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떠난 특별한 운전자, ‘더 카즈’의 릭 오케이섹

이번엔 자동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남자의 부고를 전한다. 이름도 심플한 그룹 더 카즈(The Cars)’를 이끈 전설적 록 뮤지션 릭 오케이섹(Ric Ocasec), 지난 9 15일 뉴욕 맨해튼의 자택에서 75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사인은 지병이었던 고혈압과 동맥 경화 등으로 인한 급성 심장마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 카즈는 1976년 결성해 1980년대 후반까지 큰 인기를 누렸던 미국 뉴웨이브 팝록의 선두주자였다. 더 카즈 활동 이후에는 프로듀서로도 활약했는데, 국내 록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미국 록 밴드 위저(Weezer)를 발굴한 프로듀서이기도 했다.

1970년대,
미국 젊은이들을 유혹했던 ‘자동차’

매우 심플한 이 록 밴드의 이름은, 당시로서 최첨단의 감각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대중교통 수단의 편의성이 떨어지는 미국에서 자동차는 중요한 생활 수단이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젊은이들의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스마트폰 정도의 가치였으니, 젊은이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데는 적격이었던 셈이다. 참고로 이 밴드명은 드러머인 데이비드 로빈슨의 아이디어였다.

더 카즈의 젊은 시절 모습(출처, 더 카즈 공식 인스타그램)

그런 밴드명답게, 음악에서도 자동차나 드라이빙의 순간을 나타내거나 은유하는 곡들이 적지 않았다. 셀프 타이틀(밴드명과 앨범명이 동일)의 데뷔작 의 수록곡인 “Good Times Roll”이라든가 두 번째 앨범 의 수록곡 “Let’s Go” 그리고 다섯 번째 앨범인 의 수록곡 “Drive” 등이 대표적이었다. 다소 무심한 듯 내뱉는 건조한 목소리와 펑크 록의 직관적 리듬, 여기에 전자음악적 요소가 묘하게 섞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냈던 그들의 음악은, 도회적인 향락 문화를 즐겼던 미국 대도시 젊은이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더 카즈의 앨범 재킷을 장식한
1970년대 대표 쿠페들

앨범의 커버 아트는 음악의 방향이나 분위기 그리고 밴드의 음악적 지향점 등의 상징을 담고 있다. 더 카즈가 발표한 7장의 정규 앨범 중 4장의 커버에도 역사적 기종이라 불릴 만한 자동차나 자동차와 연관되는 이미지가 등장했다. 데뷔 앨범에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모델이, 1980년의 3집에는 모터스포츠 경기의 종료를 알리는 체커기가 등장한다. 그러나 역시 눈길을 끄는 것은 1970년대를 주름잡은 두 대의 쿠페를 들 수 있다.

이탈리안 럭셔리 글래머, 페라리 365 GTC4

1979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인 는 원피스 수영복 타입의 망사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모델이 등장한다. 사진은 아니고 그림인데, 당시 <플레이보이>의 커버나 속지 아트웍을 담당했던 화가 알베르도 바르가스의 작품이다.

모델이 너무나 아름다워 주변의 오브제에는 별로 눈이 안 갈 수도 있지만, 모델 아래 깔린(?) 행운의 자동차는 바로 페라리의 365 GTC4. 이 자동차는 세르지오 피닌파리나의 손길이 빚어낸 것으로 유려한 선과 글래머러스한 펜더가 모델 못지 않은 볼륨감을 자랑한다. 이 자동차는 유압식 파워스티어링, 최고급 가죽 시트, 팝업식 헤드라이트 등 당시로서는 첨단, 최고급의 이미지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파워트레인으로는 페라리의 전설적 V12 4.4리터(4,390cc)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가 장착된 자동차로 최고 출력은 340ps(6,200rpm)에 달했으며 당시에 0100km/h 가속 시간이 6.2초에 불과했다. 1971~1972, 505대만 한정 생산되었던 이 자동차는 당시 가격으로도 1 5,000달러가 넘었다. 2017년 기준으로 환산했을 때 대략 9 2,000달러(한화 약 1 966만 원) 정도다.

