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넬로 현지 시간으로 6월 24일 오후 2시 30분, 페라리는 자사 최초의 V6 온로드 머신인 296 GTB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시스템은 합산 출력 830ps를 발휘하며 일상 주행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다이내믹한 주행 모두에서 운전의 즐거움(fun behind the wheel)을 보장한다고 페라리 측은 전했다. 해당 머신의 면모를 간략히 정리해보았다.
리틀 V12,
페라리 내연기관의 새 장 V6
전통주의자들에게 서운한 일일 수 있겠지만 페라리는 초고가 스포츠카 브랜드 시장에서 가장 발빠르게 시대 변화에 부응하고 있다. 물론 V8과 V12의 전통도 고객 니즈에 대응해 유지하는 멀티 트랙 전략이다.
296GTB의 V6 내연기관 엔진의 뱅크각은 120°다. 무게 중심을 한껏 낮출 수 있는 구조다. 1961년 포뮬러 원에서 페라리에 컨스트럭터 타이틀을 가져온 156 F1이 120° V6 엔진이었다. 넓은 구조 덕분에 뱅크 사이에 터보 차저를 장착할 수 있었는데, 이는 페라리 엔진 아키텍처로서는 처음이다. 120°의 뱅크각을 구현하기 위해 주괴(鑄塊, 주물 덩어리)를 1차적으로 단조 가공하고 이를 비튼 다음 심질화 열처리(높은 하중에 대한 내성 보장), 가공 및 밸런싱 처리를 가했다. 크랭크샤프트는 내열성과 내피로도가 우수한 질화강(nitrided steel)을 적용했으며, 저널 구조에 따른 신형 V6 엔진의 점화 순서는 1-6-3-4-2-5다.
엔진의 배기량은 2,992cc로 최고 출력은 663ps(8,000rpm)에 달한다. 최대 토크는 75.4kg·m(6,250rpm)이다. 엔진 내경이 88㎜, 행정 거리가 82㎜로 거의 스퀘어에 가깝지만 어쨌든 고회전에 용이한 숏스트로크 타입이다. 리터 당 출력이 221ps를 넘어가는데, 해당 항목에서 부가티 베이론을 넘어섰다고 하는 메르세데스 AMG의 2.0리터 엔진 그 이상의 수치다.
이 엔진은 구조적으로 완전히 새롭다. 엔진 외부 지지대를 제거하고 합금 비율을 조절해, 9.4:1의 압력을 견디면서도 무게를 덜어낼 수 있도록 실린더 블록을 재설계했다. 또한 연소실에 공기가 도달하는 거리를 줄이고 실린더 뱅크별 전용 타이밍 체인을 적용했으며 350바의 고압 연료 분사 시스템을 통해 연소 속도를 높였다. SF90 스트라달레에 적용된 기술이다.
흡기 총량을 제어하는 플레넘은 V8, V12와 달리 뱅크 중앙이 아닌 실린더 헤드쪽에 스로틀 밸브 지지대와 통합하여 장착됐다. 덕분에 엔진 중량은 낮아지고 공기가 연소실에 도달하는 거리는 짤아졌다. 사운드와 출력에 모두 관여하는 배기 매니폴드와 촉매 하우징은 니켈강 합금인 Inconel®로 100% 제작되어 배기관의 무게를 줄이고 고온 내성을 증가시켰다.
이쯤 되면 사운드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페라리 측은, 개발 단계에서 이 엔진에 대해 ‘피콜로 V12(리틀 V12’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전했다. 대칭적 점화 순서와 동일한 길이의 배기 매니폴드는 외부 단일 배기 라인과 강력한 압력파를 발생시키며 덕분에 페라리 고회전 엔진 특유의 배음이 살아 있는 고주파 사운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컴팩트 하이브리드 유닛
296 GTB 파워트레인에서 또 하나의 핵심적 존재인 구동 모터는 122kW(167ps)의 최고 출력과 32.5kg·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한다. 포뮬러 원 머신 적용기술인 MGU-K(Motor Generator Unit, Kinetic)를 적용하였으며 TMA(Transition Manager Actuator)를 통해 엔진과의 합산 출력 830ps를 완성한다. TMA는 전기에서 하이브리드/ICE 모드로, 그리고 그 반대로 매우 빠른 정적·동적 전환을 가능케하여 부드럽고 점진적인 토크를 보장한다는 것이 페라리 측의 설명이다.
모터 구조는 듀얼 로터 싱글 스테이터 방식으로, 세로 배치된 8단 DCT와 V6 엔진의 결합 길이를 짧게 한다. 이는 296 GTB의 휠베이스를 2,600㎜로 제한하는 데 기여했다. 고전압 배터리의 용량은 7.45kWh이며 렬로 연결된 80개의 셀을 포함한 셀 모듈을 사용한다.
이러한 합산 시스템을 기반으로 0→100km/h 가속은 2.9초만에, 200km/h 도달까지는 7.3초에 끝낸다. 피오라노 서킷 랩타임은 1분 21초다.
