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년 사이 선택지가 급격히 넓어진 영역이 있다면 바로 전장 5,000㎜급 대형 SUV 시장이다. 견고한 아성의 수입 브랜드들과 새로이 진입한 국산 브랜드들의 난전 덕이 아닐까? 엔진 등급이나 사양 분포도 나름대로 체계적이어서, 소비자들은 계산이 선 고민을 할 수도 있다. 특히 3.0리터 미만의 다운사이징 엔진을 장착한 대형 SUV들이 그러하다. 그 중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포드 익스플로러의 2.3 에코부스트와, 수입차와의 경쟁에서 가치로 승부하겠다는 제네시스의 GV80 2.5 가솔린 터보 엔진 트림이 대표적 주자들이다. 실질적으로 구매 시 비교할 가능성이 높은 두 SUV, 어떤 미묘한 차이가 선택을 가르게 될까?
트렌드 속에 살린 직선의 전통 VS.
최신의 프리미엄 지향하는 곡선의 맛
현행 6세대의 익스플로러가 공개됐을 때, 국내 선호도는 엇갈렸다. 익스플로러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의 이유는 크게 2가지였는데, 대배기량의 자연흡기 엔진을 포기했다는 점과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익스플로러의 입장에서, 디자인에 대한 지적은 다소 억울할 수 있다. 전장은 5,050㎜로 5세대 후기형과 동일하지만 후륜 구동 플랫폼을 기반으로 해 3,025㎜의 긴 휠베이스를 기반으로 비례감을 강조하는 방식은 늘 포드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곤 하던 트렌디함의 부족을 커버하는 전략이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익스플로러의 디자인은 익스플로러가 5세대에서 보여줬던 직선을 잘 살린 것이었다.
제네시스 GV80는 선행 모델이 없는 신개발 차종이므로 익스플로러보다 디자인 논란에서 자유롭다. 하지만 후발주자로서 가치나 상징성을 빨리 정립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G90 세단 그리고 이후에 등장한 3세대 G80 등에 적용된 ‘두 줄’ 디자인의 등화류와 크레스트 크릴, 여백을 강조한 대시보드와 가구를 만들기로 작정한 듯한 가죽시트 옵션 등은 모두 브랜드 정립을 위한 피나는 노력에 다름아니었다.
특히 소비자가 직접 차량의 사양을 엔진 등급 트림에 관계없이 택할 수 있게 하는 컨피규레이션 시스템을 홈페이지에 도입하는 상품적 전략도 세웠고 이는 나름대로 호평을 얻고 있다. 일부 인테리어 사양의 경우, 이전 단계에서 고가 옵션을 선택해야만 적용할 수 있어서 아쉽다는 반응도 있지만 고급차의 부가가치 구현이라는 면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익스플로러가 택한 직선의 가치는 철저히 공간의 최대화라는 가치를 따른다. 건축에서 직육면체의 가치를 높게 보는 것도 그때문이다. 디자인 역시 장식적이거나 심미적 만족을 추구한 요소는 거의 없다. 디자인은 철저히 기능에 봉사한다는 철학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한층 젊은 이미지가 강해졌다.
GV80의 디자인은 딱 그 반대다. 전장 4,945㎜, 휠베이스 2,995㎜면 공간은 충분히 확보했고 럭셔리 브랜드다운 측면을 구현해야 한다는 목표에 올인했다. 유려한 측면 선은 분명 공기저항 계수를 줄이는 기능 지향의 디자인이지만 그릴과 등화류, 휠 디자인 등에서 다소 과한 장식성이 노출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럭셔리 디자인은 이유를 찾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검증된 2.3리터 에코부스트 VS.
제네시스의 새로운 도전 2.5T
포드 익스플로러의 2.3리터 에코부스트와 제네시스 GV80 모두 효율과 성능을 동시에 잡는 파워트레인의 트렌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각기 2.3, 2.5리터 직렬 4기통 엔진으로 300ps급의 최고 출력을 발휘하는, 엔트리답지 않은 모습을 자랑한다.
포드의 2.3리터(2,261cc) 에코부스트 엔진은 2015년 머스탱 6세대의 전기형의 314ps 사양으로 데뷔한 후, 다양한 출력 세팅으로 포드와 링컨 브랜드의 다양한 차종에 두루 장착되고 있다. 포드 익스플로러의 5세대에 적용됐던 에코부스트는 최고 출력 274ps, 최대 토크 41.5kg∙m 버전이었다. 당시엔 6단 자동변속기였던 터라 나름대로 저단에서 어느 정도의 견인력은 발휘할 수 있었으나 공차 중량이 2,200kg에 육박했기 때문에 공인 복합연비가 7.9km/L에 불과했다. 어차피 주말 중심의 레저카로의 활용빈도가 높아 연비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유저가 대부분이었지만, 시대적 트렌드에 부합하는 세팅은 아니었다.
그러나 6세대에는 최고 출력 304ps, 최대 토크 42.9kg∙m 버전이 장착됐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토크 밴드다. 최대 토크 분출 시점이 3,500rpm인데, 2,000rpm대부터 35.6kg∙m를 발휘한다. 거동에 관여하는 실용 영역대의 토크가 두텁다는 의미다. 또한 3,000rpm과 5,000rpm에서 40.8kg∙m를 찍는다. 10단 자동변속기인만큼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최대 토크까지 엔진회전수에 여유를 두다가 하향 변속 후 본격적인 가속이 필요할 때 밀어붙일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더군다나 후륜 구동 기반 4륜 구동 플랫폼은 초고장력강을 활용한 경량화 전략으로 공차중량은 2,085kg 수준이다. 덕분에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스포티한 온로드 지향 SUV의 성격을 갖게 됐다. 복합 연비는 8.9km/L이다.
