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산의 부장들’에 등장한 자동차?

2월4일 기준,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누적 관객수 430만을 돌파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몇몇 픽션이 가미된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실제 ‘10.26사건’을 잘 묘사했다는 평 속에는 당시 모습을 자세히 고증했다는 점도 있다. 그리고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자동차는 사실적 고증에 매우 큰 역할은 한다.(약간의 스포일러 주의)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배우 이성민이 열연한 ‘박통’은(실제 이름 대신 ‘박통’이라는 배역명으로 등장했다) 대한민국의 5, 6, 7, 8, 9대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했다. 대한민국은 초대 대통령부터 14대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때까지 대통령 의전차로 캐딜락 차량을 사용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대에 사용한 차량은 캐딜락 프리트우드 68 리무진 방탄차량이었다.

캐딜락은 전통적으로 북미에서도 최고급 승용차 브랜드로 유명했는데, 각종 첨단 기능과 방탄 기능을 더해 현재까지도 미국 대통령의 의전차를 제공하고 있다. 참고로 박 전 대통령이 사용하던 차량은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제공, 8대 대통령 취임식에 사용됐다.

이보다 더 완벽한 고증이 있을까? 영화 ‘남산의 부장들 ‘ 포스터에도 등장한 박통의 의전차는 실제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서 탑승했던 차량으로, 약 50년간 올드카를 수집해 온 금호클래식카에서 대여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속 이병헌이 열연한 김규평은, 1979년 당시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를 모티브로 했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대통령 다음으로 가는 권력을 갖고 있던 자리로, 최고급 의전차량이 제공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은 1979년형 토요타 크라운 슈퍼 살롱(1979 toyota crown super saloon) 모델을 타고 등장했다.

크라운은 무려 1955년부터 생산될 정도로 토요타 자동차에서도 유서 깊은 모델이다.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버전이 등장했으며, 현재는 일본 내에서 주로 오너드리븐 지향의 준대형 세단이자, 택시 전용 모델로 유명하다. 그 중 2세대 모델부터 4세대 모델까지는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신진자동차를 통해 한국에서도 조립생산 되어 판매됐으며, 국내시장에서 부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최고급 승용차로 군림하기도 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 등장한 크라운은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생산됐던 5세대 모델로, 직선이 강조된 보수적이면서도 중후한 디자인과 4단 자동변속기, 4륜 디스크 브레이크, 속도 감응식 파워 스티어링 휠 등 고급스럽고 최신의 편의사양을 모두 적용했다. 특히 ‘남산의 부장들’에 나온 트림은 슈퍼 살롱(Super Saloon)트림으로 가장 비싸고 고급스러운 모델이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속에서 곽도원(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 역)은 프랑스 대사의 초청으로 파리를 방문했을 때 암살당한다. 이때 박용각을 납치한 차량과 박용각을 암살한 정보부 요원의 차량 역시 70년대, 유럽의 모습을 잘 그렸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롤스로이스와 시트로엥이다.

먼저 박용각을 납치한 차량은 1965년부터 1980년까지 무려 15년 동안 약 3만대가 생산된 롤스로이스 실버쉐도우다. 6,230cc V8엔진을 탑재하고 롤스로이스 최초로 모노코크 보디를 사용한 모델로도 알려졌으며, 록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생전 애마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2018년 개봉한 퀸의 일대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실버쉐도우가 등장한다.

다음으로 박용각을 끝까지 추격하여 암살한 정보요원의 시트로엥 DS21 역시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관객들의 기억 속에 남았다. 1965년에 처음 등장한 DS21은 당시 시트로엥 월드 랠리(WRC)팀의 레이스카로 활약할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보여줬던 차량. 영화 속에서도 짧게나마 거친 추격씬을 보여주며 관객을 몰입시켰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고증이 필수적이며,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했을 때 그 고증은 더욱 빛나게 된다. 물론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10.26 사건을 다룬 논픽션 소설을 기반으로 한 역사물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한 자동차만큼은 그 시절을 함께 겪은 산 증인들이 아닐까?

글
양완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