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가 그린 시대별 ‘성공’의 이미지는? 현대차 그랜저 광고 분석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 그랜저 IG의 페이스리프트인 더 뉴 그랜저가 2019년 11월 공식 출시됐다. 바뀐 디자인, 페이스리프트이면서도 확장된 제원만큼 더 뉴 그랜저의 광고도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더 뉴 그랜저 광고는 성공이라는 주제로 5가지 버전이 존재하며 프리 런칭 광고는 유튜브에서 8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더 뉴 그랜저와 과거에 나왔던 그랜저의 광고들을 분석해보았다.

부유층을 위한
‘고오급’ 세단 이미지의 강조

1986년 일명 ‘각그랜저’로 통하는 1세대만 해도 광고의 주요 매체는 TV가 아닌 신문이었다. TV 광고액이 신문 광고액을 추월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그래서 1세대 그랜저의 광고는 주요 기능을 슬로건으로 풀었다.

‘고급 승용차의 최고봉’, ‘한국 제일의 승용차’ 등 플래그십의 상징성과 MPI 엔진과 국내 최초로 적용된 오토 에어컨 시스템 등 기술적 선진성을 문구로 풀었다. 특히 강조한 점은 당시 국산차에서 보기 힘든 첨단 편의 장비였다. 이러한 광고의 효과 때문에 1세대 그랜저는 대우차의 플래그십인 로얄살롱을 밀어내고 대형차 시장을 장악했다.

그랜저의 본격적인 TV 광고는 1992년 등장한 2세대부터다. 광고의 내용은 누가 봐도 회장님으로 보이는 중년의 신사 두 명이 길을 걷고 있는 모습과 함께 그 뒤로 2세대 그랜저가 천천히 따라가는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명차가 있다.’라는 내레이션이과 함께 마지막에는 ‘최고를 지향한다’는 슬로건이 나온다. 1세대와 마찬가지로 중후함, 플래그십을 강조했다. ’뉴 그랜저’로 명명된 2세대 그랜저는 3.5리터 엔진을 도입해 당시 국산 승용차로서는 보기 힘든 최대 배기량과 225hp라는 최고출력을 자랑했다.

중산층+로의 포지션 변경,
그리고 새로운 이미지의 시작

3세대 그랜저 XG는 조금 달랐다. 지금까지의 쇼퍼 드리븐 이미지를 완전히 부수고 새롭게 오너 드리븐 이미지를 내세웠다. ‘회장님’이 탈 만한 자동차로는 다이너스티와 에쿠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요 고객층도 과거와 같은 최상위의 부유층이라기보다는 상위권 중산층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키 컬러 역시 검은색이 아닌 흰색, 금색 등 보다 밝은 컬러가 선택됐다. 슬로건도 ‘큰 남자의 여유’로 정하며 성공의 정점이라기보다, 정점으로 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만족감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4세대 그랜저 TG의 이미지 어필은 이원화된 측면도 있다. MBC TV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는 당시 20대 초반이던 현빈의 자동차로, 이어진 2005년의 광고 이미지에서는 멋지게 산 중년의 자동차로 등장했다. 

2008년 TG의 페이스리프트 광고는 저 유명한 ‘잘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라는 카피를 내세웠다. 수입차의 공세가 본격화되기 시작하던 시기, 그랜저의 정체성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면서 과시성 소비문화의 일단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시기적으로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였던 만큼, 그 어느때보다 ‘정의’가 화두여서 상대적으로 반감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한국의 물질만능주의를 표현한 광고 사례라며 교과서에 실리기까지 했다.

이러한 비난을 의식한 듯, 현대자동차는 2009년형인 더 럭셔리 그랜저의 광고 카피는 당신의 오늘을 말해줍니다’로 다소 순화했다. 사실 고급 세단의 광고에서 성공이라는 키워드를 직접 말하는 것이 비난받아야 할 일인가라는 의문은 남는다. 그만큼 광고 전략을 시기적 맥락이 중요함을 알려주는 사례다.

그랜저, 헤리티지와 공감을 언급하다

5세대 그랜저인 HG의 광고는 헤리티지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1세대 그랜저부터 5세대 그랜저가 모두 나와 드넓은 평원을 달리는 모습을 보여 준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다양한 기술을 적용했고, 디자인 역시 플루이딕 스컬프처라는 새로운 기법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슬로건도 ‘다섯번째이자 첫번째 그랜저’라는 카피를 선보였다.