제네시스 GV80의 2.5리터(2,497cc) 가솔린 터보 엔진은 동력 수치 상 익스플로러의 2.3리터 에코부스트의 동력 사양과 대동소이하다. 최고 출력도 304ps이고 최대 토크는 0.1kg∙m 더 강한 43kg∙m이다. 연소실 내 직분사 방식과 흡기포트 내 다중분사를 겸한 듀얼 분사 방식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는 최고 출력 380ps를 발휘하는 3.5리터 V6 트윈터보 엔진도 동일하다. 여기에 4륜 구동, 7인승, 20인치 휠을 적용할 경우 공차 중량은 2,165kg이며 복합 연비가 8.5km/L다.
참고로 파워트레인 면에서 익스플로러는 비장의 무기를 준비하고 있다. 바로 유럽형의 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최고 출력 350ps의 3.0리터 터보 엔진과 13.1kWh의 배터리를 기반으로 100ps의 최고 출력을 발휘하는 모터가 결합되어 합산 최고 출력 450를 발휘하는 PHEV 버전도 연내에 들어올 계획이다. 아직 가격은 미정이지만 상위 브랜드인 링컨 에비에이터의 PHEV와 가격 위계를 고려하면 합리적인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기아차는 포트 분사 방식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전부터 타진하고 있었다. 마찰을 저감해 피스톤의 무빙을 빠르게 하고 부품의 무게를 줄여 직분사식 만큼의 토크를 얻어낼 수 있도록 하는 스마트스트림 엔진은 기아차의 2세대 K3, 아반떼 등에 적용된 스마트스트림 G1.6을 통해 나름 성공을 거뒀다. 특히 이 방식은 엔진 온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저회전대에서 불완전 연소로 인한 오염물질 배출을 줄일 수 있고,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피스톤 부품의 부하 누적도 경감할 수 있었다.
8단 자동변속기는 2.5리터 터보 엔진과의 조합만 본다면 큰 문제가 없다. 출시 초창기에 커뮤니티를 통해 ISG 오작동으로 인한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검수를 통해 개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3.5리터 트윈터보 엔진의 경우 기존 제네시스의 G70, G80이나 스팅어 등에 적용되던 3.3T 엔진보다 최고 출력이 10ps, 최대 토크는 3kg∙m 상향되는 데 그쳤다. 물론 모든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이 AMG나 M만큼 경이로운 출력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글로벌 트렌드 상, 이 정도 동력 성능은 어지간한 브랜드의 3.0리터급으로도 충분히 구현된다. 예컨대 출력 세팅이 보수적인 편이라 할 수 있는 렉서스의 3.5리터 트윈터보 엔진도 422ps(LS500)를 발휘한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변속기의 ‘사정’을 봐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기아차는 엔진과 변속기를 모두 생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동차 제조사이지만 변속기의 완성도는 아직 정점에 올라섰다고 하긴 어렵다.
아웃도어 베이스캠프 익스플로러 VS.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헌터 GV80
사실 이 두 차량을 두고 고민한다면, 두 차 자체의 우열보다는 차량의 용도를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익스플로러는 업그레이드된 ADAS 기능인 코 파일럿 360+를 더했지만 6,000만 원이 채 안되는 가격의 단일 트림으로 나왔다. 그럼에도 뱅 앤 올룹슨 플레이(B & O Play™), 한국 운전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열선과 통풍 기능이 모두 갖춰진 10웨이 시트를 비롯해 스티어링휠 전동 틸트, 텔레스코픽 기능 등 고급차의 그것이라 해도 손색없는 기능을 두루 갖추었다.
그럼에도 어디까지나 익스플로러는 아웃도어 레저의 강력한 후원자라는 성격이 있다. 다양한 편의 기능을 더해지만 모험가라는 이름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계기반의 리얼한 그래픽과 함께하는 인텔리전트 4륜 구동의 지형 관리 시스템은 7가지 모드를 제공한다. 실제 미국 포틀랜드에서 경험한 시승에서 20°에 달하는 측면 경사, 마찰력을 잃기 쉬운 진흙, 자갈길 등에서 보여준 견고한 구동력 제어 시스템은 인상적이었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의 개입 이전에 불필요한 관성력을 줄일 수 있는 강하고도 가벼운 섀시의 역량이 전제됐다.
그에 비해 GV80는 모든 면이 럭셔리 지향이다. 차고와 지상고가 높고 수납 공간이 큰 세단이라 해도 무방하다. 가죽 시트와 인테리어 옵션 등은 마치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의 개별 옵션을 보는 듯하다. 실제 가격도 그러하다. 물론 해당 인테리어 사양에 대한 고객들의 만족도도 높으며, 실제로도 흠잡을 데가 없는 고급스러움을 자랑한다.
그렇다고 제네시스 GV80에 오프로더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단언하진 않겠다. 4륜 구동 시스템에는 전자식 리미티드 슬립 디퍼렌셜(E-LSD)가 장착돼 있어 마찰력이 부족한 도로에서 좌우륜 바퀴의 회전차를 보정하고 위험한 상황을 미리 예방한다. 그러나 현대기아차 그룹이 이 시스템을 연구하고 실차에 적용해 온 궤적을 보면 주로 온로드에서의 강력한 코너링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들이 오랫동안 따라잡아야 할 목표라고 생각해 왔던 독일의 프리미엄 및 고성능 브랜드들이 지닌 특징이기도 하다. 냉정히 말해서, G80은 어스름 저녁, 도시의 불빛이 더 어울린다. 조금 더 나가도 주차 시설이 완비된 오토캠핑장 정도가 아닐까?