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가 4년 만의 신차 ‘토레스’를 7월 5일 공식 출시했습니다. 콘셉트카인 J100 시기부터 기대와 우려를 한 몸에 받았던 토레스는, 우선 시작이 좋습니다. 정교한 홍보대행을 진행할 수 있는 에이전시도 없이 내부 인력의 열정과 노력만으로 근근이 홍보활동을 이어 왔는데, 공식 출시 행사를 인천 영종도의 네스트 호텔에서 갖는 등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사전 계약도 3만 대에 달합니다. 차가 뜨니 시들했던 인수전도 달아올랐다는 타이틀의 기사도 보입니다. 큰 연관성은 없는 건이지만 모두가 한마음이 돼 ‘열일’하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상태가 어찌 되었든 제조기업이 하나 넘어지면 파급 효과를 피할 수 없는 매체들의 박애와 동업자 정신도 엿보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듭니다. 과연 라인업도 다양하지 않은 이 차 하나에, 쌍용차의 약 5,000명, 340여개사 협력업체의 16만 명 임직원의 미래를 걸어도 될까요?
기존 경쟁자의 출고 적체는 호기
잘 되면 티볼리
토레스는 전장 4,700㎜, 휠베이스 2,680㎜의 준중형급 SUV입니다. 현대기아의 경쟁자들이 너무 덩치를 키워서 그렇지 원래 준중형의 사이즈로 이 정도가 적당한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무게 중심이 높은 장르임을 감안하면 차체가 큰 것이 도움이 되진 않습니다. 그래도 토레스는 동급 경쟁 차종 대비 무겁던 쌍용차의 약점을 극복했습니다. 1.5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을 기준으로 전륜 구동인 T5와 4륜 구동인 T7이 있는데 각각 공차 중량은 1,520kg, 1,610kg 정도입니다. 동급인 기아의 스포티지와 거의 대등합니다. 차체의 78%에 고장력 강판(340Mpa 이상)을 사용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1.5리터(1,497cc) 가솔린 터보 엔진의 최고 출력은 170ps(4,000rpm), 최대 토크는 28.6kg∙m(1,500~2,500rpm)입니다. 동급 배기량 엔진을 장착한 티볼리보다 최고 출력이 약간 높고 도달 시점도 1,000rpm 빠릅니다. 최대 토크는 티볼리의 수동변속기 기종과 동일하나 최대 토크 발휘 시점이 다소 일찍 끝납니다. 여기에 컴팩트한 유닛과 가벼운 무게, 빠른 응답성이 장점인 아이신 6단 자동변속기를 결합했는데, 실용 영역에서만 최대토크를 발휘해 연비를 개선하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복합 연비는 전륜구동 18인치 휠 기준 11.1km/L, 4륜 구동 18인치 휠 기준 10.2km/L입니다. 연비를 별로 기대할 수 있는 파워트레인은 아니므로 큰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유가를 생각한다면 조금 망설여질 여지는 있습니다. 이 차를 선택하는 이들은 경제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일 공산이 크다면 더욱 그러할 겁니다.
다만 경쟁 차종들의 출고 지연은 호재입니다. 실연비가 더 잘 나온다는 기아 스포티지의 2023년식 모델이 곧 나오지만 출고에 1년 정도를 기다려야 합니다. 현대차 투싼도 마찬가지입니다. 토레스의 가격대는 T5가 2,740만 원, T7 3,020만 원인데 이 정도를 염두에 두었던 소비자들이 스포티지나 투싼의 대안으로 수입차를 선택할 확률은 낮습니다. 좋은 시기와 운을 만나는 것도 실력입니다.
