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온라인 상에서 해외여행 중 오래된 국산 자동차(현대 싼타모)를 보았다며, 사진을 찍어 올린 글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사실 해당 글 속 차량은 사실 미쓰비시의 ‘샤리오’였다. 이처럼 국내 제조사에서 생산하고 판매했지만 해외 제조사의 모델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 생산했던 모델들을 소개한다.
미쓰비시 샤리오에서 현대자동차 싼타모로
1995년 현대자동차에서 출시된 싼타모는 본래 미쓰비시 샤리오를 베이스로 국내에서 생산하고 판매한 차종이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의 파제로를 들여와 갤로퍼로 생산, 성공적인 판매량을 이끌어냈는데,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도 성공적인 판매량을 보였던 미쓰비시 샤리오를 들여왔다. 현대자동차가 들여온 싼타모는 1991년에 출시된 미쓰비시 샤리오 2세대 모델로, 차대부터 엔진까지 대부분 미쓰비시 제품을 사용했다.
물론 싼타모는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된 모델은 아니지만, 국산 차종 중에 처음으로 7인승 MPV의 개념을 정립한 의미 있는 모델이다.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은 크게 승용차와 승합차로 나뉘었는데, 대가족이나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유저들은 현대차의 그레이스, 기아차의 베스타 등의 승합차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출시 초기 싼타모는 해당 차종들에 비해 가격 경쟁력도 좋지 못했고, 가솔린엔진만 선택할 수 있어 판매량이 적었다.
하지만 1997년, LPG엔진 모델이 투입되고, 외환위기가 겹쳐 저렴한 유지비로 활용성이 좋아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이후 국내 시장에도 MPV의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했고, 대우자동차의 레조, 기아자동차의 카렌스와 같은 모델들도 탄생할 수 있었다.
닛산 티아나에서 삼성 SM5로
1998년, 처음 등장한 삼성자동차의 SM5는 닛산의 세피로(수출명 맥시마)의 전면부 디자인을 약간 수정한 후, 모든 부품을 수입해 조립 판매한 국산차종이다. 하지만 삼성자동차는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2000년 르노에 인수되어 르노삼성자동차로 사명이 바뀐다. 당시 르노는 닛산에 인적, 경제적 지원을 하며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출범했고, 이에 따라 삼성자동차 공장은 닛산과 르노 자동차의 생산기지가 되었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한국시장에서 르노삼성 자동차라는 브랜드로 운영되었고, 이에 따라 2005년에 등장한 2세대 SM5는 2003년에 출시된 닛산 티아나를 베이스로 출시되었다. 당시 SM5는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의 NF 쏘나타와 거의 비슷한 판매량을 보이며 국내 중형차 시장을 양분했는데, 편안한 승차감과 정숙성, 내구성에 강점을 보였다.
사실 닛산 티아나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만든 글로벌 판매차종이기도 했다. 1세대 티아나는 중국, 호주, 동남아시아 등에서 닛산 티아나, 맥시마 등의 이름으로 판매되었으며, 한국 시장에서는 르노삼성 SM5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셈이다. 이후 2세대 SM5는 2007년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SM5 뉴 임프레션) 배지 엔지니어링을 한 뒤 중동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 르노 샤프란이라는 차종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메르세데스 벤츠 W124에서 쌍용 체어맨으로
앞서 소개한 두 차량과 달리 쌍용 체어맨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W124차량을 베이스로 했지만, 플랫폼과 부품을 공급받아 새롭게 자사의 플래그십 모델을 완성한 경우다.(물론 디자인 역시 W124와 많이 닮아있다) 쌍용자동차는 창사 후 SUV분야에서 유독 강점을 보여왔는데, 처음으로 세단 모델을 만든 모델이 F세그먼트의 플래그십 세단 체어맨이었다. 하지만 계속된 경영악화로 1998년 대우그룹, 2004년상해기차, 2010년 마힌드라에 인수되며, 신차종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게 결국 체어맨은 쌍용자동차의 처음이자 마지막 세단 모델이 됐다.
물론 회사의 재정적 상황과 달리 체어맨은 판매량도 준수했고 성능도 매우 우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체어맨은 1984년에 출시한 E세그먼트 벤츠 W124 E 클래스의 플랫폼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특히 안전사양에 강점을 보이는 벤츠의 기술이 포함되어 4채널 ABS, TCS, ECS가 적용되었으며, 벤츠의 직렬 4기통 2,300L, 직렬 6기통 2,800L, 3,200L 엔진에 벤츠의 4단 혹은 5단 자동변속기화 조합했다. 디자인 역시 당시 벤츠의 수석 디자이너 갈리헨도로프가 맡아 벤츠의 패밀리룩이 그대로 반영됐다.
출시 초기 체어맨은 경쟁상대인 현대자동차의 뉴 그랜저, 기아자동차의 엔터프라이즈 등에 비해 훨씬 고급스럽고 큰 차체로 ‘회장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일례로 메르세데스 벤츠는 자사의 모델과 비슷한 디자인에 높은 성능과 품질을 보인 체어맨에 대해 대회 수출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부품을 공급하고 기술을 제휴해줄 정도였으며, 실제로 1세대 체어맨 판매량의 60~70%는 최고급 모델인 직렬 6기통 3,200L CM600모델이기도 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앞서 소개한 차종들 이외에도 대우자동차의 아카디아, 현대자동차의 1세대 그랜저와 에쿠스 등 여러 국산 자동차 모델이 해외 제조사의 모델을 그대로 들여왔지만, 이를 통해 빠른 속도로 기술적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다가올 미래에는 국내 제조사 모델이 해외 제조사 모델로 라이선스 생산되는 모습도 상상해 본다.
글
양완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