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워스는 70~90년대 포뮬러 원이나 WRC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엔지니어링 회사다. 그래서 모터스포츠 전문 튜너로 인식되고 있기도 한데, 코스워스는 모터스포츠뿐만 아니라 공도용 자동차를 제작하는 능력도 매우 뛰어나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코스워스의 손을 거쳐 더욱 완벽해진 도로용 자동차들을 알아 보려 한다.
코스워스의 포드 사랑 끝판왕,
포드 에스코트 RS
코스워스는 1958년 로터스 출신의 엔지니어 마이크 코스틴(Mike Costin)과 키스 덕워스(Keith Duckworth)가 설립한 엔지니어링 기업으로, 현재까지도 모터스포츠용 머신 제작과 양산차량 설계 등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설립 초기에는 자본력이 부족해 포드 유럽 법인으로부터 자본적, 기술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고 현재까지 포드와의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코스워스와 포드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포드 에스코트는 포드 유럽 법인에서 1968년부터 2004년까지 생산 및 판매했으며 현재 시판 중인 포커스의 전신이다. 이 에스코트의 고성능 버전이 바로 에스코트 RS다.
또한 마지막 에스코트 RS인 5세대는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생산 및 판매했으며 1997년 포드 포커스로 대체되기 전까지 WRC에서 활약했었다. 5세대 에스코트 RS는 2.0리터 터보차저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227ps를 발휘한다. 최고속도는 232km/h고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5.7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현재 판매중인 2020년식 포커스 ST가 2.3리터 터보차저 엔진을 얹어 최고출력 280ps, 0→100km/h가 6초라는 점을 생각하면 현행 모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성능이다.
전설이 아니고 레전드,
메르세데스-벤츠 190E 2.3-16
메르세데스–벤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최고의 수작을 꼽을 때 절대 빠트리지 않는 자동차가 2대 있다. 포르쉐와 합작으로 만든 500E와 바로 코스워스의 손을 거친 190E 2.3-16이다. 190E 2.3-16은 C클래스의 전신인 메르세데스–벤츠 W201 190의 고성능 버전이다. 메르세데스–벤츠 190은 1982년에 출시되어 W202 C클래스에게 자리를 물려준 1993년까지 11년간 생산 및 판매됐다. 특히 190은 당시 시판했던 D세그먼트 차량들 중 보기 힘든 후륜 5링크 서스펜션과 ABS, 시트 벨트 프리텐셔너 등을 적용해 경쟁 차종들과 차별화를 준 것이 특징이다.
고성능 버전 190E 2.3-16은 아우디 콰트로, BMW가 E30 M3와 함께 80년대 후반을 뜨겁게 달군 스포츠 세단이다. 이 차량이 바로 코스워스가 손을 댄 것이었다. 코스워스는 2.3리터 4기통의 M102 엔진을 기반으로 자체 제작한 실린더 헤드를 장착하고 캠샤프트도 DOHC로 변경했다. 차명 뒤에 붙은 16은 16밸브를 의미하는데 이를 통해 188ps의 최고 출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출력을 기반으로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능력은 8초, 최고속도는 230km/h를 자랑했다.
이 후 BMW M과의 경쟁을 통한 개선도 흥미로웠다. 벤츠와 코스워스는 1988년 배기량을 2.5리터로 늘린 190E 2.5-16을 출시한다. 개선된 엔진은 타이밍 체인 방식을 적용했으며 최고출력은 19ps 더 향상된 207ps를 발휘했다. E30 M3 에볼루션을 공개하면서 벤츠와 코스워스도 190E 2.5-16 에볼루션 I과 에볼루션 II를 선보이기도 했다. 190E 2.5-16 에볼루션 I은 최고출력 205ps이며 에볼루션 II는 235ps를 발휘한다. 이는 현재 시판 중인 W205 C300(최고출력 244ps)와 비슷한 출력이다.
코스워스가 만든 새로운 아우디 D세그먼트의 시작,
아우디 RS4
아우디는 변태적인 고성능 왜건의 명가로도 유명하다. 1994년 아우디와 포르쉐가 합작으로 제작한 고성능 왜건 RS2만 봐도 그러하다. 아우디 A4의 전신인 아우디 80의 고성능 버전인 RS2는 0→48km/h까지 순간 가속이 1.5초에 불과했는데, 이는 당시 내로라하는 고성능 머신들인 맥라렌 F1, 쉐보레 콜벳, 포르쉐 911 보다 빨랐다. 이 후 1999년 아우디는 새로운 D세그먼트 A4의 출시와 함께 고성능 버전 RS4를 선보였다.
