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디자인의 현재 트렌드와 향후 진행 방향에 대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레드닷 디자인어워드의 2020년 수상 제품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특히 제품 디자인 부문의 본상 수상작들은 현재 산업 각 분야의 과제와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이 담겨 있어 살펴볼 만하다. 이번에는 2020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의 제품 디자인 본상 수상작들 중 자동차 및 모빌리티와 관련된 여러 제품들을 간단히 리뷰해보았다.
푸조 208‧2008 동시 수상, “트로피 수집 중입니다”
푸조의 2세대 208과 2008 SUV는 지금 트로피 수집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푸조의 208은 테슬라 모델 3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꺾고 유럽 올해의 차를 석권했으며 그 외 여러 어워드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208과 2008 SUV는 수송 디자인 (Cars and Motorcycles) 분야 제품 디자인을 수상했다. 2010년 RCZ를 시작으로 308 SW(2014년), 트레블러(2016년), 508 SW(2019년), 3008 SUV(2017)에 이어 6번째 디자인상 수상이다.
208의 경우는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아이–콕핏 인테리어와 디지털 3D 인스트루먼트 패널, 콤팩트한 더블 플랫 형태의 스티어링 휠, 10인치 터치스크린 및 외관으로 주목받았다. 2008 SUV는 사자의 송곳니를 형상화한 전면 LED 주간주행등이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심사위원단 측은 밝혔다. 이 두 차종은 모두 전동화 파워트레인과 엔진 기반 파워트레인을 아우를 수 있는 멀티 에너지 플랫폼인 CMP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국내에도 전동화 파워트레인과 디젤 엔진 차량으로 연내 출시될 예정이다.
혼다-e와 CBR 1000RR-R 파이어블레이드 SP, “오랜만입니다”
혼다는 2017년 도쿄모터쇼를 통해 데뷔한 어반 EV의 양산형 혼다-e와, 모토GP의 테크놀로지가 집약된 고성능 트랙지향 모터사이클 CBR 1000RR-R ‘파이어블레이드(Fireblade)’ SP를 수상 명단에 올렸다. 혼다-e는 도심형 전기모빌리티라는 미래지향적 디자인과 세계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소형차 N360의 디자인적 전통을 결합한 어반 EV의 디자인을 현실감 있게 다듬었다. 특히 실내에 위치한 두 개의 대형 터치스크린이 다양한 커넥티드 기능과 연동되며, 라운지와 같은 안락함을 구현한 점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CBR 1000 RR-R 파이어블레이드 SP는 혼다의 모터사이클로서 실로 오랜만에 본상 수상 제품이 됐다. 모토GP의 컨스트럭터 타이틀을 여러 차례 석권한 혼다답게, CBR 1000 RR-R RC213V의 테크놀로지를 적용한 고성능 머신이다. 전자제어를 통해 스포티한 주행 시 더욱 강화된 안정성과 가속 및 제동 능력이 장점이다. 999cc의 수냉식 엔진으로, 어지간한 2.0리터급 자동차와 비슷한 214ps(14,500rpm)의 최고 출력을 발휘한다. 이 차는 그간 야마하나 스즈키 등에 비해 디자인 어워드와의 인연이 박했던 혼다 모터사이클에 있어 또 다른 전기라 할 수 있다.
기아차 엑씨드, “유럽인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기아차는 지난 2019년 이러한 씨드 시리즈에 합류한 크로스오버 엑씨드(XCeed)를 수상 명단에 올렸다. 이는 왜건, 해치백 기반의 씨드(Ceed) 시리즈로서는 두 번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본상 수상 기록이다.
