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고민 필요 없는 플래그십? 볼보 XC90 T6 인스크립션

차량 구입 비용으로 8,000만 원대, 혹은 월 리스 비용으로 100만 원 이상을 처리할 수 있는 정도의 구매자라면, 부족한 건 예산이 아니라 고민할 에너지일지도 모른다. 물론 자동차를 고르는 고민은 즐겁겠지만, 쾌도난마와 같은 심플한 선택, 럭셔리SUV의 소비자라면 이런 니즈를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요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SUV가 있을까를 묻는 질문에, 가장 크게 ‘저요’를 외치는 자동차가 바로 볼보의 플래그십 SUV XC90의 T6 인스크립션 트림이다.

320ps 가솔린 엔진 단일 트림,
T6 인스크립션

볼보는 통상 하위 트림인 모멘텀과 상위 트림인 인스크립션을 함께 운영한다. 그러나 T6의 경우에는 인스크립션 단일 트림으로 판매되고 있다. 볼보 트림운영의 장점은 안전 기능을 트림별로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XC90의 경우도 홈페이지에서 옵션 드롭다운 메뉴를 열어 보면 ‘세이프티’ 항목에서 각 트림 당 빈 곳 없이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능동형의 주행보조 기능인 파일럿 어시스트까지 전 트림에 모두 적용돼 있다.

외관이나 인테리어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듀얼 인티그레이티드 배기 파이프라든가 레더 시트 등도 거의 전 트림에서 소재의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질적인 위화감으로 작용하진 않는다. 디젤 엔진인 D5의 모멘텀 트림에만 일부 디자인 요소가 다르게 적용돼 있는 정도다. 플래그십이라면 파워트레인의 성격에서 차이는 있어도 품격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가치가 엿보인다.

체급 대비 덜 먹는다?
양재 IC 반복 통과에도 연비 OK

실제 도심 주행을 반복하며 얻은 체감 연비는 7.5~8.5km/L 정도였다. 공인 도심연비인 8.2km/L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다. 그러나 도심도 보통 도심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 수치는 좀 더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 모처에서 시작해 토목공사계의 성가족 성당 공사라 부를만한 강남순환로 8공구 즉 양재 IC를 거쳐 신사동 인근까지의 코스를 왕복하는 코스였는데, 이 구간은 매일 24시간 정체가 이어지는 곳이다.
특히 이 구간의 평균 주행 속력은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페이스에도 미치지 못한다.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이나 3.5리터 내외의 자연흡기 엔진 공히 좋은 연비를 구현하기는 어려운 극한 조건이고, 하이브리드 차종들조차 얼마 못 버텨 엔진을 돌리기 시작하는 구간이다.

물론 주로 이 구간을 이용하면서 중점을 두어 활용한 모드가 에코 모드였던 덕분이기도 하다. 볼보의 차종들은 주행 모드마다 비교적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데, 출력이 높은 T6 가솔린 엔진 이런 성향이 좀 더 두드러진다. XC90 T6의 최대 토크는 40.8kg∙m이고 발휘 범위는 2,200~5,400rpm인데, 아무래도 에코 모드에서는 변속이 최대 토크 발휘 시점 이전에 이뤄진다. 따라서 발진 가속력을 충분히 느낄 여유는 없다. 대신 그만큼 연료분사량도 제한되므로, 도심 구간에서도 상대적으로 연료 소모를 최소화해가며 탈 수 있다. 출발 시 20~30km 가량 곤두박질쳤던 주행가능 거리는 에코 모드로 주행하다보면 슬금슬금 제자리로 돌아온다.

사실 2.0리터급 가솔린 터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라는 조합은 특별한 감성적 차별화 포인트를 강조하기 어렵다. 다이내믹 모드에서는 비교적 큰 구동음을 들려줬지만 무게가 무거운지라, 명쾌한 가속력을 느낄 수 있는 편은 아니다. 고속도로에서야 5,700rpm에서 320ps까지 도달하는 최고 출력 구간을 사용할 수 있겠으나 굳이 도심 구간에서는 교통 흐름을 놓치지 않는 정도로 족하다. 물론 T6의 공식 0→100km/h 도달 시간은 6.5초로, 체구 대비 준수하다. 공차 중량이 300kg 정도 가볍고 한 세그먼트 아래인 메르세데스 벤츠의 GLC300 4매틱의 0→100km/h 시간이 6.3초에 달한다는 점과 비교해보면 눈길을 끄는 수치다.

