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 2분기는 신차 소식이 가장 활발한 시기다. 특히 한 해 브랜드의 가치와 이미지를 견인할 플래그십 차종들이 이 시기에 선보인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인증 시 배기가스 배출량 조작 사태로 수년간 신차 실종 상태였던 폭스바겐과 아우디가 각각 투아렉, Q8 등 신차를 잇따라 내놓았다. 제네시스는 야심작이라 할 수 있는 GV80 SUV와 ‘조선의 E클래스’라 불리는 G80의 풀체인지 차종을 출시했다. 이외에 캐딜락 XT6, 링컨 에비에이터, 반 체급 정도를 올렸다고 자부하는 기아자동차의 4세대 쏘렌토 등 수입과 국산 각 브랜드마다 ‘급’이 있는 신차들을 두루 내놓고 있다.
제원을 분석하고 시승을 해보며 신차를 살펴보는 것이 업인 자동차 콘텐츠 제작자의 입장에서 이 시기는 원래 바쁘고 즐거웠던 시기다. 그 많은 고급차들 중 내 것은 없어도 한 번씩 경험해보면서, 돈이 돌아가고 사회의 일부분에라도 활기가 도는 모습에서 작게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특히 전장 4,900㎜, 휠베이스 2,800㎜ 이상의 SUV나 세단의 우수한 사전 계약 실적을 보며 평범한 이들이 꿈꿀 수 있는 현실적 낭만이 남아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쏟아져 나오는 각 브랜드의 플래그십 수준의 차종들을 대하면 소화불량에 걸릴 것만 같다.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이 과연 이 물량을 능히 소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 탓이다. 물론 3월 30일에 공식 출시된 제네시스의 G80는 3월 30일, 사전 계약 대수만 2만 2,000대를 기록했다. 주요 리서치 기관이 불황을 넘어 공황을 예상하는 상황 속에서 그래도 소비 여력이 있는 이들이 남아 있다고 안도해야 할까?
사실 고급차 수요를 지탱하는 것은 자영업자들과 대기업 임원이나 고위급 공무원 등 기관 단위의 소비자들이다. 제네시스는 후자의 비중이 만만치 않게 크다. 공식적인 통계가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고차 시장에 등장하는 제네시스나 그랜저의 구형 물량 증가 추이를 보면 대략적으로 해당 차종의 풀체인지나 페이스리프트 시기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기관 수요자들의 경우에는 해당 예산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기존 관용 및 업무용 차를 신차로 교체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다음 해 예산이 삭감될 수 있다. 따라서 심각한 긴축 재정이 아니고서야 대차를 결정한다.
그러나 대기업, 공기업 수요보다는 다양한 종목의 자영업자 수요에 기대는 수입 대형차의 경우는 사정이 다를 수 있다. 물론 소득 수준이 높거나 자동차 자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아 수입 플래그십을 타는 경우도 있지만, 그들 역시 상당수는 비용 처리를 위해 리스 구매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2억이 넘는 고가 SUV나 세단 등은 일반 할부나 현금 구매 비율보다 리스를 통해 구매하는 이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1억 미만 차량의 경우라도 비용 처리를 위한 리스 계약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것이 사실이다.
혹자들은 이런 자영업자들의 수입차 리스 구매가 실제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과시나 탈세와 관련돼 있다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또 고급차를 리스로 운용하는 회사임에도 직원들의 처우는 나쁘다는 사례를 들어 정의와 형평성 문제를 들고 나오기도 한다. 타당성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디테일을 보면 사정은 다르다. 실제 자영업을 하는 이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여러 지출 항목 중 기업 활동을 위한 필수 지출 항목으로 인정해 주는 비율은 체감 상 무척 낮다. 업종에 따라서는 식대 및 여러 직원 복지를 위한 비용 지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제조업은 사정이 덜 나쁜 편이지만, 광고업이나 콘텐츠 제작업, 이벤트 대행 등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꼭 필요한 물품의 사입에 있어서도 ‘더 합리적인 가격의(더 싼) 물품이 있는데 그 정도까지 왜 필요하냐’는 식의 고압적인 지적(주체는 생략한다)과 맞닥뜨릴 때가 왕왕 있다. 작은 사업체의 대표가 차량을 자주 바꾸고, 인테리어를 바꾸는 건 기분 전환만은 아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해야 비용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자영업자들이 돈을 벌 만한 경제 활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현재 코로나 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권하는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 두기는 이벤트, 요식업 등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들에게 그야말로 직격탄이다. 물론 감염병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크고, WHO의 헛발질, 일부 강대국의 감염병 초창기 정보 왜곡 등이 이어지면서 세계 대유행에 들어가는 등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은 조금씩이나마 진정 국면의 희망이 보이고 있으니 결국 정부의 조치는 합당했다.
그러나 일부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러한 고강도 거리두기에 디테일이 결여돼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재 정부의 고강도 거리두기 지침은 ‘감염과 관련된 모든 행동은 금해줄 것’이다. 퇴근 후 약속을 잡지 말자는 권고의 메시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코로나 19의 전파로 인한 사회적 비용보다,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고강도 거리두기를 지속한다고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흐름의 경색이 일으킬 비용이 높아지는 순간은 언제고 찾아올 수 있다.
자영업자층의 재난적 소득 감소는 그 대가 중 하나다. 이는 필연적으로 세수 부족과 연결될 것이 자명하다. 현재 재난 상황에 대비해 정부와 지자체가 집행하는 예산의 액수를 감안하면 향후 재정 건전성의 위기와도 연결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자연히 수입차 시장을 받쳤던 큰 축이 흔들리게 된다. 단순히 ‘세상 쓸데 없는 수입차 판매사들의 사정 걱정’이 아니다. 수입차를 포함한 고급차들이 상징하는 한국 경제의 활력과 유동성이 메마르고 굳어가는 것이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물론 한국 경제 구조에서 자영업자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런 지적도 디테일해야 한다. 동일 업종에 생계형 자영업자가 몰리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그것도 자영업자 개인을 향한 질타로 이어지는 건 부당하다. 또한 산업 분야별로 전문화된 자영업자들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 모두 어찌 됐든 한국 경제의 흐름을 책임져 온 주체들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4월 1일 만우절이다. 가끔 이 순간이 거짓말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거짓말처럼 감염병이 사라질 수 없다면 보다 디테일한 대책을 통해, 감염병 확산의 우려 최소화와 경제 경색의 예방이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최적의 접점을 찾는 방정식의 수립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세대로 거듭난 제네시스 G80의 대박 실적이 한국 자동차 업계의 신기루가 아니길, 그리고 G80를 위시한 고급차들이 시장에서 체증을 일으키지 않고 소화될 정도로 자영업자들이 살아나길 간절히 기원한다.
글
한명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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