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는 2019년부터 침체에 침체를 거듭했습니다. 2021년 하반기에는 월 300대를 채 찍지 못한 달도 있었습니다. 랜드로버 디펜더, 레인지로버 벨라 등 아이코닉한 SUV가 나섰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나락은 깊어 보였습니다.
사라져가는 대배기량 V8 향수
확실히 응답했다 |
추락하던 이 브랜드를 단숨에 끌어올린 것은 역시 브랜드의 플래그십이자 럭셔리 SUV의 원조 격인 9세대 올 뉴 레인지로버였습니다.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 측에 따르면 2021년 11월 24일 사전 계약을 시작한 지 3개월만의 일입니다. 가격대가 1억 9,687만 원부터 2억 2,247만 원까지로 결코 만만하지 않은데 이런 성과를 거둔 것은 현재 자동차 시장 전체의 고급 지향 특히 수입차에서는 최상위 클래스 지향이라는 흐름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여기에 레인지로버만이 줄 수 있는 감성을 확실하게 구현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바로 대배기량 엔진인데요. 3.0리터 직렬 6기통 디젤 엔진을 장착한 D350과 V8 트윈터보(병렬식 트윈스크롤 터보×2) 엔진을 장착한 P530 중 후자의 계약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물론 많은 마니아들이 원하는 자연흡기는 아닙니다만, 최고 출력 530ps, 최대 토크 76.5kg·m의 파워로 새로운 감각을 전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배기량 대비 출력이 조금 여유롭게 설정됐는데, 그만큼 강력한 힘에도 여유와 부드러움을 원하는 고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D350은 최고 출력 350ps, 최대 토크 71.4kg·m를 발휘하며 48V 기반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적용돼 있습니다.
한눈에 드러나는 차별성
그 자체로 아이콘 |
파워트레인도 파워트레인이지만 아무래도 인기의 비결에 디자인을 빼놓을 순 없겠습니다. 모순되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부드러운 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신형 레인지로버에서는, 레인지로버 벨라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위풍당당한 오프로더 감성의 전체적 틀은 유지하면서도 모던한 감각을 더한 이 차의 ‘모던 헤리티지’는 바로 제리 맥거번이 레인지로버 벨라를 선보일 때 했던 말이죠. 그리고 그는 이 디자인 방식이 향후 레인지로버 라인업 디자인의 중요한 키가 될 것이라 예고했습니다.
후면부의 히든–언틸–릿 라이팅(Hidden-until-lit Lighting) 기술이 적용된 글로스 블랙(Gloss Black) 패널 수직형 테일 라이트를 장착했습니다. 히든 언틸 릿 방식은 레인지로버의 스티어링휠에 적용된 컨트롤러처럼, 암전 상태이다가 터치를 통해 특정 기능 그래픽이 표시되는 방식입니다. 이로 인해 등화류의 표면을 훨씬 깨끗하게 만들 수 있어, 이음매를 최소화한 신형 레인지로버의 디자인 감각에 부응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레인지로버 특유의 품격 있는 시트는 인체공학을 통해 업그레이드됐습니다. 세미 아닐린 시트, 마이크로 메탈 인레이가 적용된 우드 베니어 등은 가구와 같은 인상을 줍니다. 5인승 모델에는 이그제큐티브 클래스 컴포트 리어 시트(Executive Class Comfort Rear Seat)가 적용되는데, 전동식으로 전개되는 암레스트에 탑재된 8인치 터치스크린을 활용해 핫스톤 마사지, 발받침 열선 등이 포함됩니다.
7인승 모델의 경우 3열 시트에 864㎜의 레그룸을 확보하고 앞좌석 대비 41㎜ 더 높게 설계한 스태디움 시트를 배치했습니다. SUV임에도 쇼퍼드리븐의 성격을 갖춘 것이죠. 이번 레인지로버는 2,997㎜의 스탠다드 휠베이스와 3,197㎜㎜의 롱 휠베이스 두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첨단화한 품격,
1.6kW 메리디안 사운드+13.1인치 터치 스크린 |
레인지로버 하면 오디오죠. 1,600W 메리디안 시그니처 사운드 시스템(Meridian Signature Sound System)를 적용하고 실내로 유입되는 소음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세계 최초로 적용된 헤드레스트 내장형 스피커를 통해 반주파를 생성해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3세대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시스템(Active Noise Cancellation)을 더했습니다.
센터페시아에는 역대 최대 크기인 13.1인치 터치스크린이 적용됩니다. 재규어랜드로버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PIVI는 LG 전자와의 협업을 통해 PIVI 프로로 거듭났는데, 스마트폰과 유사한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장점입니다. 레인지로버 벨라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PIVI의 장점은, 예쁘게 나오기 어려운 한글 서체가 깔끔하게 구현된다는 점입니다. 영문자, 숫자, 기호도 위화감 없이 어울립니다.
여기에 T맵 내비게이션을 기본 장착해 현지화를 마쳤습니다. 또한 70개 이상의 전자 모듈에 개별적인 SOTA(Software-Over-The-Air) 업데이트를 지원해 서비스센터를 방문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물론 다른 일로 서비스센터를 찾아야 할 일은 많겠지만요. 재규어랜드로버는 고질적인 A/S로 인해 심각한 고객 이탈을 겪은 만큼 이 부분에 대해 확실한 개선을 진행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한국 자동차 시장 소비자들을 보면, 수입차를 선택할 때의 심리적 임계점이 매우 높아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입차가 그만큼 대중화되면서 결국 차별화와 품위를 만들어내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냉정하게 따지게 된 거죠. 일상에서의 불편을 참으며 견디기에, 재규어랜드로버라는 브랜드 가치가 그 임계점 아래로 떨어져버렸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레인지로버는 다르다는 걸 입증했습니다. 레인지로버 정도면 그 어떤 불편이 있더라도 값을 치를 수 있다는 부자들이 존재하는 것이죠. 물론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도 심기일전을 다짐했으니, 이번 9세대 레인지로버가 향후 멋진 라인업에 서비스까지 훌륭한 브랜드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바라 봅니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