어렵지 않게 쓴다!
인텔리세이프 어시스트∙서라운드

통상 반자율주행 기능의 장점을 전할 때, 장거리 주행에서의 이점을 꼽는다. 하지만 출퇴근길 도심에서의 가∙감속 조작을 덜어주는 것도 큰 매력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 볼보 XC90은 전 등급과 트림에 주력 기능인 인텔리세이프 어시스트, 인텔리세이프 어라운드를 차별 없이 적용했다. 특히 반자율주행의 성격에 가까운 인텔리세이프 어시스트는 특히 강력한 강력한 자동 제동 기능인 시티 세이프티와 차로유지, 이탈방지, 조향 지원 등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파일럿 어시스트를 포함하고 있다.
파일럿 어시스트의 조작법은 어렵지 않다. 스티어링휠의 왼쪽스포크를 보면 좌우 화살표 버튼이 있는데, 이 중 오른쪽을 누르면 계기반 왼쪽의 속도계 아래에 파일럿 어시스트의 스티어링 휠 아이콘이 흰색으로 변한다. 파일럿 어시스트 기능이 활성화되면 스티어링휠 아이콘이 초록색으로 변한다. 이때부터 스티어링에는 그저 손을 얹은 채로, 브레이크에 발도 그저 얹기만 한 채로 조금 여유롭게 운전하면 된다.

여기에 주행 속력을 설정하려면 가운데 속도계 심벌 버튼을 누르면 된다. 선행차량과의 간격은 5단계로 나뉘는데, 주행 속력에 따라 다르다. 통상 도심 주행 조건이라면 2단계 정도로도 충분하고 60km/h 이상의 간선도로 주행이라면 3단계 이상이 안전하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사용 시, 내리막길에서 설정 속력을 1, 2km/h 정도 초과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선행 차량이 있으면 이를 기준으로 거리와 속력을 조절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긴급 자동 제동 기능인 시티 세이프티가 작동하는 상황은 만나지 않는 게 좋다. 일부러 연출하는 것도 위험천만하다. 일부 제조사의 경우에는 이 기능을 일부러 작동시키기 위해 테스트하지 말 것을 오너스 매뉴얼에 명기해두기도 했다. 그래도 굳이 작동할 확률이 높은 경우를 꼽자면, 급정지가 필요할 순간, 혹은 가속 페달을 밟았는데 선행차량 속력이 갑자기 느려질 때 등이다.
참고로 XC90의 경우는 아니지만 2019년 9월, S60 시승 시, 시티 세이프티 기능의 작동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 긴박한 경고음, 헤드업 디스플레이의 경고등 점멸과 함께 운전자 판단보다 한 타이밍 빠르게 ABS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방식이다.

프리미엄을 구현하는 제 3의 길, 차별 없음

2020년 1월 셋째 주, 자동차 시장의 화제는 단연 제네시스의 GV80 출시 소식이었다. 제네시스는 이 차종부터 완전 개인 오더 시스템을 통해 자동차를 주문할 수 있게 한다고 밝혔다. 현재 3.0리터 직렬 6기통 디젤 엔진 기종만 출시됐는데, 기본 가격은 6,500만 원대이지만 이 옵션들을 모두 적용하면 8,600만 원에 달한다. 이 중 드리이빙 어시스턴스 패키지 Ⅰ∙Ⅱ만 합산하면 330만 원, 드라이빙 어시스턴스 패키지 Ⅰ과 다양한 편의장비 패키지를 더한 파퓰러 패키지를 선택하면 780만 원이 된다. 사실 이 방식 자체는 고급차 상품 전략에서 지향할 만한 전략이다. 그러나 차주가 각 옵션의 성격에 대해 이해하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조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경우에도 드라이빙 어시스턴스가 적용된 트림과 그렇지 않은 트림의 가격 차이가 400만 원에 달한다. 혼다의 혼다 센싱, 포드 익스플로러의 코-파일럿 360™은 단일 트림으로 차별의 여지가 없지만, 주 타깃층이 약간 다르다.

그런 점에서 볼보 XC90은 차별하지 않음을 통해 오히려 독보적이고 차별적인 존재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안전을 돈으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평준화된 안전 기술 트렌드 속에서 독보적이다. XC90의 구매에서 선택 고민은 파워트레인에 대한 것이면 족하다.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