기아차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와 인연이 깊다. 2018년에는 브랜드 플래그십 전시장인 서울 강남구의 비트360(BEAT 360)을 비롯해 스토닉, 모닝, 스팅어 등이 수상한 바 있다. 기아차는 2006년 이후 ‘디자인 기아’라는 기치 아래 시기별로 브랜드 가치에 기여할 만한 디자인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유럽 시장에 선보인 현지 전략형 차종들이 좋은 성과를 거둬오고 있다. 패스트백 타입의 씨드와 씨드 스포츠왜건, 프로 씨드 등 크로스오버나 이런 성과를 견인했다.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회 역시 엑씨드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유럽의 자동차 문화를 잘 이해하고 그에 부응하는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마쯔다 CX-30·MX-30,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브랜드”
기아차 엑씨드와 경쟁차종이라 할 수 있는 마쯔다의 인기 크로스오버 자동차 CX-30과 MX-30도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유럽 자동차 시장에서 대중적인 차량 브랜드로서 마쯔다의 위상은 높다. 특히 크로스오버인 CX-30과 MX-30의 디자인은 일본 브랜드다운 공예적 완성도를 가진다며 등장 당시부터 유럽 시장의 호평을 얻었다. 매끈한 외형과 경량화된 차체가 강점이며, MX-30의 경우 코치 타입의 도어를 택해 디자인적인 신선함을 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압축 착화라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하는 신형 엔진의 개발 등으로 혁신적인 이미지도 강하다.
CX-30과 MX-30은 마쯔다의 8, 9번째 수상작이기도 하다. 마쯔다는 4세대 마쯔다 3(2019), 경량 하드탑 컨버터블인 MX-5 RF(2017), MX-5 소프트탑, 소형 SUV인 CX-3, 마쯔다 2(2015), 3세대 마쯔다 3(2014), 마쯔다 6(2013) 등 7대의 차량을 레드닷 수상 명단에 올렸다.
스코다 옥타비아, “코로나, 이 %^*&&())($%&”
폭스바겐 산하 체코 자동차 브랜드인 스코다의 옥타비아도 레드닷 어워드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옥타비아는 폭스바겐의 7세대 골프, 제타, 아우디 A3, Q2, 세아트의 레온 등 폭스바겐 그룹의 소형 차량들에 공유되는 MQB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차량으로 2019년 11월 11일에 4세대 차량을 선보였다. 한국에 들어올 일은 없겠지만, 유럽 여행 등을 통해 렌터카로 경험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스코다에게는 이 수상이 못내 아쉬울 수도 있다. 이 4세대 옥타비아는 원래 2020년 6월부터 고객들에게 인도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19의 팬데믹(세계대유행)으로 인해 늦어져버린 것이다. 양산차를 많은 대중들에게 내보일 수 있는 기회인 모터쇼도 줄줄이 취소되다 보니 ‘수상 버프’가 반감되는 모양새다. 부디 이 난국이 빨리 지나 대중적인 브랜드들의 타격이 최소화하기를 기원한다.
레드닷은 ‘돈 주고 사는 상’이라 의미 없다고?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 대해 최근 수 년 사이 비판이 많았다. 특히 접수와 도록 수록, 수상작 전시 등에 모두 비용이 발생하다 보니 ‘돈 주고 사는 디자인 상’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전세계 각 분야의 시상식들은 작품 접수에 비용을 받아 진행 제반 비용을 댄다. 차라리 이 편이 훨씬 투명할 것으로 생각된다.
몇몇 전문가들은 레드닷 디자인의 수상 분과 중 한 분과의 시상식이 싱가포르에서 열리고, 한국 기업들을 비롯해 아시아 기업들이 수상하는 상이 대부분 여기 몰려 있다며 ‘레드닷 수상 팔이’의 공신력을 의심해야 한다고 일갈한다. 여기엔 싱가포르라는 도시가 가진 자본주의의 꽃 같은 성격에 대한 거부감도 비친다. 그러나 이 상이 산업디자인적 성과를 논하는 것이라면, 자본의 감각이 집중된 도시에서 치르는 것이 왜 공신력을 의심할 근거가 돼야 하는지 도리어 의심스럽다. 세계적 건축상 시상식인 WAF(World Architecture Festival)도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더불어 레드닷 디자인 어워즈의 시상식 중 물론 가장 역사가 오래된 제품 디자인 분야의 시상식이 독일에서 열리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이 아시아에서 열리는 다른 분과 시상식의 의미를 평가절하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지극히 세계적 현상인 디자인을 두고 지역 기반의 역사성이 상의 권위를 담보한다는 감각은 낡아도 한참 낡았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