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 여주 마임비전빌리지에서 공개와 함께 한국 출시를 알린 페라리의 첫 4도어 4인승 자동차 ‘푸로산게(Purosangue)’는 V12의 살아 있는 순혈(throughbred)의 심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글로벌 공개가 9월 13일, 약 5주 만에 한국을 찾았고 아시아 최초입니다. 거의 긴급작전급의 도착이죠. 실물로 본 이 차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를 정리해드립니다.
4도어 베를리네타에 대한
글로벌 부호들의 요구
페라리의 다른 차들도 그렇지만 푸로산게도 사전 계약이 이미 끝난 차입니다. 돈이 있어도 없어도 못 사는 것은 마찬가지다 보니 수백억대 부자와 가난한 기자는 일시적으로나마 동등해지죠. 물론 부자들은 ‘아 그럼 계약취소되는 거 하나 사지’라고 여유있게 말하겠지만요.
페라리 최초의 SUV라는 설왕설래와 달리, 페라리는 공식 보도자료에서조차 ‘SUV’라는 키워드를 ‘소위 SUV’ 정도로 축약해서 괄호에 넣어버렸습니다. 이를 통해 ‘페라리도 SUV 열풍을 이기지 못했다’는 평가를 거부한 겁니다. 대신 4도어 4인승의 GT 아키텍처라는 말을 사용하며 어렵게 풀었습니다.
사실 푸로산게의 탄생은 미국 부호들의 욕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2+2 베를리네타의 감각을 조금 더 여유로운 미국 부자들의 감성에 맞춰서 만든 것이죠. 미국 부자들의 수요는 ‘쿠페=2도어’라는 정의를 이미 15년 전에 깨뜨린 바 있고 메르세데스 벤츠의 CLS와 포르쉐의 파나메라가 그것입니다. 페라리는 자존심이 강하지만 고객들의 요구에는 소프트합니다. 4도어 4인승 베를리네타라는 식의 우회적 표현은 자존심과 실리를 모두 지킨 그들만의 표현 방식이랄 수 있겠습니다.
사실 세계 경제의 측면에서 미국 부자들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는 중입니다. ‘킹달러’는 미국에서 새로운 부자들의 탄생을 예고하고있으며 역사의 반복이기도 합니다. 원유 결제를 달러로 규정했던 1970년대 중반, 아시아 경제가 무너지던 1998년, 2008년 등 달러가 초강세였던 시대에는 어김없이 미국의 부자 수가 늘어났습니다. 실제로 며칠 전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금리 때문에 못 살겠다, 미국 너네도 그러다가 다 죽어’라는 아우성에, 미국 경제는 괜찮으니까 너네들 걱정이나 하라’고 했죠. 그것도 아이스크림을 아주 맛있게 드시면서요. 그 모습을 보며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급하게 먹은 듯한 두통을 느낀 분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거듭 한국의 페라리 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사실이나, 푸로산게를 자주 보려면 미국 부자들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 빠른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냉정하게 지난 십여년 간, 미국 외 시장에서 페라리를 살 수 있을 정도의 부자들이 많아진 것은 글로벌 저금리와 이로 인한 M&A 활성화, 그 수혜를 본 벼락부자의 탄생이 컸죠. 저금리 시대에 모든 것을 주었던 달러는, 이제 주었던 것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812의 심장, SF90의 눈매, 296의 뒤태
아무리 그래도 글로벌 공개된 지 한 달만에 완전 실차를 가져올 수 있을까? 그런 의심은 오산이었습니다. 여주 마임비전빌리지 행사장에서 이 차는 실제로 움직였습니다. 물론 쇼런은 아니고 무대에서 나오는 정도 그리고 시동을 거는 정도였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했죠. 중동, 극동 총괄 지사장이 이야기한 바, 페라리가 생각하는 스포츠카의 조건 중 하나, 감각적인 고성능 자연흡기 엔진, 페라리 V12의 사운드였습니다.
파워유닛은 812 컴페티치오네를 기반으로 합니다. 실린더 뱅크각 65º, 실린더 내경 94㎜, 스트로크 78㎜로 동일하며 강력하고도 부드러운 고회전에 유리한 조건을 가진 6.5리터(6,496cc)엔진입니다. 압축비가 13.6:1로 0.1의 차이(812 컴페티치오네는 13.5:1)가 있는데, 큰 차이는 아닌 것 같지만. 812의 경우보다 낮은 6,250rpm의 엔진회전수에서 716Nm(73kg∙m)로 더 큰 토크(컴페티치오네 692Nm, 70kg∙m @7,000rpm)를 만들어내기 위한 세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공차 중량이 2,173kg인 점을 감안한 세팅입니다. 그럼에도 0→100km/h가 3.3초, 200km/h까지가 10.6초란 것은 엄청난 수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