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그룹의 e-모빌리티 전략은 매우 입체적이다. 그들의 장점인 규모의 경제와 소비자들의 층위가 다른 다브랜드 전략은 전기차로의 대전환기, 몇 개의 모델로 승부하는 혁신 강자들을 상대하는 기존 강자의 힘을 보여 준다. 포르쉐의 타이칸, 폭스바겐 브랜드의 ID 시리즈와 함께 아우디의 e-트론은 폭스바겐 그룹의 전동화의 주전이다. 그런 아우디가 전기차 시대의 고성능 GT, e-트론 GT와 RS e-트론 GT를 서울에서 공개했다.
전기차 시대의 고성능 GT
아우디 e-트론의 전기차 시장 도전은 성공적이라 할 만하다. e-트론은 북미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고 한국 시장에서도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완충 시 주행 거리에는 아직 약간의 제약이 있지만 대신 배터리의 열화를 최대한 방지하면서 충전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배터리 시스템은 나름의 장점이다. 여기에 엔진 시대의 아우디와 큰 이질감이 없는 8각형 그릴 및 여유로운 공간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후미에 쿠페 라인을 가미해 운동 성능을 강화한 e-트론 스포트백도 호응을 얻고 있다. 국내에도 e-트론 스포트백 50 콰트로로 출시된다.
미래도 밝은 편이다. 폭스바겐 그룹은 포르쉐 브랜드의 타이칸을 통해 고성능 전기 스포츠카의 가능성을 열었다. 순간 가속과 ADAS 성능, 주행 거리는 테슬라의 차량들이 앞서지만, 섀시 엔지니어링에 기반한 운동성능 노하우, 고속에서의 효율 등 타이칸도 앞서는 점이 있다. 포르쉐는 예상치 못한 타이칸의 인기에 생산 물량을 두 배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숙련된 아우디 노동자들의 파견을 요청했고 그룹 차원에서 이 계획이 실현됐다. 향후 이들이 아우디로 돌아가면 아우디 역시 이들의 업그레이드된 기능의 혜택을 볼 것이다.
물론 e-트론 GT의 스펙트럼이 더 넓다. 지난 2월 아우디 스포트의 대표인 율리우스 제바흐는 아우디 e-트론 GT에 대해 “아우디 최초의 순수 전기 하이–퍼포먼스 모델을 위한 기반이자 아우디 브랜드의 매력적인 플래그십 모델”이라 정의했다. 즉 매혹적인 디자인, 장거리 주행에 적합한 편안함, 일상적인 실용성, 자신감을 주는 스포티한 주행 성능을 갖춘 선구적인 전기차가 아우디의 지향점이다.
전장은 4,989㎜, 전폭은 1,964㎜에 달한다. A7보다 약간 넓고 긴데 전고는 1,413㎜로 A7보다 낮아 그만큼 전면과 후면 윈드실드의 각도는 한껏 누워 있다. 공기저항 계수도 0.24Cd에 불과하다. 물론 스포츠카는 적절한 공기저항을 통해 마찰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가변식 리어 스포일러가 적용돼 있다.
e-트론 GT,
전기차 시대 첫 RS 배지를 달다
행사장에는 e-트론 GT와 RS e-트론 GT(이하 ‘RS’)가 동시에 전시됐다. RS는 레이스를 뜻하는 ‘렌 슈포트(Renn Sport)’의 약어로, 엔진 시대 아우디의 퍼포먼스를 상징했다. RS e-트론 GT는 전기차 시대의 첫 RS라 할 수 있다. RS가 포함됐다는 것만으로도 e-트론 GT의 위상은 달라진다.
e-트론 GT와 RS e-트론 GT 모두 93.4kWh 용량의 리튬 이온 배터리가 적용된다. 모터는 전·후륜 차축에 장착된다. e-트론 GT는 최고 출력 390kW(530ps), 최대 토크는 65.3kg·m이며 RS는 475kW (646ps), 최대 토크는 84.7kg·m에 달한다. 최대 토크는 모두 부스트 사용 기준이며 부스트 지속 시간은 2초다.
두 모델 모두 전기 사륜구동 시스템인 전자식 콰트로를 탑재했다. 또한 미끄러운 노면, 고전력 요구 시나 빠른 코너링이 필요할 경우 후륜 구동용 전기 모터가 활성화되며 이는 기계식 콰트로 구동보다 약 5배 더 빠르다.
고전압 배터리는 두 모델 모두에서 83.7kWh의 순 에너지(총 93.4kWh)를 저장할 수 있다. 배터리는 33개의 셀 모듈을 통합하며, 각 모듈은 유연한 외피를 가진 12개의 파우치 셀로 구성되며 1열 아래 위치한다. 1회 충전 시 주행 거리는 WLTP 기준으로 e-트론 GT가 488km, RS가 472km다. 미국 EPA(미 환경청) 기준에 더 가까운 한국 기준은 이 수치의 70~80% 정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시스템 전압은 800V다. 아우디는 이를 통해 충전 속도를 높이고 배선에 필요한 공간과 무게를 줄여 효율화를 기했다.
외관과 실내에서도 e-트론 GT와 RS는 엔진 시대에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차이를 보인다. 전시된 RS 차량의 경우 강렬한 레드 컬러를 기반으로 하되 엠블럼과 차명 로고 등을 블랙으로 처리했다. 휠 디자인은 종래의 스포크를 홀(hole)로 재해석했는데 RS의 휠에 더 넓은 홀이 적용됐다.
제원표 상 타이어는 e-트론 GT가 전륜 단면폭 225㎜, 편평비 55%, 19인치, 후륜은 275㎜, 45%, 19인치이나 전시 차량에는 20인치 휠이 적용돼 있었고 피렐리 제품이었다. RS의 경우에는 제원 상 전륜이 245㎜, 45%, 20인치, 후륜이 285㎜, 40%, 20인치이지만, 전시 차량의 경우에는 전륜 단면폭만 265㎜인 굿 이어사의 이글 F1이었다. 아무래도 출시 사양의 차가 아니므로 타이어는 참고 사항이겠지만, 생각보다 장착할 수 있는 타이어의 범위가 넓다는 것을 보여 준다.
고성능차의 환경 원죄,
지속 가능성으로 죄 사함을
엔진 시대와 전기차 시대의 가장 확연한 차이점이라면 성능이 반드시 환경 파괴의 원죄와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 희토류인 리튬을 발굴하고 유통하는 과정 등에도 문제는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동력 기관의 이산화탄소 배출량만을 따지지 않고 제품의 전 주기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따지는 웰 투 휠(Well-to-Wheel)이라든가 탱크 투 휠(Tank-to-Wheel)이라는 개념도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