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의 익스플로러는 지난 몇 년간 수입 SUV 판매량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다른 세그먼트 및 체급을 종합하더라도 10위 이내다. 포드코리아는 지난 9월 16일, 6세대인 2020년형 익스플로러의 차량의 사전 계약을 시작했다. 비교적 무난히 과거의 인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최근 이 차를 두고 온라인상에서 ‘싸움붙이기’가 활발해졌다. 과연 포드의 6세대 익스플로러가 두려워해야 할 적수는 누구일까?
국산 SUV의 약진,
익스플로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전장 5,000㎜ 내외의 준대형 및 대형 SUV 시장이 양적으로 성장한 데는 2018년 말 출시된 현대자동차 팰리세이드의 역할이 컸다. 아직도 팰리세이드의 출고 적체가 6개월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전장 4,980㎜, 휠베이스 2,900㎜에 달하는 체급은 그간 국산차에 없었던 공간감을 주고, 옵션도 다양하다는 점이 인기의 비결로 보인다.
팰리세이드의 인기는 국내 SUV 시장에 몇 가지 화두를 던졌다. 특히 풀 옵션 기준으로 5,000만 원 언저리에 해당하는 가격이다. 그러면서 묘하게 국산차와 수입차의 위상을 구분짓던 대중의 심리적 기준을 흔들고 편의 사양의 다양성을 집중 강조하면서 중급 가격대의 수입 SUV 유저들을 교란시켰다. 판매량 데이터 상으로 그러한 전략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입증되기 어려운 면이 있겠으나, 수입 제조사들로서는 원치 않게 혼전에 휘말리며 이미지 손해를 피할 수 없었다. 사실 팰리세이드를 내놓은 현대차의 전략도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얼마 되지 않는 수입 대형 SUV의 판매량을 빼앗고자 한 게 아니라, 몸은 국산차에 안겨 있으면서도 여전히 수입차를 향한 유저들의 마음을 돌리고자 한 의도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여전히 잘 나가는 팰리세이드는 6세대 익스플로러가 ‘왕의 귀환’을 외치지 못하도록 막을 대항마일까? 선뜻 ‘예’라고 대답하긴 어렵다. 앞서 잠깐 언급한대로 팰리세이드는 익스플로러와 차 대 차로 경쟁할 이유도 없다. 굳이 따진다면 수입차의 브랜드 가치 흔들기 정도다.
정성적으로 접근해도 그러하다. 2017년과 2018년, 온갖차는 포드 익스플로러 오너들이 모이는 행사 <고!두!캠프(GO! DO! CAMP)>를 취재한 바 있다. 2018년의 경우 350여 대의 차량이 운집했는데, 이는 익스플로러 연간 판매량의 5~6%에 해당하는 대수다. 익스플로러 구매자들의 구매 동기, 자동차 생활을 알아보기에 적합한 수의 샘플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1가구 2차량 이상이고 익스플로러 외에도 수입 브랜드의 차량을 보유한 이들이 많았다. 경제적 사정상 1,000~1,500만 원 정도의 가격 차이를 신경쓰지 않고 익스플로러의 이미지를 산 이들이 많았다는 의미다.
최근 기아자동차도 바디 온 프레임 방식 SUV인 모하비의 디자인 변경 차종인 ‘더 마스터’를 내놓았다. 역시 현대차 팰리세이드와 비슷한 이유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렇지만 모하비 더 마스터 역시 수입 대형 SUV 오너들이 직접적인 타깃이라 하긴 어려울 것이다. 팰리세이드와 모하비, 익스플로러는 각자의 영역에서 행복을 누리면 그만인 차종일지도 모른다.
더 큰데 가격도 싸다?
또 다른 미국 SUV의 도전?
2019년 9월 중순, 한국 GM은 한국 수입차협회(KAIDA)에 쉐보레 브랜드로 정식 회원사 가입을 승인받았다. 국내 시장에서의 승부를 위해서는 다양한 신차의 투입이 필요한데 여러 가지 사정 상 미국 공장의 완성차를 수입해 팔 수 있는 활로를 보다 넓히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쉐보레는 2019 서울모터쇼에서 선보였던 핵심 차종인 픽업트럭 콜로라도와 트래버스를 출시했다.
콜로라도는 국내에 정식으로 판매되는 가솔린 엔진 픽업 트럭이 전무한 상황에서 나름대로 독보적 영역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트래버스는 기존 대형 SUV 시장에서 승부해야 한다. 이 때 경쟁 타깃을 한 단계 상위로 설정하는 것은 기본이다. 물론 쉐보레가 브랜드의 공식적인 목소리로 포드의 익스플로러를 경쟁자로 지목한 적은 없다. 그러나 쉐보레 측에 우호적으로 보이는 미디어나 자체 미디어 채널을 통해 우회적으로 대결의 그림을 만들려는 의도는 보인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쉐보레 트래버스가 내세우는 것은 익스플로러 대비 150㎜ 긴 5,200㎜의 전장, 48㎜ 더 긴 3,073㎜의 휠베이스에 기반한 적재 공간 차이와 가격이다. 사전계약을 받는 현재까지 리미티드 단일트림으로 나와 있는 포드의 2.3리터 에코부스트는 5,990만 원이다. 이에 비해 트래버스는 최저가 트림이 4,522만 원, 최상위 트림이 5,522만 원으로, 최상위 트림도 익스플로러보다 저렴하다.
