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모터스포츠 디비전인 현대모터스포츠 법인(Hyundai MotorSport Gmbh, 이하 ‘HMSG’)이 2019 시즌을 화려하게 마무리해가고 있다. 지난 13일, 현대자동차 모터스포츠 디비전의 현대 월드랠리팀이 시즌 종합 우승을 차지했고, 온로드 레이싱인 WTCR은 i30N TCR을 사용하는 레이싱팀과 드라이버가 최상위권에 올라 있다. 2012년 공식 출범 후 이렇게 뛰어난 성적을 거둔 데는 현대자동차의 모터스포츠 디비전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연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동기가 된 것은 강력한 경쟁자들이었다. 이번 콘텐츠에서 우승 후에도 여전히 현대자동차의 전의를 불태우게 할 강력한 적수들을 살펴본다.
링크 & 코 03 TCR
사이언 레이싱팀
홍콩의 불안한 정정에도 불구하고,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마카오의 기아 도심 서킷에서 진행된 2019 마카오 그랑프리는 성황리에 치러졌다. 그러나 마카오 그랑프리의 WTCR에서, 현대 i30N TCR을 사용하는 선수와 차량들은 그리 좋은 소식만을 전하지는 못했다.
토요일인 16일에 열린 레이스 1에서는 현재 드라이버 포인트 1위를 달리고 있는 노베르트 미쉘리츠(#5, BRC 현대 N 스쿼드라 코르스)가 20분 30초 452의 기록으로 2위에 올랐을 뿐 레이스 2, 3에서는 각각 10위와 12위로 부진했다. 특히 레이스 2, 3을 통틀어 i30N TCR 차량의 가장 높은 순위는 BRC 현대 N 루크오일 레이싱팀의 니키 캣츠버그(#88)의 4위였다. 패스티스트 랩을 수상한 것은 좋은 성과였지만 레이스 2, 3의 결과가 뼈아팠다.
이 때문에 노베르트 미쉘리츠는 306포인트로 2위 에스테반 게리에리(#86, ALL-INKL.COM Münnich Motorsport), 305포인트로 3위를 기록 중인 이반 뮐러(#100, Cyan Performance Lynk & Co)에게 바짝 쫓기고 있다. 2, 3위의 두 선수 중 하나가 1위를 차지해 25포인트를 획득한다고 했을 때, 노베르트 미쉘리츠는 2위 이상을 무조건 지켜내야 한다. 게리에리는 혼다의 시빅 타입 R, WTCC 챔피언 출신인 이반 뮐러는 링크 앤 코 03 TCR을 탄다. 그러나 더 위협적인 것은 이반 뮐러다. 링크 앤 코는 2018년 시즌 독주하다시피 한 i30N TCR의 발목을 요소요소에서 붙잡았다. 그 결과 팀 순위는 2위 BRC 현대 N 스쿼드라 코르스보다 72포인트나 앞서 있다. 자칫 드라이버 포인트와 팀 포인트 선두를 모두를 놓칠 수 있는 위험도 있다. 마카오 그랑프리는 2019 WTCR 일정으로 끝에서 두 번째 대회로, 마지막 대회는 12월 13일부터 15일까지 말레이시아의 세팡 서킷에서 진행된다.
i30N TCR은 2017년 10월 등장 이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이는 경쟁 자동차 제조사와 레이싱팀들이 각성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현대 i30N 역시 새로운 강자의 도전을 받게 됐다. 링크 앤 코는 볼보와 동일한 모기업인 지리 산하의 브랜드로, 링크 앤 코 03 TCR은 볼보, 전기차 디비전인 폴스타와 공유되는 CMA 플랫폼 기반 차량이다. 이 차량을 사용하는 사이언 레이싱은 과거 볼보 모터스포츠의 팩토리 팀(제조사가 운영하는 팀)으로 투어링카 분야에서 견고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팀이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링크 앤 코와 실력 있는 미케닉이 조화를 이룬 링크 앤 코 사이언 레이싱은, 2년 전 현대자동차 i30N TCR처럼 기존 강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야리스 WRC,
토요타 가주 레이싱
HMSG의 현대 월드랠리팀은 WRC에 복귀한 지 6년 만에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특히 HMSG가 기술적인 면과 드라이버 등 모든 면에 과감한 투자를 진행하고 그에 대한 보답을 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제한된 경기만 참전했지만 ‘뢰브 효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프랑스 내 WRC 인기를 끌어올린 전설, 세바스티앙 뢰브를 영입하는 등 드라이버 진용 편성에도 큰 공을 들였다. 뢰브의 영입은 경험의 전수라는 측면에서 단순히 포인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1988년생인 티에리 누빌, 1989년생인 안드레아스 미켈센 등은 뢰브의 활약을 보고 자란 세대이기도 하다.
올해 WRC에서 현대 월드랠리 팀의 활약은 독보적이었다. 2017, 2018 시즌 연속으로 준우승을 기록하며 2000년대 초반 베르나로 참여할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자랑했다. 그래서 2019 시즌은 어느 해보다 기대를 모았다. HMSG 측은 출전 차량인 i20 쿠페 WRC의 유지 보수에 있어 한층 진화된 전략을 구사했다. 특히 갈수록 중요해지는 공력 성능 분야에서는 F1 레드불 토로로쏘 등을 거친 엔지니어 등이 크게 활약했다. 덕분에 시즌 후반까지 우승 페이스를 이어갈 수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랠리가 산불로 취소되면서 현대 월드랠리팀은 최종 380 포인트로 우승할 수 있었다.
그런 현대 월드랠리팀을 시즌 내내 강하게 압박했던 것은 종합 362로 2위를 차지한 토요타 가주 레이싱 팀이다. 출전 차량은 야리스 WRC 차량으로, 일본에서 판매되고 있는 ‘비츠(Vitz)’의 글로벌 모델 기반 차량이다. 전장 4,085㎜로 4,100㎜인 i20 쿠페 WRC 차량보다 약간 짧고, 전폭은 1,875㎜로 동일하다. 최고 출력은 380ps, 공차 중량은 1,190kg으로 동일하나 i20 쿠페 WRC보다 최대 토크가 조금 낮은 43.3kg∙m 수준이다.
가주 레이싱팀은 2018시즌 WRC를 제패하는 한편 WEC(월드 내구레이스 챔피언십)을 비롯해 주요 모터스포츠 종목에서 명성에 걸맞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성적은 토요타 아키오 회장의 애정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아키오 회장은 항상 현장에서 선수를 격려할 뿐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내구레이스에 참가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그런 아키오 회장이 현대 월드랠리팀의 우승 세리머니를 보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2020년 도전자의 입장인 토요타 가주 레이싱팀은 현대 월드랠리 팀을 더욱 거칠게 압박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스포츠든 경쟁은 강한 동기가 된다. 특히 모터스포츠에서는 독기에 가까운 호승심이 없다면 포디움을 점하기 어렵다. 또한 모터스포츠에서의 순위 경쟁은 신차를 위한 기술 경쟁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양산 단계에서 알 수 없었던 문제를, 모터스포츠용 차량의 세팅과 경기에서 알아내는 경우도 왕왕 있다. 현대자동차도 과거와 달리 파워트레인의 성능과 섀시 등 주행 질감을 개선하는 데 상당한 역량을 할애하고 있다. HMSG가 강력한 호적수들과 경쟁하여 얻은 데이터가 향후 우리가 만나게 될 현대기아차의 신차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될 것인지 기대해볼 만하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