러난 맥줏빛 e-208을 촬영했다. 흐릴 때와는 또 다른 ‘때깔’이 확 올라왔다. 갑자기 목이 말라온 건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e-208은 유럽에서 208 판매량의 30%에 육박할 정도다. 유럽에서는 최고 출력 사양 75ps, 100ps, 130ps의 1.2리터 퓨어테크 가솔린 엔진도 판매하고 있으니 거의 파워트레인 선택에 있어 동등한 대접을 받고 있다. 국내 기준으로 완충 시 주행거리 244km를 인증받았으나 WLTP 기준으로는 340km가 넘는다. 실제 주행 때도 주행 거리는 WLTP 기준에 보다 가까웠다는 점만 우선 전한다.

물론 e-2008 역시 2008 판매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동일한 파워트레인을 사용하되 공차 중량이 조금 더 무거운 SUV인 관계로 1회 충전 시 주행 거리는 237km 수준이다. 그러나 주행거리를 떠나서 ‘디자인이 멋진 전기차’라는 포지션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할 듯하다. 팝업스토어가 진행되고 있는 스타필드 하남에서도 지나가는 행인들의 호평이 자자했다. 그런만큼 e-208과 e-2008을 보다 많은 가망 고객들에게 시승 이벤트 차량으로 제공해 그 매력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마케팅에는 도움이 될 듯하다.

앞서 살펴보았듯 주행 감각이나 연비에 대한 상세한 체험 결과를 전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기상 조건이었다. 한불모터스 측도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곧 별도의 시승차량을 운영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온갖차 역시 추후 별도 테마를 갖고 그에 따라 2008과 e-2008을 맛보고자 한다. 우선 눈으로 맛보기를 권한다.

글·사진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