그러나 잘 알려져있다시피, 포드의 익스플로러는 자사 최상급의 ADAS 시스템인 코-파일럿 360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적용돼 있다. 특히 이 패키지에는 이전보다 한층 진화된 반자율주행 시스템이 적용된다. 아직 국내 사양이 다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 기준으로는 전방 충돌 회피 조향 후 차로 복귀 조향까지도 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트래버스의 ADAS 사양은 다소 제한적이다. 물론 전방충돌 경고시스템, 차선이탈 경고 및 차선유지 보조시스템, 전방 보행자 감지 및 제동시스템 등은 갖춰져 있다. 그러나 설정해둔 속력에 따라 선행 차량과의 간격을 자동 조절하며 추종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기능은 제외되어 있다. 북미에 없는 사양도 아닌데 그러하다. 사실 최고 사양에 이 기능을 넣는다면 익스플로러와의 간격 차이는 좁혀질 가능성이 크다.
3.6리터 N/A VS. 2.3리터 에코부스트는
싸움이 안 된다?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두 차를 두고 갑론을박의 소재가 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쉐보레 트래버스는 ‘미국차다운’ 3.6리터 V6 자연흡기 엔진이 적용되었고 익스플로러에는 직렬 4기통 터보 엔진이 적용되었다는 점이 꼬투리다.
물론 자연흡기 엔진의 부드러운 구동음이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엔진 라인업이 익스플로러의 약점이려면, 이전 익스플로러에서 3.5리터 자연흡기 엔진의 비중이 높았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2.3리터 에코부스트 엔진이 250만 원 정도 비쌌음에도 더 많이 팔렸다. 익스플로러 유저들의 특성상 캐러밴이나 소형 트레일러를 장착하는 경우가 많은데, 2.3리터 에코부스트 엔진이 상대적으로 강한 초반 견인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쉐보레 트래버스의 3.6리터 V6 자연흡기 엔진은 최고 출력 314ps로 275ps인 익스플로러 에코부스트보다 강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대 토크는 익스플로러가 42.9kg∙m로 트래버스의 36.8kg∙m보다 강하다. 국내 사양의 공차 중량은 아직 공개 전이지만 미국 기준, 동일한 4륜 구동으로 조건을 설정했을 때, 트래버스는 4,403 파운드(1,997kg), 익스플로러는 4,345 파운드(1,970kg) 수준이다. 토크 1kg∙m로 견인해야 하는 하중은 익스플로러 쪽이 더 가볍다.
여기에 익스플로러는 세로 배치 후륜 구동 기반 레이아웃과 10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했다. 물론 후륜 구동 기반이 절대적으로 우월한 레이아웃이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파워트레인 부하가 크게 걸리는 대형 SUV들의 특성상, 엔진과 변속기가 바로 붙어 있는 가로배치 전륜 구동 기반의 4륜 구동보다 냉각에 유리한 점이 있다.
물론 쉐보레 트래버스는 자연흡기 엔진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열 발생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변속기도 9단으로 다단화 트렌드에 맞췄다. 터보 차저 직렬 엔진의 감각이 죽어도 싫다는 유저라면 쉐보레 트래버스를 선택하는 것이 답이다. 그러나 단순히 두 엔진의 동력 성능에 차이가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면 최소한 두 차종이 출시된 후, 시승을 해본 후에 방향을 결정해도 늦지 않다. 참고로 트래버스는 2020년에 페이스리프트 차종이 글로벌 시장에 데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브리드도 출격 대기,
그 다음을 바라보는 익스플로러
여기에 익스플로러는 차후 PHEV 기종을 국내에 투입할 예정이다. 지난 6월, 미국 현지 시승 시 경험했던 차종은 미국형의 하이브리드 차종으로 12:1의 압축비를 가진 3.3리터 가솔린 엔진과 1.5kWh 배터리, 10단 변속기를 결합한 것으로 주행 시 약 10km/L대의 연비를 구현했다. 미디어 시승회로, 차량의 다양한 면을 보기 위해 급가속과 감속을 반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수한 수치다. 참고로 한국에 투입될 하이브리드는 3.0리터 에코부스트 엔진과 13kWh대의 배터리를 결합한 유럽형 PHEV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판매량으로 직접 비교하긴 어렵지만 정성적으로나마 포드의 적수가 될 수 있었던 대형 SUV는 비교적 견고한 마니아층을 갖고 있던 혼다의 대형 SUV 파일럿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치 이슈로 인해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은 개점 휴업 상태다. 또한 2018년 판매량 면에서는 포드에 약간 뒤졌지만 상위권을 기록했던 랜드로버의 스테디셀러 고급 SUV인 디스커버리 또한 2019년 판매량 전년도 대비 반토막 수준이다. 오히려 트래버스가 등장했다 하더라도 강력한 실질 경쟁자들은 줄어든 모습이다.
물론 포드의 익스플로러는 서비스 고질병으로 제기되던 서비스와 잔고장 문제도 개선되어 가는 추세다. 현 시점으로만 놓고 보면 6세대 익스플로러의 가장 큰 경쟁자는 오히려 재고로 나올 익스플로러의 할인 적용 차량일지도 모른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