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인 결과는 합리적인 기준이 만들어낸다. 대한민국의 거리를 달리는 2,200만 대의 차는 대부분 합리성을 기준으로 선택됐을 것이고 따라서 보편적인 풍경을 빚는다. 서울 한복판과 주변 신도시, 주요 광역시와 군 단위에 이르기까지 차량 선택의 모습은 비슷하다. 자동차 제조사의 입장에서는 도움이 안 되는 일이겠지만 가끔 이 보편의 틀을 깨는 차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슬금금슬금 생겨날 무렵, 그런 틈새의 요구에 부응하는 차량이 등장했다. PSA 그룹의 DS3 크로스백이다.
고급 색조화장품을 닮다
소형차의 상품성을 구현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제조사 입장에서나 소비자 입장에서나 가격과 타협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외관 디자인은 오히려 소형차 나름의 멋이 있지만, 그마저도 기본적으로 짧은 전장과 휠베이스라는 물리적 조건 속에서 최적의 비율을 구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최근 메르세데스 벤츠의 신형 GLA처럼 아예 후드 길이의 비율에 집착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이미지로 승부를 거는 경우도 있다.
DS3 크로스백의 디자인은 B 세그먼트의 제원적 경계를 한계가 아닌 나름의 가능성으로 해석했다. 그 가능성은 이미 국내에 어느 정도 마니아를 둔 소형 해치백 DS3를 통해 보여주었다. 또한 먼저 출시된 브랜드 내의 플래그십인 DS7 크로스백의 디자인 요소들을 적절히 소화하고 있다. DS가 자랑하는 LED 비전 헤드램프, 펄 스티치 타입의 독특한 패턴이 들어간 LED DRL(주간주행등) 파라메트릭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 주는 라디에이터 그릴 등은 DS7 크로스백의 기품있는 모습을 살렸다. 물론 헤드램프 위쪽과 후드의 경계선에 조금 더 표정을 가미한 점, 샤크 스핀 타입의 B필러 등 DS3 크로스백만의 특징적인 면도 살아 있다.
DS3 크로스백의 또 다른 장점은 아름다운 컬러와 품질 높은 도색이다. 시승차로 주로 활용되는 차량의 컬러는 임페리얼 골드와 밀레니얼 블루 두 가지인데, 최근에는 펄 네라 블랙에 루비 레드를 루프 컬러로 배치한 컬러도 만날 수 있다. 원 톤 조합으로만 컬러가 아홉 가지에 달하며, 모두 발색도 선명하다. 도색 마감도 필러 내부 곳곳에 잘 미쳐 있다
DS3 크로스백의 다양한 컬러들
무늬만 고급 아닌 ‘찐’ 고급의 실내
이 차의 강점은 역시 소형차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가죽 시트 구성이다. 부드러운 촉감과 안정적인 착좌감을 전하는 나파 가죽이 기본적으로 적용된다. 여기에 고밀도 폼을 적용해 대퇴부와 허리 등의 부담을 줄여 준다. 시계끈을 형상화한 스티치인 ‘워치스트랩’ 디자인을 통해 척추가 닿는 부분을 따라 자연스럽 누빔 효과가 적용돼 있다. 전체적으로 통기성도 우수하다. 흔히 새 차 냄새라 불리는 접착제 냄새가 덜해, 기관지가 약하거나 알러지가 있는 운전자에게 편안하다.
가죽 소재는 대시보드에도 적용된다. 크래쉬패드는, 이곳을 전체적으로 가로지르는 스티지로 마감돼 있다. 스티치 디자인을 자세히 살펴보면 마디마디마다 작은 펄과 같은 마감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계기반은 가운데 단일 클러스터 형태로 되어 있다. 주행 중 주요 정보는 시인성 높은 HUD를 통해 볼 수 있다. HUD의 표시정보 위치 조절 장치는 스티어링 컬럼의 왼쪽 대시보드에 있어 조작이 쉽다.
센터페시아 스크린의 시인성도 우수하다. 다만 후진 주차 시 후방카메라의 화질은 아쉽다. 최근에는 왜곡이 상대적으로 덜한 광각 카메라도 생산되는데 이러한 제품으로 개선된다면 고급차를 지향하는 해당 차량의 본령에 적합할 것이다.
물론 작은 차체에 최고 사양들을 두루 넣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자동차들과는 조작계의 레이아웃이 조금 다른 형태로 되어 있다. 좌우측 송풍구가 대시보드가 아닌 도어 쪽에 장착돼 있고 윈도우 버튼 역시 센터 콘솔에 위치해 있다.