참고로 이 앨범 커버 이미지는 2017년 더 카즈의 인스타그램에서 실사판으로 구현된 바 있다. 물론 자동차도 페라리 365 GTC 실물이다.

철저히 미국적인 쿠페, 크라이슬러 플리머스 더스터

그런가 하면 1984년 작이자 미국에서만 4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는 가장 미국적인 쿠페인 크라이슬러 사의 플리머스 더스터를 앨범의 커버로 택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자동차가 주 소재로 들어간 팝아트 작품을 선택한 것으로, 피터 필립스라는 작가의 이라는 제목의 회화작품이다.


하늘로 떠난 특별한 운전자, ‘더 카즈’의 릭 오케이섹
(1984) 앨범 재킷의 일부

그림에 등장하는 플리머스 더스터 역시 1971년에 였다. 유려한 곡선을 자랑한 페라리에 비해 한눈에 봐도 미국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직선적이고 시원시원한 디자인의 쿠페였다. 현재도 이 자동차는 미국 드래그 레이스 현장에서 애용되고 있다.


하늘로 떠난 특별한 운전자, ‘더 카즈’의 릭 오케이섹
아직도 드래그 레이스에서 활약 중인 플리머스 더스터

1969년부터 1976년까지 생산된 플리머스 더스터는 2,743의 휠베이스를 가진 비교적 경량 쿠페였다. 배기량도 3.2리터, 3.7리터, 5.2리터, 5.6리터, 5.9리터까지 있었는데 이러한 라인업은 당시 포드의 1세대 머스탱과 비슷한 것이었다. 즉 적은 배기량의 차량은 저렴하게 팔아 젊은 층을 끌어들였고 대배기량은 머슬카의 가치를 좀 더 컴팩트하게 즐기고자 하는 이들에게 어필했던 것이다.

실제 이 자동차의 이미지는 무려 5곡의 빌보드 탑10 히트곡들이 자아내는 미국적 대중문화 가치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특히 히트곡 “Hello Again”의 뮤직비디오 감독은 앤디 워홀이 맡았다. 그런데 또다른 히트곡이자 앨범 타이틀과 가장 맞아떨어지는 곡인 “Drive”에서 릭 오케이섹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베이시스트인 벤자민 오어였다. 정작 리드 싱어였던 릭 오케이섹은 다른 수확을 거두었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평생 반려자가 되는 21세 연하의 모델 폴리나 포리즈코바를 만난 것이다. 고인에겐 다소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커플은 당시 헐리우드에서 대표적인 추남미녀커플로도 유명했다.


하늘로 떠난 특별한 운전자, ‘더 카즈’의 릭 오케이섹
한 시상식에 참석한 폴리나 포리즈코바(왼쪽)과 릭 오케이섹(오른쪽, 이미지 출처 셔터스톡)

하늘로 떠난 특별한 운전자, ‘더 카즈’의 릭 오케이섹
미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기타리스트 케니 웨인 셰퍼드도 한때 이 차의 소유주로, 2007년 세마(SEMA)쇼에 출품하기도 했다

현재의 젊은이들에게는 익숙지 않겠지만 더 카즈와 릭 오케이섹은 1980년대 초반 대학가를 중심으로, 팝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대중음악 전문지 <파라노이드>의 송명하 편집장은 뉴웨이브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밴드 듀란 듀란 이전에 이미 한국에 상당한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던 밴드가 바로 더 카즈였으며 인기는 스팅의 폴리스 등에 못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예술가가 살아서 명성과 부를 다 누리고 가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격변의 시기에 한 스타일을 제시한 이들은 주목받는 만큼 그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릭 오케이섹은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운전대를 놓치지 않았다. 오케이섹 부인인 폴리나 포리즈코바에 따르면 2년 전 심혈관계통 질환 치료를 위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었으나, 일요일 아침 평온히 잠들 듯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장례는 비공개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졌다. 천국으로 차를 몰아 간 오케이섹과 포리즈코바의 슬하에는 조나단 레이븐, 올리버 두 아들이 있다.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