[그랜저(GRANDEUR)] 인정의 순간 친구편(조진웅X이성민) TVCF

페이스리프트로 오면서는 실험적인 시도도 돋보였다. 기존이라면 ‘컨펌’을 받지 못했을 톤 앤 매너였는데, 2013년에는 역사와 전통을 언급하면서도 자동차가 나오는 장면을 최소화했고 2014년 디젤 엔진이 추가됐을 때도 디젤 엔진을 주연으로 내세웠다. 6세대로 풀체인지 되기 전 마지막 5세대 그랜저 HG의 광고는 그랜저 광고임에도 그랜저가 나오지 않고 배우 조진웅과 이성민의 모습만 나왔다. 그랜저는 이 둘을 비추는 거울 역할만 한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얻은 것은 바로 ‘공감’의 가치였다. 즉 그랜저가 물질적인 형태의 자동차만이 아니라 그 이름 자체가 삶을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브랜드가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랜저(Grandeur)] 런칭_안전편

당연히 이러한 콘셉트는 2016년에 나온 6세대 그랜저 IG의 광고도 이어졌다. 플래그십이라는 점을 내세우거나 그랜저 TG처럼 성공이라는 것에 지나친 의미를 두지도 않았다. 대신 그랜저가 도심을 질주하는 장면으로 스포티함을 강조하고 현대차 최초로 첨단 지능형 안전 기술을 적용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다시 1세대 그랜저의 광고 스타일처럼 차량 중심으로 돌아갔다. 슬로건도 ‘다시, 처음부터 그랜저를 바꾸다’라로 설정했다.

‘영 포티’의 마음을 사로 잡는 더 뉴 그랜저 광고

하지만 더 뉴 그랜저로 풀체인지급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다시 성공이라는 키워드를 꺼냈다. 물론 이는 성공의 ‘재정의’를 위해서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환경도 바뀌었고 그랜저의 위치도 달라졌다. 현대차로서는 그 과정에서 그랜저의 혹은 그랜저를 보는 시선의 본질과 전통을 살려낼 필요가 있었다.

[CAR] 2020 성공에 관하여, 현대자동차 GRANDEUR 프리런칭

이번 더 뉴 그랜저의 광고 ,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1990년대 남성 2인조 댄스그룹 ‘듀스’의 “나를 돌아봐”라는 음악을 배경으로, 이 당시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성공하면 무얼 할 것이냐는 질문에 철로 건널목을 건너가는 1세대 그랜저의 모습과 함께 “그랜저 사야지”라는 대답은, 지금 40대가 된 이 시기 청소년들의 꿈과 희망을 다시 소환한다.
더 뉴 그랜저는 같은 ‘성공’을 이야기하지만 TG 그랜저 시절에 이야기하던 성공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성공을 단순한 결과나 어떤 정답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 변해 있을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한 자신의 삶과 그 방법 자체를 성공으로 재정의하는 것이, 더 뉴 그랜저의 광고 영상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가깝다.

현대자동차 GRANDEUR(그랜저) 런칭_2020 성공에 관하여, ‘동창회’ 편

더 뉴 그랜저의 광고 중 하나는 10년전 그랜저 TG 광고를 오마주 겸 패러디하기도 했다. 동창회 모임에서 한 친구가 수입차로 바꾼 친구에게 ‘성공했네’라는 덕담을 건네면,그 옆의 친구에게 승진했는데 차 안 바꾸냐고 묻는다. 그러자 회사에서 차가 나오기 때문에 바꿀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즉, 수입차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탈 수 있지만 그랜저는 차량의 가치만이 아니라 사회적 신분까지를 담은 차라는 점을 전하는 것이다. 이는 동력 성능이 우수하고 몸값까지 낮춘 수입차는 많지만, 그랜저가 가진 상징성까지 가질 수 있는 차가 없다는 상징적 경쟁력을 언급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특히 이러한 메시지는 현대차가 인위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자동차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메시지들이 종합된 것이어서 더욱 유기적이고도 자연스럽다.

현대자동차 GRANDEUR(그랜저) 런칭_2020 성공에 관하여, ‘퇴사하는 날’ 편

‘퇴사하는 날’ 버전은 44만회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퇴사하는 전 직장 동료들를 두고 ‘뒷담화’를 하는 몇 명의 직장인들이 나누는 담소는 비웃음에서 부러움으로 변해 간다. 물질적인 성공에 집중하지 않고 이를 ‘박차고’ 나가는 이들을 아니꼽게 보는 조직 문화는, 다름아닌 과거 현대자동차를 위시한 한국 대기업 직장인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에 더욱 과감하고 도전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물론 더 뉴 그랜저의 광고도 따져보면 물질주의와 허영심을 자극한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한국에서 크고 화려한 그랜저는 그 자체로 좋은 명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과시와 욕망은 자본주의의 부산물이자 존재 이유에 다름아닐지도 모른다. 적당한 부산물은 거름이 된다. 더군다나 변화한 수입차 시장의 환경에서, 더 뉴 그랜저가 허영을 이야기할 위치는 아니다. 오히려 과거 그랜저와 같은 입지는 수입차들이 갖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며, 그래서 더 뉴 그랜저야말로 다른 방식의 성공을 이야기할 근거가 된다. 중요한 것은 현대차가 33년간의 세월을 통해 ‘그랜저=성공’이라는 전통의 이미지를 서서히 만들어 왔다는 점이다. 더 뉴 그랜저가 판매량 이상으로 거둔 무형의 성과는 바로 이것이다.


정휘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