세그먼트상 뒷좌석 공간이 크게 넓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시트 소재는 1열과 마찬가지로 워치스트랩 디자인이 적용된 나파가죽 시트다. 시트포지션 자체가 높고 레그룸이 좁아 신장 175cm 이상의 성인이 타기에는 다소 불편하다. 특히 운전석의 경우 레그룸이 좁다 보니 풋레스트에 발을 얹고 무릎을 120° 정도로만 만들어도 뒤 공간은 극히 좁아진다. 그러나 어린이나 키가 크지 않은 성인, 반려동물을 태우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무엇보다 다인승 지향 차량은 아니다. 2열은 폴딩을 통해 트렁크의 연장으로 사용하든가 아니면 1열에 두기 어려운 옷가지 등을 놓아두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힘있고 부드러운 하체와
영리한 주행 보조기능
DS3 크로스백에는 가격 차이가 꽤 나는 상위 기종인 DS7 크로스백의 주행 감각과 기본기 등이 그대로 녹아 있다. 언제나 마찰력을 놓치지 않되 과속방지턱이나 요철, 곳곳에 나 있는 포트홀을 지나갈 때의 충격 감쇄 능력은 능청스러울 정도다. 화강암 블럭으로 이루어진 곳이 많은 유럽의 도로에서 오랫동안 승차감으로 유럽에서 인정받았던 브랜드 DS의 가치를 담고 있다.
이 차의 지상고는 플랫폼을 공유하는 시트로엥 C3 에어크로스와 동일한 170㎜이다. 그러나 선회 시 좌우 바퀴의 눌림이 좀 더 부드러운 편이다. C3 에어크로스처럼 다부지고 옹골차게 버틴다기보다는 조향의 정확성을 유지하는 한도 내에서 도로의 선형을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스티어링 조작감도 부드럽다. 오히려 DS4, DS5의 조금 빡빡했던 스티어링이 살짝 그리울 정도다.
앞서 살펴보았듯 바른 운전자세를 취했을 때도 뒷좌석이 크게 좁아진다는 단점은 있다. 그러나 시트 포지션이 작은 차체에도 불구하고 차량의 중앙부에 가깝다는 것은 그만큼 체감되는 조종 정확성의 향상에 기여한다. 부수적으로 대시보드가 넓어져 앞쪽이 여유롭다.
DS를 비롯한 PSA 그룹 차종들의 ADAS(지능형 운전자보조 시스템)의 가치는 다소 과소평가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정차 및 재출발에서의 부드러움이 돋보이는 어댑티브 크루즈 콘트롤, 차선 유지 보조가 결합된 DS 드라이브 어시스트 역시 안정적인 작동과 편리함을 자랑한다. 적용되는 최고 속력도 180km/h에 달한다. 스티어링의 개입은 적극적이진 않지만 차로 이탈 위험이 감지되면 자연스러운 제동을 통해 위험을 최소화한다. 해당 기능의 조작계는 여느 PSA 그룹의 차량이 그러하듯 스티어링휠 컬럼의 왼쪽 레버를 조작하면 활성화된다.
정숙하고 알뜰한 파워트레인
이 차종에 적용된 1.5리터(1,499cc)의 HDi 엔진은 C4 칵투스의 페이스리프트, C5 에어크로스, 푸조의 508, 5008 등 주요 차종에 적용된다. 8단 변속기와 맞물린 차종도 있고 6단 변속기와 맞물린 경우도 있는데, DS3 크로스백은 8단인 EAT8이 적용됐다. 최대 토크가 31kg‧m인데 다단화변속기이다 보니 저단에서 치고 나가는 힘은 느끼기 어렵다. 특히 에코 모드로 주행하게 되면 정숙성은 가솔린 엔진에 필적할 만큼 우수하지만 가속페달을 꽤 깊이 밟아도 달려나가는 느낌이 오지 않는다. 동일한 엔진에 6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한 시트로엥 C3 에어크로스나 C4 칵투스의 스포티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덕분에 공인 복합 연비가 15.6km/L에 달한다. 도심 주행 연비도 14.5km/L에 달한다. 다만 아무리 우수한 구조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디젤 엔진 차량은 저속 주행만을 반복하면 불완전 연소로 인해 디젤 미립자 필터(DPF)부하가 걸릴 수 있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80km/h 이상의 속력으로 최소 20~30분 정도 고속 주행을 하는 방식으로 관리해주는 것이 좋다.
물론 혹자는 연비를 생각한다면 이 작은 사이즈에 그랜저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를 따져 물을지도 모른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소비에 있어서 합리성이란 참고할 만한 좋은 기준이지 절대적 규칙은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이젠 전기차보다 퍼포먼스 면에서 하등 나을 것이 없어져버린 대배기량의 기름고래들은 어떤 합리성을 근거로 선택하는 것인가? 이 차를 들여다 파는 수입원조차도, DS3 크로스백이 누구에게도 자기가 최적이고 꼭 필요할 것이라고 강변하지 않는다. 다만 처음 언급한 것처럼, 보편적인 풍경의 일원인 것에 문득 질리고, 단지 스스로 아름답길 원하는 이들과 동행할 차라고 전할 뿐이다.
글·사진
한명륜 기자
자료사진제공
한불모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