아우디는 RS4에 장착할 엔진의 개발을 코스워스에게 맡겼다. RS4는 E세그먼트인 A6에 사용된 2.7리터 V6엔진을 기반으로 알루미늄 합금 실린더 헤드와 강화 커넥팅 로드, 트윈터보 등을 적용해 380ps의 최고출력을 발휘하도록 개선했다. 또한 6단 수동변속기와 아우디 콰트로 4륜시스템과 맞물려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능력은 4.9초, 최고속도는 260km/h다.
강화된 출력에 걸맞는 브레이크 시스템은 아우디가 자체 개발했다. 전륜은 360㎜의 대구경 디스크와 2피스톤 캘리퍼가 후륜에는 직경 321㎜의 대구경 디스크 로터에 싱글 피스톤 캘리퍼가 적용됐다. 그래서 110km/h 속도에서 급제동했을 때의 제동거리가 50미터도 되지 않았다. 참고로 현재 시판중인 4세대 아우디 S4가 3.0리터 V6 트윈스크롤 터보 엔진을 탑재해 359ps의 최고출력을 발휘하며 0→100km/h는 4.4초다.
코스워스와 고든 머레이의 합작,
TVR 그리피스
TVR은 가벼운 차체와 강력한 출력이 특징인 영국의 하이엔드 스포츠카 제조사다. TVR은 거창한 의미를 담은 이니셜은 아니며 설립자 트레버 윌킨슨(Trevor Wilkinson)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46년 설립된 만큼 역사와 전통이 있는 제조사다.
TVR 그리피스는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생산한 스포츠카이다. 소형차 보다 작은 3,891㎜의 전장으로 공차중량이 1,060kg에 불과했는데, 엔진으로는 345ps를 내는 5.0리터 V8엔진을 탑재한 하드코어한 스포츠카로 마니아들을 보유해왔다. 그러나 이처럼 지나치게 하드코어한 차량을 제작하다 보니 회사 사정은 좋지 못했다.
하지만 2020년 들어, 17년만의 후속인 2세대 그리피스를 출시하는 뚝심을 보여주고 있다. 2세대 그리피스는 맥라렌 F1과 메르세데스–벤츠 SLR 맥라렌을 디자인한 고든 머레이가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 차에는 메르세데스–벤츠 SLR 맥라렌의 요소가 곳곳에 숨어있다. 대표적으로 SLR처럼 그리피스도 배기구가 엔진 바로 측면에 장착됐으며 SLR을 제외한 양산차량 중 유일하게 그라운드 이펙트(지표에서 자동차에 가해지는 부력)가 발생하는 프론트 엔진 차량이기도 하다.
이 차의 파워트레인도 코스워스가 담당했다. 베이스가 된 엔진은 포드 머스탱 GT에 장착되는 최고 출력 507ps의 코요테 5.0리터 엔진이다. 또한 이전세대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4,313㎜의 짧은 전장과 1,250kg의 가벼운 공차중량 덕분에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4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최고속도는 322km/h이며 요즘 나오는 차량에서는 보기 드문 6단 수동변속기 사양만 존재한다.
코스워스는 엔진 튜닝 분야에서는 명가라고 해도 손색 없는 회사다. 특히 60~80년대에는 상당수의 F1팀들이 코스워스가 제작한 엔진을 사용했고 그 머신으로 여러 번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또한 코스워스의 손을 거친 양산 차량들은 동급 경쟁 차량들을 아득히 뛰어 넘는 퍼포먼스로 스피드 마니아들의 호평을 받았다. 코스워스 파워트레인의 장점이라면, 안전은 신경 쓰지 않고 보여주기 위한 튜닝이 아니라 운전자가 충분히 컨트롤하고 즐길 수 있는 엔진 개조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회사 사정은 어려워도, 코스워스가 꾸준히 차량 개발을 이어갈 수 있는 저력도 이러한 퍼포먼스적 지향점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글
정휘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