쌍용이 시기를 잘 만나 성공시킨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티볼리입니다. 경쟁 브랜드들이 준중형 아래급 SUV를 내놓을까 말까를 고민하던 사이 출시한 티볼리는 한때 동급에서 25%에 달하는 점유율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티볼리의 운은 지속적이지 않고 향후로도 그렇지 못합니다. 지금도 한 달에 1,300대 정도는 팔리고 있지만 기아 셀토스가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공개한 시점이라 다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토레스가 티볼리의 사례에서 성공 모델만 살려갈 수 있을까요? 거기엔 다음과 같은 과제가 있습니다.
부지 개발 호재에만 침 흘리는 인수희망자들
토레스의 가치 바로 봐줄 ‘투자자’는 없나
이미 파다하게 퍼져 있는 이야기지만 인수자들 대부분이 욕심내는 건 평택의 쌍용차 생산시설 부지입니다. 차를 팔아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쌍용차를 인수한 후 공장을 이전하고 여기에 종합 부동산 단지를 건설했을 때 취할 수 있는 먹거리가 더 많다는 계산이죠. 절차는 필요하지만 그 이익이 조 단위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미 빌미는 쌍용차가 준 상태입니다. 2021년 7월, 쌍용차는 평택시와 ‘평택 공장 이전∙개발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인수에 실패한 에디슨 모터스가 이를 활용해 아파트를 짓고 운영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그럴듯한 계획도 제시했죠. 이미 평택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캠퍼스 신설, 현대모비스의 투자 등 국내 대기업은 물론 국가적인 투자도 몰리면서 부동산 가치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통상 ‘공장 부지’ ‘공단’ 하면 나쁜 주거환경의 대표로 생각됐지만 요즘의 이러한 산업들은 다릅니다. 이미 돈 있는 사람들의 눈은 평택에 몰려 있습니다.
이미 상반기부터 인수희망자들이 부동산 가치만 바라본다는 지적은 이어져 왔습니다. 아무리 투자라지만 제조업에 ‘1’은 커녕 ‘0.0000001’의 식견도 없을, 집안 단속도 못 하는 모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컨소시엄을 형성해 이 시장 어귀를 기웃거리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눈에 어림잡아 18만 명에 가까운 쌍용차 임직원 및 관계사의 존망은 관심사이기 어려울 겁니다.
하나같이 비전은커녕 내일의 계획도 없이 부동산 개발 이익에 눈먼 이들에게, 토레스의 초기 성공은 보기 좋은 굿판이었을 겁니다. 인수전에만 성공하면 토레스의 초기 효과 뒤에 숨어 이 금싸라기 부지의 이익을 빨리 실현할 계획에 몰두할 공산이 큽니다. 그러려면 굿판이 성대해야겠죠. 토레스를 활용한 다양한 대 미디어 활동은 전례 없이 활발해지겠지만 실질적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부품 수급이나 대처, 해가 지나면서의 사양 업데이트 등은 지지부진해지는 그림에 대한 혐의를 지울 수 없습니다. 원래 허주(잡신)를 맞아들이는 굿이 더 시끄러운 법입니다.
물론 인수 기업들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줄 수 있을 단숨에 벌이지는 못할 것이란 낙관적 전망도 있습니다.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사건으로 비화되는 걸 정치권이 보고 있지도 않겠죠. 하지만 그런 것은 인수자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시키는 속도를 늦출 뿐 막진 못할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토레스가 가진 디자인의 오리지낼러티를 운운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일 수도 있습니다. 지구 땅끝에서 끌어온 미사여구로 치장한들 여타 오프로드 브랜드들의 최신 스타일을 적절히 섞어 내놨다는 평은 피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탓할 수 없는 것은 누구도 제대로 이 기업을 지켜봐주지 않는 난맥과 혼탁함 속에서 이뤄낸 결과물이 토레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적당한 크기의 차에 적재하기에, 쌍용차의 미래란 너무 무거운 짐입니다. 아무리 견인 능력이 좋은 쌍용의 섀시 철학이 담긴 차라 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무게를 혼자 지기엔 너무 약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토레스가 그렇게 잘 나왔다는데, 사도 될까?’라고 물으면, ‘가격은 괜찮다’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습니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