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한국 사회가 고령 인구 비중 14% 이상의 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그만큼 고령운전자 사고는 늘어나고 이에 대한 미디어의 주목도도 높다. 2019년에 보도된 사례만 해도 석가탄신일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일어난 인명 사고, 8월 부산에서의 임산부 피해 교통사고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과연 이 모든 사고의 원인이 운전자가 노인이라는 사실이며, 그들을 운전석과 격리시키는 것이 해법이기만 할까? 현상도, 해법도 너무 간단하게만 언급되고 있는 고령 운전자 사고에 대해 살펴본다.
언제부터 ‘고령’운전자가 되나?
65세는 유의, 75세는 고위험군
과연 몇 살부터를 운전의 ‘정년’이라 할 수 있을까? 최근 국민권익위가 의결한 ‘고령자 교통안전교육 운영체계 개선’안을 보면 과거 65세 이상 지원자 대상 선택이던 교육을 75세 이상 의무로 수정한 내용이 들어 있다. 이를 볼 때 행정 차원에서 사고 고위험군으로서의 고령 운전자로 보는 연령대는 75세가 기준임을 알 수 있다.
해당 자료를 보면 운전자 중 고령자의 비중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65세 이상 운전자는 2018년 기준으로 300만 명이 넘었는데, 이는 2014년 대비 48% 증가한 수치이자 전체 운전자의 10%에 육박하는 수치다. 그리고 75세 이상은 75만 6,000명에 달한다.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 발생 현황은 2018년 기준 3만 건을 넘었으며 이로 인한 사망자 수는 매년 7~800명 선으로 비슷하나 그 비율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2014년 대비로 사고 발생률은 13.8%, 사망자 수 점유율은 22.3%에 달한다.
고령운전자,
왜 운전대를 놓지 못할까?
고령 운전자 문제를 다루는 이들의 초점은 운전 면허 반납에 있다. 정부의 접근과 대다수 미디어의 인식도 비슷하다. 일본의 고령자 면허 자진반납 사례는 미담으로, 국내 지자체의 면허 반납은 실적으로 다뤄진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에는 운전대를 놓을 수 없는 이들의 사정에 대한 인식은 결여되어 있다. 고령자가 운전에 있어 고위험군이라면, 대중 교통 이용 시에는 ‘약자’라는 점도 명확히 전제되어야 한다. 75세 이상에도 운전대를 놓지 못하는 운전자는 대중교통을 타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이 모세혈관처럼 조직된 한국이라지만 서울과 수도권만 해도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한 곳이 적지 않다.
대중교통망이 가까운 곳에 거주한다 해도 고령자들이 교통 약자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2018년 행전안전부의 조사에 따르면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 중 7할이 횡단보도에서 발생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생활에서 횡단보도는 피할 수 없다. 또한 지금과 같은 겨울에는 지하철 낙상 사고도 빈번히 일어난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70대 고령자들은 10만 명 당 낙상 입원자 수가 1,750건 이상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60대 낙상 환자의 2배 수치다. 이외에 악천후나 파업으로 인한 대중교통 대란도 고령자들의 이동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무엇보다 노인에게도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한 지자체가 운전면허를 반납한 노인들에게 지역화폐를 공급한 것은 넌센스이자 전시행정적 성격이 강하다. 심지어 이 화폐는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선 사용하기 어렵다. 이는 고령자의 활동적 삶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국가적 시책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공익을 위해 운전을 포기한 고령자들의 세상을 좁히는 처사일 수도 있다.
이수 목적 교육보다
인지 향상 자가훈련 위한 프로그램 개발돼야
고령운전자가 사고를 일으키는 유형은 다양한데, 인지 기능의 저하와 반사신경의 둔화 등이 큰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도로교통공단의 교육 커리큘럼은 다음과 같다.
운전 능력 자가 진단
선별진단(선잇기 숫자, 선잇기 숫자–요일), 기초인지진단(MMSE-DS, 시계기억검사) 운전능력진단(교통표지판 변별검사, 방향표지판 기억검사, 횡방향 동체추적검사, 공간기억검사, 주의탐색검사)을 통해 고령운전자의 인지능력을 진단하고 교육적 처방을 제시
교통안전교육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현황, 고령운전자의 신체특징과 안전운전, 약물과 안전운전, 상황별 교통사고 사례 및 안전운전 방법, 보행자·자전거·이륜차 안전운전, 알아두면 유용한 도로교통법 등
해당 교육은 무료로 진행되고 있으며 도로교통공단이 지정하는 공간에서 컴퓨터를 통해 진행된다. 제한된 예산 안에서 최대한의 정밀도를 살려 계획된 이 프로그램은, 적어도 이수한 운전자가 그렇지 않은 운전자보다는 최소한의 안전 인식과 경각심을 갖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커리큘럼이 이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커리큘럼 역시 자신의 상태를 진단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그보다 교육 이수 후, 고령운전자가 틈틈이 따라할 수 있는 인지기능 자가 향상 훈련법 등을 개발해 보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전방 공간 주시 능력이 떨어진 운전자들에게는 가로 세로 동일한 수의 정사각형 칸에 무작위의 숫자를 넣어 놓고 큰 수의 순서로 혹은 작은 수의 순서로 나열하기 등을 게임화해 보급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는 일본 초등학생 야구선수들이 타격 능력 향상을 위한 공간 인지 능력 향상 훈련법인데, 전방에서 빠르게 접근하는 물체의 위치를 단박에 알아차리는 데 도움이 된다. 고령운전자들 역시 이런 게임과 같은 반복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공간 인지 능력을 높인다면 운전뿐만 아니라 일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고령운전자의 ADAS 옵션 차량
구매 지원∙할인 등 필요
고령운전자가 일으키는 사고들은 적어도 3년 이내에 출시된 최신 차량들의 ADAS(지능형 운전자 보조 시스템) 기능이라면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다. 물론 ADAS가 만능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최소한의 피해 경감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령임에도 자가용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운전자라면, 차량 구입 시 ADAS 장착 차량을 구입하도록 유도하는 행정적 차원의 보조나 기업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세계 각국 정부에서는 전방충돌방지 보조 시스템 장착의 의무화를 추진 중이기도 한 만큼 한국 정부에서도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대략의 방법으로는 고령자가 ADAS가 없는 노후 차량을 ADAS 장착 차종으로 바꿀 때의 보조금 지급이라든가 생계형 소형 트럭 구입자가 고령자일 경우 ADAS 옵션의 할인 지원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최근 국내 소형 상용차의 쌍벽이라 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 포터Ⅱ와 기아차 봉고Ⅲ 트럭은 중급 트림 이상부터 이를 기본으로 적용하고 있고, 그 하위 트림에서는 30만 원대의 옵션으로 적용하고 있다.
애프터마켓형 ADAS 유닛의 경우, 국가나 지자체가 일정 수량을 구입하고 고령운전자들의 차량에장착을 지원하거나 혹은 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노후 경유차용 디젤 미립자 필터(DPF) 시스템의 장착을 통해 절차적 선례는 마련되어 있다. 결국 정부와 관계기관의 의지가 중요하다. 여기에 고령운전자 교통안전 교육 역시 ADAS 기능의 활용과 작동 조건, 설정법 등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현재 과밀화된 도시의 교통 시스템 체계 상 고령운전자의 사고 유발 위험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해결책이 노인들의 운전 포기 권장 혹은 종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령운전자들의 부주의와 조작실수로 인한 인명 사고를 겪은 이들을 위해서라도, 기술과 시스템을 통한 안전의 확보가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자 위로일 것이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