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공장 없는 반도체 기업에 투자한다고?

세계 경제나 주식 투자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팹리스(fabless) 반도체에 대해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생산(fabrification) 없이(-less) 설계만 하는 반도체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웨이퍼 생산, 패키징, 테스트 등은 모두 외주로 진행되며, 외주를 통해 생산이 완료된 칩의 소유권이나 영업권은 모두 가지는 기업입니다.  설계만 하므로 디자인하우스라고도 불립니다. 즉 최고 브레인들이 기술로 브랜드 소유권을 만드는 형태의 반도체 기업인 것이죠. 비대한 조직을 버리고 급변하는 반도체 생태계 속에서 최적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인력, 기술 중심 스타트업으로, 세계 굴지의 기업 출신들이 팹리스 기업을 차리고 있습니다. 

2022년 설립된 보스 반도체(BOS Semiconductor)도 그런 팹리스 반도체 기업입니다. 전 삼성전자 박재홍 부사장이 설립한 이 회사는 자율주행 SOC, HPC(Mega-MCU). Gateway SOC와 같은 기술을 시작으로 한 자동차 산업의 혁신을 목표로 설립된 스타트업입니다. 박재홍 부사장 외에도 임경묵 최고 기술 책임 등 IT계에서 존재감이 대단한 ‘인물’들로 통하는 이들이 모인 집단이죠. 

현대차그룹은 스타트업 투자를 위해 설립한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인 제로원(ZERO1NE)의 2호 펀드를 통해 보스 반도체에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제로원 2호 펀드는 지난해 2월 현대차, 기아, 현대차증권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와 협력사가 출자하고 산업은행, 신한은행이 투자자로 참여해 조성된 기금입니다. 미래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 시너지를 기대한 결정입니다. 미래의 자동차는 반도체가 곧 파워트레인의 위치를 가져갈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대차그룹, 공장 없는 반도체 기업에 투자한다고?
뒷줄 왼쪽부터) 보스반도체 임경묵 최고기술책임자, 박재홍 대표, 장연호 최고운영책임자 등 임직원들이 판교 실리콘파크에 위치한 보스반도체 사무실에서 기념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현대차그룹 이노베이션담당 지영조 사장은 “보스반도체는 현대차그룹이 그리고 있는 미래 차량용 반도체 전략에서 중요한 퍼즐 조각 중 하나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 보스반도체와 협력을 지속하는 한편 다른 유망한 스타트업에 대해서도 투자하고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팹리스 반도체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관심은 다소 늦은 바가 있습니다. 중국의 팹리스 시장은 2021년 기준으로도 2,800개를 넘습니다. 중국 시장에 진출했던 한국 대기업들이 중국의  기술 내재화로 갈수록 점유율을 잃어가는 가운데, 반도체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고 결국 기술적 우위가 남아 있을 때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계산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행히 현대차그룹은 판매량 면에서 스텔란티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도 넘어설 만큼의 시장 장악력을 확보했습니다. 특히 800V 아키텍처를 가진 E-GMP 기반 전기차들이 유럽 브랜드들의 전기차들보다 한 세대는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입니다. 잘만 하면 현대는 안정적인 국내 기술 기반의 반도체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 좋고 국내 반도체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막강한 존재로 떠오른 현대의 후광효과를 기반으로 중국 기업들과 경쟁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 상황은 만만치 않습니다. 경제전문가들은 국제정치적 상황으로 인한 변화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경제 변화가 한국 산업의 기존 경쟁력에 의문을 품게 만들고 모든 것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과연 현대차의 이런 투자가 세계 경제의 새로운 흐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