바람을 가르는 스타일링,
공력과 운동성능을 잡다
296 GTB의 전장은 4,565㎜, 휠베이스는 2,600㎜, 전폭은 1,958㎜, 전고는 1,187㎜이다. 전륜 트랙은 1,665㎜, 후륜 트랙이 1,632㎜다. 지난 10년간 페라리에서 선보인 베를리네타 중 가장 컴팩트한 사이즈다. 전체적으로 이미지가 매우 깨끗하고 군더더기 없다. 마치 와키자시(사무라이들이 차는 칼 중 짧은 것)를 연상케 한다. 그만큼 전체적으로 차의 선이 예리한데 이는 이 차가 품은 V6 엔진의 특징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유려한 베를리네타 패스트백 구조를 채택하는 대신, 짧은 휠베이스와 더불어 근육질의 날개, 바이저 모양의 윈드스크린, 강인한 인상의 플라잉 버트리스, 새로운 형태의 수직 리어 스크린을 결합해 독창적인 외관을 완성했다. 이는 외관과 실내의 디자인적 가치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킨다.
물론 레퍼런스는 있다. 1960년대 페라리의 간결함과 기능성이 그것이라 할 수 있는데, 1963년도의 250 LM의 물결 모양 차체와 B 필러 디자인, 공기 흡입구가 장착된 윙의 구조 등이 그 사례다. 또한 측면 창문으로 휘어지는 바이저 모양(visor-style)의 앞유리는 488 GTB의 일본 전용 원 오프 J50과도 닮아 있다. 헤드라이트는 과거 ‘눈물방울’ 타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이다. 덕분에 LED DRL(주간주행등)과 공기 흡입구가 자연스럽게 어울린 형태가 됐다.
후미 디자인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테일 라이트가 꺼지면 마치 블랙 스크린처럼 보이는 캄테일(Kamm tail)이다. 테일라이트가 켜지면, 라이트 선 두 개가 후면의 양 쪽에 나타나는 방식이다.
페라리의 디자인은 당연히 공력 성능 및 운동성에 기여한다. 특히 296 GTB는 공력 성능을 주행 중 얻어지는 요행이 아닌 능동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물리력으로 접근한 결과물이다. 아세토 피오라노 패키지를 선택하면 라 페라리에서 영감받은 후미 스포일러가 적용되는데 250km/h의 속력에서 최대 360kg의 다운 포스가 후륜에 생성되어 안정적인 마찰력을 발휘한다.
브레이크 캘리퍼 냉각 장치는 SF90 스트라달레에 적용된 에어로 캘리퍼를 중심으로 개발됐다. 주물에 통합된 환기 덕트를 통해 주행 시 들어오는 바람을 보다 정확하게 브레이크로 인도한다. DRL 바로 아래의 내부 섹션에서, 구멍(aperture)이 섀시 스트럿(chassis strut)과 평행하게 나아가는 덕트를 통해 윙을 휠아치에 연결하여 브레이크에 찬 공기를 공급하는 구조다.
차체 하부는 부분적으로 한계치에 가까울 정도로 낮췄다. 차량 하부를 흐르는 공기가 균일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해 어떤 다이내믹한 주행 조건에서도 차량 제어가 쉽도록 했다.
296 GTB는 기존 미드-리어 엔진의 베를리네타보다 휠베이스가 50㎜ 정도 짧지만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했으므로 건조 중량이 1,470kg으로 아주 가벼운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섀시 시스템이 적용됐다. 유압 및 전자 시스템을 혼합해 사용하는 신형 전자식 브레이크 장치(brake-by-wire unit), 사이드 슬립 컨트롤(SSC) 시스템의 그립력 추정 장치(grip estimator) 등이 적용된다. 참고로 트랙 주행 시 그립 추정 속도는 이전보다 35% 더 빨라졌다는 것이 페라리 측의 설명이다.
아세토 피오라노 패키지를 선택하면 특수 GT 경주용 멀티매틱 쇼크 업소버(Multimatic shock absorber), 10 kg의 추가 다운포스를 발생시키는 프론트 범퍼의 하이 다운포스 탄소 섬유 부품, Lexan®의 리어 스크린이 적용된다. 또한 중량을 중량을 15 kg까지 줄일 수 있는 초경량 Lexan® 리어 스크린과 탁월한 그립력으로 트랙 사용에 적합한 미쉐린 스포츠 Cup2R 고성능 타이어도 적용된다.
제동 성능도 인상적이다. F8 트리뷰토와 비교하여 296 GTB의 200-0 km/h 제동 거리는 8.8% 감소했으며 같은 속도에서의 반복 제동 효율 역시 24% 개선되었다.
페라리의 2021년 행보는 무척 공격적이다. 지난 5월 공개한 812 콤페티치오네, 콤페티치오네 A 이후 두 달이 되지 않은 시점에 내보이는 야심적 신차다. COVID-19 팬데믹으로 2019년 대비 2020년 영업 이익은 3억 600만 유로(한화 약 4,124억 원)이 줄어드는 아픔을 겪었다. 아무래도 이탈리아가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은 까닭을 무시할 수 없다. 페라리는 2021년 백신 보급 등으로 회복되는 세계 경제와 재개된 모터스포츠 및 부유층 시장을 노려 확실한 회복세를 이루겠다는 복안이다. 부자들의 지갑을 확실히 열 만한 신상이 절실하고, 그 절실함이 신차로 이어지는 셈이다.
예상 출시 시점은 2022년 초이며, 시작 가격은 26만 9,000유로(약 3억 6,250만 원), 아세토 피오라노 패키지는 30만 2,000유로(4억 707만 원)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